[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촉발된 고유가·고환율 여파가 항공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항공유 가격과 환율이 동시에 치솟으면서 항공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노선 축소가 현실화되는 가운데, 유류할증료 급등은 소비자 부담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중동 전쟁이 지난 2월 발발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대외 정책과 이란의 보복 공격이 맞물려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1일,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자국 언론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 폭등
전쟁 여파로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원유 도입량의 약 70%를 이 항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항공유를 포함한 에너지 안보에 직격탄을 맞았다. 공급망 마비 우려와 함께 국제 유가가 폭등하며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했고, 항공유 가격 역시 수직 상승했다.
결국 전쟁의 여파로 국제 항공유 가격이 138% 급등하면서 항공권 가격을 좌우하는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S&P 글로벌에 따르면 현재 항공유는 싱가포르 평균값(MOPS) 기준으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서며 유류할증료 상한 기준을 이미 초과한 상태다.
4월 유류할증료는 18단계로, 오는 15일까지 이 추세가 유지될 경우 오는 5월부터 적용될 적용 유류할증료는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22단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최고 단계인 33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유류할증료 상승에 따라 유럽, 미주 노선 기준 편도 유류할증료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기준 4월 약 25만원~30만원 수준에서 오는 5월에는 50만원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만원 이하였던 지난 3월 유류할증료와 비교하면 두 달 새 5배가 증가한 셈이며, 왕복 기준으로는 100만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5월 유류할증료는 3월16일∼4월15일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MOPS)에 따라 4월16일 이후 발표될 예정이다.
문제는 5배 증가하는 유류할증료도 항공사의 비용 상승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33단계부터는 항공사 운영비의 약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가격이 더 오르더라도 소비자에게 추가로 부과할 수 없어 항공사가 손실 그대로 떠안는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유가 상승 후반부일수록 항공사 마진이 급격히 훼손되는 구조’로 분석하고 있다. 윌리 월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장은 “이제까지 겪은 공급 문제 중 가장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상황을 “제2의 코로나 위기”로 평가한다. 실제 주요 항공사들의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증발하고, 티웨이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대한항공까지 지난달 31일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부회장은 “유가 수준별 단계적 조치를 즉시 시행해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비용항공사(LCC)들 중 일부는 항공편 취소를 시작했다. 에어프레미아는 오는 20일부터 5월31일까지 인천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는 노선 26편, 인천과 호놀룰루를 오가는 노선 6편의 운항을 중단한다.
5월에는 인천발 샌프란시스코 노선 8편과 뉴욕 노선 2편의 운항을 멈춘다.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로케이항공 등 또한 일부 노선 비운항을 확정했다.
중동 전쟁 여파…위기 직면한 항공업계
33단계 눈앞…‘할증료 폭탄’ 현실화
이스타항공은 5월5일부터 31일까지 인천과 푸꾸옥을 오가는 노선 일부의 운항을 중단한다. 베트남 등 일부 국가에서 현지의 급유 제한 리스크로 인해 한국 항공사에 신규 공급 계약 불가를 통보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급유한 후 한국으로 돌아올 연료를 현지 공항에서 추가로 급유해 오던 항공기들은 더 이상 해당 국가를 오가지 못하게 됐다.
벤 스미스 에어프랑스·KLM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유럽보다 동남아가 중동산 연료 의존도가 높다”며 “동남아에서 돌아올 연료를 구하지 못하면 비행을 못한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오르는 유류할증료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 하루를 앞둔 지난달 31일 막판 항공권 구매 전쟁을 치렀다. 미리 항공권을 구하려는 수요가 몰리며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 홈페이지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다만 발권이 완료된 항공권이 취소될 경우 100% 환불이 가능하지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구매가 아니라면 구매처에서 발생한 수수료는 환불이 불가능하다. 취소된 항공편의 항공사 사이트를 모방해 여권과 결제 정보를 요구하는 문자 피싱도 증가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국내 항공사뿐 아니라 외항사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문제 상황에 처했다. 지난달 24일 베트남 항공사 비엣젯항공 한국 총판은 홈페이지에 인천발 나트랑·다낭·푸꾸옥 노선과 부산발 나트랑 노선 등에 대한 결항이 6일부터 시작된다는 내용을 갑작스레 공지했다.
여행사나 항공권 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항공권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해당일에서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취소된 항공편에 대해 문의했지만 “한국 총판대리점은 권한이 없다”며 “각 구매처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패키지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와 이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현행 표준약관상 유가나 환율 변동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여행사가 고객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예약을 마친 소비자라도 출발 전 유가가 급등하면 예기치 못한 추가 결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비용 불확실성을 떠안고, 여행사는 예약 취소 가능성을 동시에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단독 항공권의 경우 항공사 방침에 따라 발권 후에는 유류할증료 변동분이 추가 청구되지 않지만, 패키지 상품의 경우 결제 후 유류할증료 인상 등으로 인해 가격 변동이나 추가 지불이 발생할 수 있음을 소비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결국 고유가 충격이 항공권을 넘어 여행 상품 전반으로 확산되는 상황이다.
LCC부터 줄줄이 노선 취소
유류 할증료 소비자 부담
정부는 그간 고수해 온 ‘시장 자율’ 기조에서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 항공사들과의 안전간담회에서 유류비 부담에 따른 재정 지원 가능성네 대해 재정 여건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중동발 리스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기류가 바뀌고 있다.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 정부 비축 항공유 활용을 제안하는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언론에 따르면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고려해 국내 항공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항공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변화에 기대를 걸면서도 속도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류할증료 급등으로 항공사들이 사실상 ‘제2의 코로나’ 상황에 직면했다”며 “4월 이후 항공권 예약이 급격히 줄고 있어 자체적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슬롯 유예, 공항 사용료 완화, 비축 항공유 활용 등 다양한 대책이 거론되지만, 소비자 부담과 산업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달 22일 CNBC에 따르면,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최고경영자(CEO)는 “내년까지는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유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항공 수요 위축과 실적 악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침체’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약 460억원의 손해가 발생하는 대한항공은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중 침체
결국 관건은 시간이다. 지금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일시적 충격으로 보이지만, 이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 상황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수익성이 낮은 노선부터 단계적으로 정리되며 일부 국제선은 아예 운항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유가·고환율이 장기화될수록 항공사들의 생존 경쟁은 한층 더 격화될 전망이다.
<ydcho@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