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통째로 무너졌다. 이는 단순한 인사 조치가 아니다.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물러나고 위원들이 일괄 사퇴하면서 기존 공천 구조는 사실상 해체됐다.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싼 갈등과 법적 충돌이 임계점을 넘었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이다.
공천이라는 선거의 출발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균열은 더 이상 내부에서 봉합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공천은 선거의 시작이지만, 동시에 선거의 방향을 결정하는 설계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는 그 설계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공천이 안정되지 않으면 전략은 무력해진다. 후보가 확정되지 않는 선거는 준비된 경쟁이 아니라 불확실한 실험이 된다.
이 상태에서 기존 공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선거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확대하는 선택이 된다.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명확하다. 특정 후보 컷오프를 둘러싼 갈등은 공관위 내부 충돌로 이어졌고, 결국 위원장 사퇴 논란까지 불러왔다. 이는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기준은 흔들렸고, 절차는 논란을 낳았으며, 권한은 충돌했다.
공천이 정치의 출발이 아니라 분쟁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 선거는 이미 불안정한 구조 위에 놓이게 된다. 공천이 무너지면 선거는 전략이 아니라 사고가 된다.
이 불안정성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법원의 판단이었다. 지난 31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공천 배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공천 과정에서 당헌·당규 위반과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정당의 자율성은 인정되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메시지다.
공천이 정치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 순간이었다.
공천이 법정으로 이동하면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당내 경쟁은 설득의 영역이지만, 법적 분쟁은 판단의 영역이다. 후보들은 정치적 경쟁 대신 법적 대응을 선택하게 되고, 공천은 확정이 아니라 ‘잠정 상태’로 남는다. 선거는 속도가 중요한데, 공천이 멈추는 순간 전체 전략이 멈춘다.
이 지점에서 국민의힘은 기존 방식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관위 전원 사퇴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구조 전환이다. 기존 공천 시스템을 유지한 채 문제를 봉합하는 대신, 아예 새로운 공천 구조를 설계하겠다는 선택이다.
특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공천을 별도 기구로 분리한 것은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판단의 결과다.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싸우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싸우느냐’다. 이미 갈등이 누적된 전선에서 버티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 지방선거 공천은 상처가 남은 전선이다. 반면 재보선은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물도, 기준도, 메시지도 다시 짤 수 있다. 같은 자원으로도 전장을 바꾸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재보선의 규모는 작지만 정치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는 단순한 지역 경쟁을 넘어 권력 구조와 직결된다. 의석 하나가 정국의 균형을 바꾸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천은 단순한 후보 선출이 아니라 정치적 설계가 된다. 국민의힘이 이 전선에 집중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깝다.
시간 역시 변수다. 지방선거 공천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돼 수정 여지가 제한적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지금부터 설계할 수 있다. 시간은 전략의 여유를 만든다. 늦게 시작할수록 더 정밀한 공천이 가능하다. 준비된 공천은 우연을 줄이고, 결과를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이번 결정은 내부 권력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공관위 해체는 공천 권한의 재배분을 의미한다. 새로운 공관위가 구성되면 또 다른 권력구도가 형성된다. 공천은 곧 권력이다. 누가 후보를 정하느냐가 당의 방향을 결정한다. 재보선 공천을 둘러싼 내부 경쟁 역시 불가피하게 전개될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하다. 지방선거 공천 갈등을 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전장을 바꿀 것인가의 선택이었다. 국민의힘은 후자를 택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싸움의 위치를 바꿨다. 이는 정치에서 가장 오래된 전략 중 하나다.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조건은 하나다. 재보선 공천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기준도, 절차도, 인물도 이전과 달라야 한다. 유권자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를 본다. 공천은 달라지지 않으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승부의 위치는 이미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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