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참사’ 안전공업-아리셀 잔혹사

2026.03.30 14:11:37 호수 1577호

2년 만에 또…큰 대가 치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길은 삽시간에 공장을 뒤덮었다. 고립된 직원들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 실종된 이들은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잿더미만 남았다. 다 타버린 현장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책임 공방과 고성이 울려 퍼졌다. 그동안 숱하게 반복된 화재 현장의 모습이다.



지난 20일 대전 대덕구 문평동의 자동차 부품 제조공장 ‘안전공업’에서 불이 났다. 이날 오후 1시17분께 시작된 화재는 대부분 불이 꺼지기까지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실종자로 분류됐던 14명이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부상자를 포함해 총 74명의 사상자가 나온 대참사였다.

건물까지
다 태웠다

이번 화재가 큰 피해로 이어진 원인으로는 기름 찌꺼기나 유증기 등이 지목된다. 문제는 앞서 진행됐던 점검 과정에서 이 부분이 여러 차례 지적 사항으로 언급됐지만 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사고가 전형적인 ‘인재’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4일 대전소방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안전공업에 화재가 일어나 소방당국이 출동한 건수는 모두 7건이다. 대부분 작업 공정과 집진기 등에서 나온 기름때와 분진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1월 천장 부위 덕트 내 기름 찌꺼기와 단조기에서 발생한 고열로 불이 났고, 2012년 4월에는 집진 파이프 안에 있는 분진에 단조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불티가 붙으며 화재로 이어졌다. 2017년 1월과 2019년 7월에는 집진기 내부 분진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2023년에도 두 차례나 불이 났다. 5월에는 집진기 덕트 청소 작업 중 불티가 슬러지에 떨어져 불이 시작됐고, 6월에는 레이저 용접기에서 발생한 불티가 집진기를 타고 이동해 불이 났다.

안전공업은 작업 공정과 회사 규모상 종합 점검과 작동 점검 등을 받아야 한다. 업체가 자체적으로 점검 후 결과를 소방당국에 보고하는 구조인데, 이 경우 결함을 자체적으로 조치한 후 확인을 받는다.

문제는 안전공업이 자체 점검을 한 항목이다. 자체 점검 32개 항목에는 절삭유에서 비롯된 기름 찌꺼기와 유증기 등 환경 개선, 환풍기나 집진시설 개선 필요성에 대한 항목은 아예 없었다. 노조와 직원들이 회사에 건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자체 점검에서 지적된 사안도 매년 수십개가 나왔다. 지난해 종합 점검 때는 옥내소화전으로 물을 끌어오는 펌프실의 압력이 부족해 불량하다는 소화설비 지적, 1층 차동식 감지기 탈락과 불량, 통로 유도등 점등 상태 불량 등의 지적 사항이 언급됐다.

14명 죽고 60명 다쳐
‘2.5층’ 헬스장서 9명

소화설비 1개소, 경보설비 14개소, 피난 구조 설비 7개소 등 모두 22개소에서 불량이 적발됐다. 작동 점검에서도 소화설비 3개소, 경보설비 17개소, 피난 구도 설비 2개소 등 모두 22개소가 지적받았다. 공장 1층 가공 라인 상당수에서 화재 발생에 대비한 연기감지기가 불량해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기름 찌꺼기와 유증기 등 내부 환경이 꼽히지만 정부의 안일했던 소방 점검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은 “자체 점검은 법정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법령 등 기준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데 특화된 제도로, 윤활유나 절삭유 찌꺼기, 덕트 내 환풍기 청소 상태 등 사업장의 일상적인 시설 유지보수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안전공업이 거듭해서 진행했던 불법 증축에 대한 점검도 부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불법 증축으로 만든 장소에서 사망자 14명 가운데 9명이 발견되면서 지자체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대덕구 등에 따르면 안전공업은 1996년 본관 준공 이후 여러 차례 구조를 변경했다. 2010년에는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동관을 새로 지었고 이후 증축을 거듭했다. 동관은 2011년 일부 증축됐고 2014년에는 2, 3층과 옥상 주차장이 추가로 지어졌다. 여기까지는 모두 인허가를 거쳤고 관련 도면도 구청 전산 시스템에 등록돼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2015년 7월 이후 동관에 진행한 무단 증축 건이다. 안전공업은 이른바 ‘2.5층’에 헬스장을 만들었는데 이 공간에는 작은 창문만 있고 대피로가 없었다. 여기서 9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유가족 울고
대표는 막말

대덕구는 화재가 발생하고 난 뒤에야 해당 공간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무단 증축 이후 현장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에 따르면 건축물은 정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해야 하지만, 서류 제출만으로도 가능하고 현장 방문은 생략할 수 있다.

안전공업이 불법 증축 문제로 지난해 8월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2003년 본관 2층과 3층 사이를 무단으로 증축했는데 22년 동안 적발되지 않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상황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대덕구 등은 본관 현장을 찾아 점검했지만 동관 건물은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공업 경영진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이사가 임직원들이 모인 내부 회의에서 사망자 14명에 대해 막말과 폭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조와 언론 등에 따르면, 손 대표는 지난 24일 “늦게 나온 사람이 죽었다. 늦게 나오면 되겠느냐”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장, 반장, 리더가, 대표가 죽은 거다. 집에 어머니가 자식이 누구 불에 타 죽을까 봐 뒤돌아보다가 늦어서 죽은 것”이라며 “특히 걔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사망자 가운데 한 명의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언론에 제보한 사람을 색출하려는 취지의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유족이고 XX이고” 등의 막말도 나왔다. 대표의 가족이 “너그럽게 생각해 달라,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노조 측은 “과거 행동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데,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피해 보상과 엄벌이 이뤄지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손 대표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중처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경영 책임자, 법인 등에 관한 처벌을 규정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2년 처음 시행됐다. 처벌의 기준은 경영 책임자의 사업장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이행 여부다.

정부·지자체
책임 없나?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 사고가 2년 전 경기 화성에서 일어난 ‘아리셀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의 배터리 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난 사건이다. 이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특히 사망자 가운데 대다수(18명)가 외국인 노동자였다.

사고의 전말이 드러날수록 안전공업 화재와 아리셀 참사 간의 유사점이 발견되고 있다. 아리셀 역시 생산 편의를 위해 공장의 방화 구획 벽체를 임의로 철거하고 대피 경로에 가벽을 설치하는 등 허가 없이 구조를 변경한 부분이 피해를 키웠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경고’가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리셀은 참사 발생 이틀 전 리튬전지 폭발 사고가 일어났지만 자체적으로 해결한 뒤 작업을 이어갔다. 또 위험물질을 다루면서도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이나 탈출 경로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점도 유사하다.

위험성이 큰 물질을 다루면서도 불법 파견된 노동자에게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도 화를 키운 원인이었다.

법원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처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다. 지난해 9월 수원지법 형사14부는 중처법 위반,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박 대표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이 사고가 예고된 인재인 데다 사망자 대부분이 파견근로자인 점을 양형 요소로 중요하게 봤다.

아리셀 대표는 1심 15년
경찰, 중처법 위반 수사

재판부는 “화재의 정확한 세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리튬을 사용한 전지 폭발 위험성은 여러 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고, 아리셀에서 이미 여러 번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며 “이 사건 화재 이전 유사한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같은 날 생산된 전지에 대한 후속 공정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피고인들에게 그렇게 높은 주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음에도 피고인들은 생산량을 맞추기 급급해 아무런 대비 없이 생산 공정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리셀에서 불법파견을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은 피고인들이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작스럽게 전지 생산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으로 피고인들 스스로 야기한 측면이 많다”며 “많은 파견근로자가 투입되고 잦은 인력 교체가 있어 안전보건교육과 소방 훈련이 내실 있게 이뤄지지 못했고 특히 이들이 평소 드나들 수 없게 보안장치가 된 곳에 비상구로 가는 통로가 위치했다는 점이 피해자들이 사망하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업가는 평소 기업 운영에 있어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에 온 힘을 쏟고 근로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하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생계 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게 돼 기업가가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며 “이 같은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므로 피고인들이 유족과 합의했다는 사정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끼리
위로 했다

지난 23일에는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대전시청에 설치된 안전공업 사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참배한 사실이 알려졌다. 양한웅 아리셀대책위원회 공동대표와 유가족 3명은 “유해의 온전한 수습과 원인 규명은 첫 단계부터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공동대표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정부와 관계기관은 반드시 사건 수습과 원인 규명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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