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블루문의 홀보이가 된 이후로 청운은 미군을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던 시선, 피에로 형의 초대로 홀 안에 앉아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구경하던 눈길은 이제 일단 거두어야 했다.
그들은 달러를 뿌리는 고객인 것이다. 돈에도 품격이 있는 것일까?
워싱턴 대통령이 박힌 미국 달러 앞에서 세종대왕이 새겨진 한국은행권 지폐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람 취급
어쨌든 청운은 편견 없이 사실 그대로 미군들을 바라보려고 했다. 가능하면 한 인간으로서….
모든 존재가 그렇듯 미군 중에도 선량하고 신사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개쌍놈 같은 양아치도 많았다. 그런 치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인 미국에서는 하류인생으로서, 가난에 찌들고 무식한 탓으로 홀대받는 자들이었다.
개중엔 뒷골목 우범지대를 떠돌며 마약을 하고 성폭행이나 강도짓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지른 뒤 도망쳐 온 불량배나 강력범죄자도 섞여 있었다.
쉽게 말해 그런 치들은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의 군복을 걸치고 있지만 속엔 죄악이 숨겨진 채(물론 모든 인간의 내부엔 죄악 성향이 잠복돼 있겠으나…) 어떤 바이러스처럼 강한 활동성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부 미군은 한국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대하면 자기 위신이 짐승으로 추락될까 봐 짐짓 인간의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자기네 나라에서 하층민으로 무시되고 핍박받은 울분과 설움을 약자인 한국 남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소녀같이 작은 기지촌 여자들을 노리개 삼아 능욕하는 짓으로 탕감하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가능하면 그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려 애를 썼다. 지피지기랄까.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일상 속에서 보고 겪으며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부대끼노라면 어느 날 문득 인종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한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고 이국의 미개한 작은 여자들을 돈 주고 구입한 시녀나 성노예로 삼아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미군 중에서도 질이 좀 낮은 하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에 섞여 많이 들어오는 건 한반도가 전쟁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1950년에 (누가 먼저 때렸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을 벌였던 남한과 북한은 일단 휴전협정을 맺었을 뿐 아직 싸움을 끝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물밑으로 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만성이 된 한국 사람들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게끔 되었으나 미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속에 지닌 위험지역이었다. 아무리 고국에서 홀대받는 구겨진 청춘일지언정 사지死地와 비슷한 곳으로 가긴 싫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수당이 꽤 쏠쏠했기 때문에 기피지역 1번지인 이 황토에도 잡다한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지원해 왔던 것이다.
해외 미군 기지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에는 주로 젊은 독신 남성 군인을 1년간 배치한 반면, 일본과 독일에는 2∼3년으로 복무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두었고 아내와 자녀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일단 전시지역으로 판단해, 가족을 함께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과 각 주둔국 사회 사이의 관계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가족을 동반해 긴 복무기간을 받고 배치된 기혼 군인들은 미혼 군인들에 견줘 기지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가 훨씬 건전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한국인을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대통령이나 황제처럼…달러 지폐에 그려진 그들의 대통령이 그런 권력을 주는지도 몰랐다.
물론 좀 차이는 있었다. 백인은 겉으론 점잖아 보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아집이 아주 강했다. 고정관념적인 독한 편견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흑인은 늘 허연 이를 드러낸 채 싱긋빙긋 웃다가도 감정이 성해져 폭발할 경우엔 말리기가 힘겨웠다.
자기를 버리는 건 좋은데 무심 무아가 아니라 자기파괴적으로 될 땐 남까지도 사해(死海)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즉, 자기의 죽음으로 남의 생명마저 빼앗는 것이다. 히히 웃으며….
사람은 낯선 이국이나 이방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나름대로 소망과 욕망을 담은 꿈을 꾼다. 기지촌의 여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듯 미군들도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 땅으로 왔을까?
만약 그렇다면 과연 그 꿈은 어떤 걸까? 그들이 미개국이라고 무시하는 작은 나라에서 바라는 소망이나 욕망은?
맨허턴이나 시카고 뒷골목에서 놀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 출신 선배에게 듣는 조언 중 하나는 ‘한국은 여자들이 꽤 예쁘면서도 값은 싸다. 일본이나 독일엔 비하면 껌값이지.
그리고 암캐처럼 마구 조져도 상관없어. 그깟 년들을 우리가 기분 상해서 죽여도 한국 경찰 놈들은 우릴 건드릴 수가 없어. 실제로 계집년의 바기나 속에 콜라병을 처박아 죽이고도 유유히 귀국해 버리면 그만이야.’라는 말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에 질 낮은 하류 인생들
무시하는 나라에 바라는 욕망은?
‘그리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놈들에겐 일종의 천국일 수도 있단 말야. 왜냐? 그년들의 키가 대개 작아서 우리 몸에 비하면 어린 소녀 같다고 할 수 있거든. 몸매가 아담하면 다 아담하지. 좀 닳고 닳은 여자의 바기나라도 우리들 페니스가 들어가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하니까. 흐흐흐.’
그 소리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미군의 입으로부터 청운이 직접 들은 것이었다.
그들은 분단국의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월급을 받은 날이면 땅거미를 밟고 클럽으로 몰려 들어와서 유쾌하게 웃으며 달러 지폐로 슬픈 소녀 같은 여인들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로마의 황제가 노예 시녀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길 바라는 듯이….
혹시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무대로 원주민을 사냥해 노예로 부리거나 사냥당해 부려먹인 기억이 잠재의식 위로 떠올라 뇌리를 살살 간지른 건 아닐까?
그래서 백인들과 흑인들의 가학증과 피학증이 동시에 레일을 지나 이 한국 땅으로 와서 가엾은 여인들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인디언 헤드’는 미군부대의 심볼 마크였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해 그곳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을 쫓아낼 당시 미군 기병대들은 죄없는 무수한 주민들을 총칼로 무참히 살육했다.
그리고 생사람의 머리를 잘라내 총검에 꽂고 다니며 용맹성을 자랑했다.
이제 그들의 후손인 미군들은 선조들을 존숭하는 의미로 별과 도끼 문양 안에 인디언의 머리 모양을 새겨넣어 도안해 군복 왼쪽 어깨에 단 채 한국 땅을 활보했다.
흉포성과 정복욕을 상징하는 그 마크 외에도 미군들은 모자나 셔츠에 ‘태어남은 우연, 사랑은 선택, 살인은 직무’라는 따위의 글귀를 새겨 단 채 뽐내기도 했다. 아예 문신을 새겨 우쭐거리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인간에겐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고 옛 성현들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선입견 따윈 버리고 부대끼며 살다보면 문득 실체가 느껴지지 않겠는가 싶었다.
인디언처럼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 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