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건너며 바뀐다. 아직 공기는 차갑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정치도 그렇다. 이번 설 연휴는 휴식이 아니라 6·3 지방선거로 진입하는 경계선이며, 유권자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이 겹치는 경계 구간이었다.
설은 원래 가족의 자리지만 선거를 앞두면 평가의 자리로 변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 지역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그 말들이 다시 일상으로 흘러가 여론이 된다. 정당은 이 순환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설 연휴 전에 판을 깔아야 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번 판의 중심 인물은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공관위원장은 후보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당의 미래 이미지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어떤 기준을 세우느냐에 따라 당의 색깔이 달라지고, 그 선택은 몇 년간 지역 권력을 좌우한다.
결국 공천은 인사 절차를 넘어 정당이 유권자에게 내미는 집단적 약속이 된다.
공관위원장이 쥔 힘은 단순한 추천 권한이 아니다. 누구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누구에게 문을 닫을 것인가를 정하는 권력이다. 본선은 언론의 조명을 받지만, 승패는 경선에서 갈린다. 그래서 6·3 지방선거 출마를 꿈꾸는 후보라면 설 연휴 민심보다 공관위원장의 한마디를 더 무겁게 듣고, 그 기준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설 연휴 직전 지난 12일 각각 최고위원회를 열어 공관위원장을 인선했다. 양당이 설 연휴라는 정치의 경계선에 진입하기 전 깃발을 꽂은 셈이다. 이제 게임이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진영을 묶고 동시에 확장하겠다는 뜻이었다. 명절 민심이 돌기 전에 판을 선점하겠다는 속도전의 의미도 담겨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관위원장으로 선택한 인물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이다. 헌법의 가치로 국가의 기준을 다뤄온 경력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치적 유불리보다 원칙에 맞는가를 먼저 보겠다는 무언의 선언에 가깝다. 절차와 정당성, 그리고 법적 안정성이 이번 공천의 중요한 필터가 될 가능성이 크며, 논란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선택을 통해 책임 정당의 이미지를 관리하겠다는 계산도 읽힌다.
국민의힘은 공관위원장에 이정현 전 당 대표를 전면에 세웠다. 선거의 최전선을 통과해 본 정치인, 조직과 민심의 파동을 몸으로 겪어 본 인물이다. 이력 자체가 투쟁과 돌파의 서사를 품고 있다. 공천을 통해 변화와 확장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의지가 읽히며, 관리보다 승부에 방점을 찍겠다는 방향 전환의 신호로도 해석된다.
즉 양당은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낸 것이다. 한쪽은 기준을, 다른 한쪽은 방향을 말했다. 한쪽은 안정된 질서를 강조하고, 다른 한쪽은 판을 흔들 수 있는 에너지를 앞세웠다. 유권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어느 쪽이 지금의 시대 감각에 더 가까운지 조용히 저울질 할 것이다. 6·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도 공관위원장 성향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이번 두 인선이 흥미로운 공통점도 있다. 두 사람 모두 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정치가 지역 구도를 넘어 전국 정당을 말해야 하는 시대에, 상징은 곧 전략이 된다. 인선은 지역을 향한 신호이면서 동시에 전국을 향한 메시지다. 양당 모두 확장의 출발점을 호남에서 찾았다는 점이 이번 공천의 숨은 변수다.
호남은 오랫동안 선택의 기준을 엄격하게 물어온 지역이다. 말보다 태도, 약속보다 이행을 중요시했고, 정치적 인상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그 지역 출신 인물을 공관위원장으로 세웠다는 건 공천의 무게를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누구를 세우느냐 이전에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를 요구받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단 국민의힘 쪽 움직임이 빨랐다. 이 공관위원장은 14일 연합·타협을 꺼내 들며 판을 넓히더니, 15일에는 미래형 리더 검증 기준을 구체화했고, 16일에는 청년 주체론과 현역 ‘지옥훈련’까지 선언했다. 메시지가 하루 간격으로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는 공천을 단순한 후보 선정이 아니라 ‘정치 교체 프로젝트’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민주당은 설 연휴 동안 신중했다. 내부의 조율과 복잡한 변수들이 작동하는 시간일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구조를 먼저 정비하는 흐름이 느껴진다. 대신 김이수라는 인물 자체는 이미 하나의 메시지로 작동했다. 공정성과 검증, 흠결 없는 후보라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암시하며, 무리한 실험 대신 안정된 관리 속에서 승리를 설계하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결국 두 공관위원장의 승부는 속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먼저 기준을 말하는 쪽이 주도권을 잡을지, 마지막에 정교한 잣대를 들이대는 쪽이 신뢰를 얻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설 연휴가 지나면 기다림의 시간도 끝난다는 사실이다. 멈춰 있던 판단들이 그때부터는 빠르게 결론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6·3 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은 이번 설 연휴 때 귀향 인사를 했고, 유권자는 이미 평가를 시작했다. 얼굴이 새롭다고 점수를 주지 않고, 경력이 길다고 안심하지도 않는다. 지역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그 질문이 훨씬 날카롭다. 그래서 공천은 약속이고, 당이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지 보여주는 공개 선언이다. 공천이 곧 시대 교체의 신호가 된다.
공관위원장은 이 압력을 온몸으로 받는 자리다. 그래서 계파도, 개인적인 관계도, 과거의 공로도 이 문턱 앞에서는 설득력이 약해진다. 남는 건 결국 경쟁력이다. 이번 공관위원장 인선이 보여준 특징은 정치가 상징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다.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진영을 넘어 확장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인선에 녹아 있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본격적인 줄 세우기가 시작될 것이다. 출마자들의 계산은 빨라지고, 지역 조직은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언론은 누가 유리한지 묻겠지만 진짜 질문은 누가 기준을 통과하느냐다. 이번 선거에서 공천은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다. 변화 요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안정도 필요하지만 정체는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공관위원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람을 고르는 일을 넘어 지역의 시간을 누구에게 맡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 선택이 향후 몇 년의 풍경을 만든다. 지역 예산의 흐름과 산업의 방향, 그리고 주민의 일상이 그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천은 오늘의 선택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계약에 가깝다.
설 연휴라는 경계선을 넘는 순간, 6·3 지방선거의 첫 시험은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