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정부 주거정책, 이제는 탈온돌 아파트다

2026.02.01 09:42:37 호수 0호

왜 우리는 아직도 바닥을 불로 데우는가

세계의 주거문화는 난방 방식에서 갈라진다. 유럽은 벽난로와 라디에이터로 공기를 덥히고, 미국은 덕트와 온풍기로 집 전체를 가열하며, 일본은 전기 히터와 국부 난방으로 추위를 버텨왔다. 세계의 주류는 언제나 ‘공기를 데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국만이 집을 불판처럼 만들어 그 위에서 먹고 자고 사는 길을 선택했다. 바닥을 데우는 문화는 인류사에서 예외였다.

그 예외가 바로 온돌이다. 온돌은 단순한 난방 기술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방식을 규정한 구조였다. 방바닥을 데워 공기를 데우는 방식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서구인이 의자와 침대를 발명할 때, 한국인은 바닥에서 사는 삶의 도구를 발명했다.

이 선택은 기후 적응이자 문명적 분기였다.

온돌은 추운 겨울을 견디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겨울은 건조하고 혹독했으며, 집 안까지 얼어붙는 기후에서 바닥을 덥히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마루와 온돌을 나누어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해결한 주거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고급 설계였다.

온돌은 단순한 난방이 아니라 사계절을 품은 기후 시스템이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한국이 ‘추워서’ 온돌을 썼다는 통념은 역사적으로도 틀리다. 한국보다 훨씬 더 혹독한 겨울을 겪는 러시아와 중국 북부조차 온돌을 쓰지 않았다. 중국은 침대 아래만 데우는 ‘캉(炕)’으로 사람의 몸만 따뜻하게 할 뿐, 방 전체의 바닥을 가열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페치카’라는 거대한 벽난로로 공기와 벽을 데워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바닥 전체를 불로 가열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혹한이 온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온돌이 한국의 예외적 생활방식을 고착시킨 것이다.

그래서 온돌은 한국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문화, 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문화, 그리고 한 층에서 모든 생활을 해결하는 단층 구조는 모두 온돌에서 나왔다. 한국인의 몸, 가구, 공간 감각은 온돌 위에서 만들어졌다. 온돌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문화’였다.

그러나 이 위대한 기술에는 오래전부터 그늘이 있었다. 온돌은 나무를 태워야 했고, 나무는 숲을 갉아먹었다. 조선 후기 민둥산은 전쟁이 아니라 온돌이 만든 풍경이었다. 땔감을 구하기 위한 도벌과 산림 파괴, 그로 인한 농업 생산성 하락은 이미 18세기부터 사회 문제가 됐다.

온돌은 따뜻함과 동시에 자연 파괴라는 대가를 안고 있는 기술이었다.

온돌은 또 하나의 구조적 한계를 낳았다. 바닥 아래에 고래와 구들장을 깔아야 하는 구조 때문에 집을 위로 올릴 수 없었다. 온돌은 수직 도시를 가로막았다. 서구가 다층 건축으로 도시를 키울 때, 한국은 단층과 저층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온돌은 공간 밀도를 희생시키는 기술이었다.

현대에 들어 이 한계는 더 커졌다. 연탄과 가스로 바뀐 열원은 편리해졌지만, 바닥을 덥히는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온수 파이프를 깔고, 콘크리트를 붓고, 그 위에 마감재를 얹는 구조는 건축비를 폭발적으로 올렸다.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난방 바닥을 가진 주거 유형이 되었다.

에너지 측면에서도 문제는 심각하다. 바닥 난방은 ‘쓸데없이 큰 열용량’을 데운다. 사람이 있는 공기만 덥히면 되는데, 한국의 주택은 수십톤의 콘크리트 바닥을 먼저 가열한다. 이는 곧 연료 낭비다. 한국의 가정용 가스 소비량이 유난히 높은 이유는 기후보다 주택 구조에 있다.

문제는 생활방식이 이미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국인은 더 이상 바닥에서 자지 않는다. 침대, 소파, 식탁, 의자가 일상이 됐다. 아이도, 노인도 모두 허리를 세운다. 바닥은 생활공간이 아니라 통로가 됐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바닥을 데우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온돌이 ‘선택’이 아니라 ‘제도’가 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주택법’과 주택건설기준의 적용을 받으며, 행정과 건설 관행 속에서 ‘적정 난방’이 곧 바닥 난방으로 굳어졌다. 온돌이 아니면 분양 승인과 민원 통과가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 한국의 모든 아파트는 예외 없이 난방 바닥을 깔게 되었다.

반면 같은 사람이 사는 오피스텔과 호텔, 기숙사는 공기 난방·히트펌프·공조 시스템을 자유롭게 쓴다. 한국에서 유독 아파트만 바닥을 데우는 이유는 문화가 아니라 규제와 관성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온돌 무형론’이 나오는 이유다. 온돌은 더 이상 문화도, 생활도 아니다. 남은 것은 관성뿐이다. 우리는 이미 서구식 입식 생활로 옮겨갔는데, 난방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 몸은 침대 위에 있고, 에너지는 바닥 아래서 새고 있으며, 생활과 기술 사이의 불일치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온돌은 이제 편안함이 아니라 비용이다. 공사비, 유지비, 연료비, 탄소배출까지 모두 온돌이 증폭시킨다. 한국의 주거가 비싼 이유는 토지 때문만이 아니다. 바닥을 데우는 강박이 집값에 숨은 세금처럼 붙어 있다. 에너지 전환 시대에 온돌은 기후 리스크가 되며, 가계와 국가 모두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한국의 아파트는 반드시 온돌이어야 하는가. 유럽의 패시브 하우스는 공기 순환과 단열로 난방을 해결한다. 일본의 고효율 히트펌프는 국부 가열로 에너지를 절약한다. 한국만이 여전히 바닥 전체를 가열하는 방식에 묶여 있다. 이 고집은 기술이 아니라 습관이며, 이제는 바뀌어야 할 구조다.

온돌 없는 아파트는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공기 난방, 복사 패널, 천장 복사, 고효율 히트펌프와 환기 시스템을 결합하면 사람만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바닥은 구조물이 아니라 통로로 남겨두면 된다. 이렇게 하면 공사비도, 에너지비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무엇보다 도시가 달라진다. 바닥 구조가 가벼워지면 고층화가 쉬워지고, 리모델링이 쉬워지고, 노후화 위험도 줄어든다. 온돌은 아파트를 무겁게 만들고, 도시를 느리게 만든다. 탈온돌은 곧 탈비용, 탈탄소, 탈경직성이다. 이는 단순한 난방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바꾸는 구조 개혁이다.

온돌은 과거에 위대했다. 그러나 문명은 박물관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존중하듯, 온돌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면 된다. 그러나 그 유산 위에 30층 아파트를 지을 이유는 없다. 기술은 존경할 대상이지, 복제할 의무는 아니다.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발전은 멈춘다.

이제 한국은 난방에서도 선진국가가 돼야 한다. 바닥이 아니라 사람을 덥히는 집, 콘크리트가 아니라 공기를 관리하는 집, 전통이 아니라 효율을 기준으로 설계되는 주거가 필요하다. 그것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쟁 시대의 한국형 주거다. 주거 역시 기술 산업이라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온돌은 한국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을 비싸게 만들고 있다. 다음 세대의 주거는 과거의 바닥 위에 세워질 필요가 없다. 이제 우리는 “왜 온돌이 없느냐”가 아니라, “왜 아직도 온돌이 있느냐”라고 묻지 말아야 한다. 그 질문을 멈추는 순간, 한국 주거는 비로소 미래로 이동한다.

따라서 이제 선택의 문제는 분명해졌다. 한국의 신규 아파트는 더 이상 온돌을 기본값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 바닥 난방 없는 주택을 표준 옵션으로 허용하고, 공기 난방·히트펌프·복사 패널 등 고효율 대안을 결합한 ‘탈온돌형 아파트’를 공식 주거 모델로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바닥 구조가 단순해져 공사비가 내려가고, 열용량 낭비가 사라져 난방비도 함께 줄어든다.

이제 이 문제는 개인의 취향이나 건설사의 선택이 아니라 정부와 국회의 영역이다. 정부는 주거정책으로 탈온돌 아파트 정책을 펴고, 국회는 ‘주택법’과 주택건설기준을 개정해 아파트의 난방 방식을 바닥 난방 하나로 사실상 고정해온 규제 관성을 풀어야 한다.

‘적정 난방’의 정의를 바닥이 아니라 사람과 공기의 쾌적성으로 바꾸고, 공기 난방·히트펌프·복사 난방·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아파트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열어야 한다.

탈온돌 아파트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법의 문제다.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의 집은 계속 비싸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소비자 역시 전통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다. 바닥이 따뜻한 집이 아니라, 사람이 따뜻한 집을 선택해야 한다. 온돌은 선택이 되어야지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온돌 없는 아파트’는 불편함이 아니라 합리성이고, 한국 주거가 세계 표준으로 진입하는 첫 걸음이다.

따뜻함을 바닥이 아니라 기술로 만드는 시대, 한국의 집도 이제 그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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