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앞을 보는 교육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2025.12.22 11:25:19 호수 1563호

“이제 눈 뜨고 현실을 봐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00년이 아니라 30년만 내다봐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교육계에서 고리타분한 표현으로 여겨지는 ‘교육 백년지대계’에 대한 언급에 정근식 교육감이 답한 말이다. 시대 변화가 빨라진 상황에서 교육이 그만큼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러면서 정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외벽에 붙어 있는 슬로건 ‘학생의 꿈, 교사의 긍지, 부모의 신뢰’는 ‘미래를 여는 협력 교육’이 만들어낼 궁극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최근 교육계에 ‘수능 폐지’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주장이라 관심이 집중됐다.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하는 등 수능을 ‘국가적 이벤트’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제안이기도 했다.

경쟁 교육?
협력 교육!

지난 10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한 이날 기자회견의 골자는 ‘대학 입시가 학생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 교육감은 “언제까지 교실 수업의 변화와 학교 교육의 혁신이 대학 입시에 가로막혀야 하나”라며 “고등학교 교실을 살리고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해 내신 평가제도 전반의 개선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2009년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수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을 낮추고 올해 초등학교 5학년(2014년생)이 대상인 2033년학년도 대입에서는 수능에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 수능과 내신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이 시기에 적용된다.

현재 5세(2021년생)인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2040학년도에는 수능을 폐지한다. 핵심은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 수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없애자는 것이다.


사실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계에서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암기력 테스트에 가까운 현재의 제도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면서 일정 정도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담보되는 제도인 수능을 없애는 것은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공고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정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교육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은 제안 내용보다는 발화자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초중등 교육의 설계자이면서 조타수인 교육감이 수능이라는 고등교육제도에 말을 얹은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른바 교육감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육감은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초중등 교육이 바뀜에 따라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측면이 있고 반대로 대학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에 따라 초중등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지금 이게 서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교육감은 “현재 사회와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외워서 풀어야 할 문제는 이미 AI가 전부 하고 있다. 현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창의적인 인재, 그리고 사회적으로 관계 맺기를 잘하는 인재,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듣고 그걸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다. 현재와 같은 교육제도로는 그런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이 선제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를 여는 협력 교육’ 목표
진보 사회학자·과거사 위원장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만난 정 교육감은 여러 차례에 걸쳐 “특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교육제도도 그에 휩쓸릴 것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결국 교육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한탄이기도 했다.

정 교육감은 인터뷰 전 현장 방문한 창신초등학교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과거 학생이 많을 때는 1만2000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2부제, 3부제 하면서 수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학생 수가 276명밖에 안 된다. 15년 뒤인 2040년에는 어떨까?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치면 정원이 50만명 정도 된다. 이미 대학 정원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보다 많아졌다. 과거 학생이 100만명이던 시대에는 대학은 적고 학생 수는 많아 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경쟁 교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귀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는 일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둘 낳는 집도 많지 않다. 학생 한 명, 한 명에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인재를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 가정, 사회적으로 이런 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그렇게 봤을 때 수능이 그런 맞춤형 교육에 적합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4지 선다, 5지 선다형 ‘정답 맞히기’형 교육으로는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 교육감은 지난해 10·16 교육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서울시교육청에 입성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해직 교사 특혜 채용’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진보 사회학자이면서 문재인정부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을 교육감과 연결 짓는 과정에서 기대와 걱정이 따라붙었다.

학령 인구↓
창의 인재↑

정 교육감은 교육 현장과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지난해 10월17일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160여차례에 걸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했다.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하루에 두 군데 학교를 방문하는 일도 많다”고 귀띔했다. 정 교육감 역시 “현장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서울은 (인구가) 굉장히 밀집돼 있지만 지역마다 사정이 아주 다르다. 초기에는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고 하면, 최근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학교와 학생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복지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 곳, 다문화 학생이 많은 곳, 주변 환경에 위험 요소가 많은 곳 등을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을 중시하는 정 교육감의 방식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에서 빛을 발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수십년 만에 일어난 일인 만큼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학교 수업이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의 안전은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이 당장 문제로 떠올랐다.

정 교육감은 “비상계엄이 발동되자마자 여기(교육감실)에서 비상 회의를 진행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학교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해야 했다. 필요하면 휴교 등의 조치를 해야 했고 현장에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비상 대응 체제를 유지했다. 다행히 국회가 2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하면서 당장 큰 혼란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비상계엄이 해제됐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서울서부지법 사태도 일어났다. 학업 분위기가 저해되지는 않을지, 등하교 때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했는데 현장 방문, 안전 점검 등을 통해 다행히 사고 없이 잘 극복했다”고 자평했다.

이처럼 정 교육감이 주도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학생의 ‘안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학생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안전을 위한 ‘마음건강’ 정책은 정 교육감의 가장 큰 관심사다. 최근 들어 초·중학교 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정 교육감은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그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교육감에게 올라온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나 경위 등이 담긴 보고서다. 보고서를 읽다 보면 자살 미수, 자해 시도 등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징후가 있던 경우가 많다. 그런 내용을 볼 때마다 교육감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현장에
답 있다

이어 “지난 10월 ‘서울 학생 마음건강 증진 종합 계획’을 내놨다. 모든 학생에게 생명 존중과 극단적 선택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사회 정서 교육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안했다”며 “또 마음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을 조기에 발견해서 지원하는 방안도 담았다. 무엇보다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 학생을 긴급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일이 일어났다면 그런 학생의 친구나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치유도 진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교육감 이전에 사회학자인 정 교육감은 초·중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난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부모의 불화 등 가정적 요인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교육제도 ▲SNS로 인한 자기 관리 약화다. 특히 SNS의 발달로 학생들이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요인들이 어린 학생의 불안과 우울, 고독, 외로움 등을 자극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도록 한다고 했다.

정 교육감은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구조의 변화, SNS 같은 사회적 소통 방식의 변화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학업 스트레스 또한 학생의 극단적 선택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에 서울시교육청으로서는 그 부분을 개선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가 학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경쟁 교육이 아닌 협력 교육이 학생들의 마음건강이나 심리 정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으로 마음건강 종합 계획을 짰다”고 부연했다. 정 교육감이 가진 교육 철학과 취임사에서 여러 번 강조한 교육의 본질과 맞닿은 지점이다.

초·중학생 극단적 선택 많아져
‘마음건강 증진 종합 계획’으로

정 교육감은 “학생들이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자아를 완성해 가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1번”이라며 “두 번째는 민주시민으로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세 번째는 미래 사회에서 직면할 여러 가지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학습 역량을 주도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만 교육이 완성된다는 주장이다.

그의 교육 철학은 대학 시절에 만들어졌다.

정 교육감은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은 젊었을 때부터 있었다. 서울 사당에서 빈민 학생을 상대로 야학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의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나타난 빈민을 보면서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받아 자기 계발이 가능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사회 맥락에서 누구나 충분히 교육을 받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모두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사회학자로서, 과거사 위원장으로서, 또 교육감으로서 정 교육감이 살아온 삶의 기초이자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이미 ‘사망 선고’를 내린 공교육 현장을 어떻게 해서든 부활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정 교육감은 학교의 문제는 가능하면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 기록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정책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정 교육감은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하니까 소위 말하는 가해자가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학교 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과도하게 법이 개입하면, 즉 엄벌주의 방식으로 진행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숙려제’를 도입했다. 학교폭력 문제를 기록하고 처벌하기에 앞서 교육적 가치, 본질에 맞게 조정하고 화해하는 방식을 먼저 해보기로 한 것이다. 또 해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줄이는 등 교사와 학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예방 장치가 만들어졌지만 과도하게 법률주의, 엄벌주의로 흘러가면서 불거지는 여러 부작용을 극복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한 숙려 제도를 좀 더 확대해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학교 문제는
학교 안에서

정 교육감은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상을 좇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에도 초등학생, 중학생의 극단적 선택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엄청난’ 숫자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왜 사회는 이런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침묵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지 공론장에서 논의하고 해결을 위한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교육제도의 변화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과도한 경쟁의 결과로 드러난 부작용에 눈을 감으려 한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말해야 할 시기다.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여는 게 좋은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 협력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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