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전자 인도법인 LG Electronics India가 지난 14일, 인도 증권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인도 진출 28년 만의 증시 입성으로 LG전자는 이를 통해 1조8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인구가 많고 가전 보급률은 낮아 ‘슈퍼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인도 시장에 맞춤형 전략을 확대하는 동시에 인도를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게 LG전자의 전략이다.
이날 LG전자 조주완 사장은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에서 열린 LG전자 인도법인 상장식에서 ‘인도를 위해, 인도에서, 인도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LG전자는 먼저 ‘인도를 위해’ 인도 소비자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특화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이날 인도 고객을 위해 기획한 특화 가전 라인업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인도 특화 가전은 현지 구매력을 고려한 가격, 인도의 생활 환경과 방식에 맞춘 특화 기능 및 디자인 등을 두루 갖췄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LG전자는 그동안 모기 퇴치 에어컨이나 세탁물 종류와 무게를 감지하는 인공지능(AI) 모터 등 생활 환경을 반영한 특화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코노라 팬데믹 이후 더딘 회복세를 보이는 중국 시장의 확실한 대안으로 인도가 자리매김한 가운데 인도 증시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기업공개(IPO)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한국 대표 기업들은 잇따라 인도 증시를 두드렸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Hyundai Motor India는 이미 상장했고, CJ대한통운 인도 자회사 CJ Darcl Logistics Ltd.도 상장을 준비 중이다.
그야말로 ‘코리아 인디아 웨이브’가 자본시장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간단하다. 인도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8%대 성장률, 14억 인구,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산층은 기업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황금시장의 조건이다.
그러나 그 속엔 훨씬 복합적인 계산이 깔려 있다.
먼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나려는 탈출 전략이다. 국내 증시에선 성장 기업도 제값을 받기 어려운 반면, 인도 증시는 외국 자본이 몰리고 유동성이 넘친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했고, LG전자 인도법인은 공모가보다 50% 폭등했다. 이제 한국 기업에게 ‘해외 상장’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브랜드와 밸류의 재평가 무대가 된 셈이다.
세계 공급망의 재편도 인도에 국내 자본이 들어가는 데 한몫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제조 대기업들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1)’ 전략으로 인도를 선택하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인도를 글로벌 사우스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현지 영업 전략이 아니었다. 한국 제조업의 축이 아시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제 한국 기업은 ‘수출형’이 아니라 ‘현지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인프라 미비, 물류비 부담, 환율 리스크, 현지 경쟁 등은 여전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한국 기업이 이제 더 이상 서울이 아닌 뉴델리에서 미래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무게중심이 서서히 인도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인도에서 LG전자 증시 개장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한 기업의 벨소리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다음 무대’가 열리는 신호음이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미국 중심의 소비·자본 축이 약화되는 틈새에서, 인도가 한 축으로 급부상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 현재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제 한국 경제의 다음 무대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곳은 인도다.
LG전자 인도법인의 증시 상장,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의 IPO, 그리고 CJ대한통운의 상장 추진까지, 한국의 주력 기업들이 속속 인도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단순한 해외진출이 아니라, 세계 경제 축 이동에 맞선 새로운 전략적 이주다.
8년 전 필자가 뉴델리 공항에서 본 LG전자 광고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낯선 이국의 공항에서 ‘Life’s Good’이라는 슬로건이 유난히 반가웠었다. 그때만 해도 인도 시장은 LG전자에 잠재력의 땅이었지만, 이제는 LG전자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무대가 됐다.
인도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선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삼성전자는 글로벌 본사 중심의 통제 구조가 강한 기업이기 때문에, 그 요건을 맞추는 것이 복잡해 아직 상장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