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사람도 명절이 끝나면 허전하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은 그 허전함이 때로 삶의 벽처럼 느껴진다. 명절 끝이 단지 ‘휴식의 끝’이 아니라, ‘고독의 시작’이 되고 만다. 특히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조상을 기리는 추석 연휴가 끝나면, 우리 사회의 고독은 오랫동안 계속된다.
필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와 누나랑 함께 할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당시 우리 집은 할머님을 모시고 산 덕에 매년 추석이면 도시에서 친지들이 찾아와 북적거렸다. 집안에 활기가 돌고,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친척들이 떠나고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면, 우리 집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린 나에게 그 순간은 유난히 크게 다가왔고, 그래서 명절 끝마다 허탈감을 경험해야 했다.
며칠 전 고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촌 누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혼 후 고모님과 단둘이 살았던 누나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형제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은 집안의 고요가 참을 수 없이 낯설고 공허했다고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도시는 다시 일상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그 소음 속에 묻힌 사람들의 마음은 한층 더 외롭고 쓸쓸하다. 추석 연휴 동안 모처럼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였던 시간은 짧게 스쳐 지나가고, 남은 것은 다시 각자 일상에 갇힌 채 맞이하는 고독이다.
특히 연휴가 끝난 뒤, 원룸으로 돌아온 1인 가구 청년은 빈 냉장고 앞에서 허기를 달래고, 홀로 사는 노인은 다시 조용한 벽시계 소리만을 벗 삼는다. 명절에도 대형마트와 배달 현장을 지켜야 했던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가족의 웃음 대신 피로와 허무만이 남는다. 이들에게 연휴 끝은 위로가 아니라 더 깊은 공허다.
이 공허는 한 사람이나 한 가족의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추석 이후 공허는 이미 많은 이들이 느끼는 집단적 정서가 됐다. 연휴가 끝난 직후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심리적 취약이 정치의 계산대 위에 올려질 때다.
정치권은 해마다 추석 직후 여론조사를 들이밀며 '민심의 향배'를 운운한다. 그러나 고향에서 친척과 술잔을 나눈 이들의 목소리만 뉴스거리가 되고, 연휴 끝을 혼자 견뎌야 했던 이들의 공허와 소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 정당은 소외된 자들 편에서 민심을 들먹이며 상대를 공격하거나 지지율을 포장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가 이 공허를 고의로 자극할 때다. “당신은 버려졌다”는 불안을 들먹이거나, “우리만이 당신의 외로움을 대변한다”는 식의 선동은 취약한 심리를 볼모로 삼는 위험한 행태다. 이는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채, 국민의 고독과 불안을 표 계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치의 책무는 명절 후 공허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데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을 찾아가는 사회적 돌봄, 청년 1인 가구의 연결망, 비정규직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 같은 구체적 제도는 정치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국민의 허탈감을 동원해 지지율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허탈감을 줄여주는 제도적 안전망을 설계하는 것이 정치다.
명절 끝 공허는 결코 가벼운 심리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경고음이다. 그 경고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는 순간, 정치는 스스로 공동체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명절 끝은 정치의 기회가 아니라, 정치가 사회적 연대를 회복해야 할 출발점이어야 한다.
책임은 정치만의 것이 아니다. 기업은 명절에도 쉬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돌아봐야 하고, 지방정부는 홀로 사는 노인과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찾아야 한다. 시민사회 또한 “우리만 살면 된다”는 옹졸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웃 주민과 지역 공동체가 느슨하게라도 연결될 수 있다면, 명절 후의 적막은 훨씬 덜할 것이다.
결국 명절 후 공허는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경우, 그 공허는 점점 사회 불신과 고립으로 확장된다. 함께 사는 방법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할 과제다. 명절 끝이 외로운 사람들의 절망이 되지 않도록, 공동체 전체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절망만을 말할 수는 없다. 공동체의 붕괴가 드러나는 시점은 곧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역 커뮤니티 센터, 돌봄 공동체, 자원봉사 네트워크 등 작은 실험들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작동돼야 한다.
명절 연휴가 끝나면 고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고독을 마주한 우리 사회가 새로운 연대와 돌봄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고독을 나누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허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는 공존이 된다.
제발 이번만이라도 정치권이 추석 명절 끝 공허를 이용하지 않기 바란다.
올해도 추석 직후 각종 여론조사가 발표되면 정치권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만을 골라내 ‘소외된 자의 민심이 우리 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은 특검과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고, 국민의힘은 대통령실과 여당을 맹공할 것이다.
추석 직후 “여당은 지지율 상승만 강조하고, 야당은 부정적 여론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논리 자체가 안타까운 우리 정치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