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69)세 번째 탈출 계획

  • 김영권 작가
2025.09.15 04:05:36 호수 1549호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탈출 시도는 세 번째가 되는 셈이었다. 잡힐 때마다 어떤 고초를 치렀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용운은 수용소 전체가 공인하는 요시찰 제1호가 되었다. 당연히 불침번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요시찰 1호

불침번을 서게 한다는 것은 마음 놓고 나가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밤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아무리 용변이 급해도 다른 동행자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내보내 주지 않았다.

왕거미 사장은 한 번만 더 그 짓을 하면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지옥이 또 있을까? 그런 것들로 해서 탈출의 의지가 꺾이진 않았다. 더 이상 모정의 그리움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유가 그리웠다. 사감이나 스라소니가 말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었다.


남을 구속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꿈을 펼쳐 나가는 자유……

수용소 생활이 소름끼치도록 지긋지긋했다. 거듭된 탈출 실패가 미련의 응어리로 퇴적되면서 이젠 정말 안 나가면 죽는다는 강박관념까지 싹텄다. 그건 무의식의 소망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밖에 나가 자유를 누렸으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실체를 찾아보고 싶은 욕망도 한층 강렬하게 생겨났다.

내가 지금의 이 꼴이 된 원인은 무엇인가? 엄마를 홀린 사이비 종교 교주는 지금도 선량한 사람들을 홀리고 있을까? 나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떤 집에서 태어난 것일까?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며…… 그때 왜 그랬을까? 혹시 내가 대궐의 왕자 같은 신분은 아니었을까?

그런 궁금증은 꽃버섯처럼 자꾸 피어나서 의식만으론 제어할 수가 없는 과대망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뻐꾸기 울음소리와 두견새의 절규는 사람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일말의 순정과 진실을 일깨우려고 신이 보낸 정령의 목청인 듯싶었다.

그 소리를 듣노라면 고향의 모정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선감원이란 공간이 무간지옥의 밑바닥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용운은 목숨을 걸고 최후의 결행을 하기로 했다. 간조를 택해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일단 수영부터 제대로 배우기로 했다. 눈여겨 둔 아이가 있었다.


해마다 6월 중순쯤 되면 다소 이른 철임에도 원생들은 휴식시간 틈틈이 저수지에 뛰어들어 물장난을 하곤 했는데, 거기서 수영에 능통한 원생 하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야, 너 수영 한번 기차게 하더라. 어디서 배웠냐?”

“거야 뭐, 인천 앞바다가 고향이니까.”

“아, 그래? 그런데 수영하면 몸이 튼튼해진다는 게 사실이니?”

“자식, 싱겁긴.”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하면 핑 도는데 이거 몸이 약해 그런 거지? 나한테 수영 좀 안 가르쳐 줄래?”

“수영이라…… 뭐 크게 어렵겠냐. 하지만 공짜로?”

“그 대신 내가 매일 빵을 줄게.”

무간지옥의 밑바닥
빵주고 수영 배우기


“빵을?”

“어차피 나는 싫어하는 건데 뭐.”

“뭐, 그렇다면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날 오후부터 수영 연습에 임하게 되었다. 다른 원생들을 의식해서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했다.

“어푸푸! 아, 잘 안 돼…….”

“너무 조급하게 구니까 그렇지. 팔동작을 넓고 부드럽게 하라구.”

용운은 열심히 배웠다. 개구리헤엄과 모자비헤엄도 배웠고, 가장 힘이 적게 든다는 송장헤엄도 배웠다. 일주일쯤 하자 어느 정도 요령이 붙기 시작했다.

특히 송장헤엄은 속도는 느렸지만 힘이 별로 들지 않아 무한정 갈 것 같았고, 염분이 많은 바닷물이라 그런지 물 위에 편히 누웠는데도 몸이 잠기지 않고 얼굴 위로만 물이 약간씩 살랑대는 맛이 묘미였다.

“이제 내가 없어도 되겠다. 인제부터 너 혼자 반복적으로 연습해.”

수영 스승이 점잖게 말했다.

그날부터 용운은 체계적인 전략을 세우고 혼자 연습에 임했다.

아침 저녁으로 팔힘을 기르기 위해 턱걸이와 팔굽혀펴기를 하고, 수영 거리는 매일 10미터 이상씩 늘려 가기로 목표를 잡았다.

개구리헤엄과 모자비헤엄으로 나가다가 힘이 부치면 송장헤엄으로 하고, 또 체력의 고른 안배를 위해 리듬을 정해 놓고 반복 훈련을 했다.

그 즈음 소내에서는 며칠 전에 실시한 선거에서 엄청난 부정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온갖 부정을 감행해 권력을 유지했다는 소문이었다.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날 저녁, 식당에서 막 나오는데 피에로가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따라붙었다.

“야, 같이 가.”

“응, 형 어서 와.”

“너, 이제 수영에 자신이 좀 생겼냐?”

“운동 삼아 하는데 자신이고 뭐고가 어딨어?”

“짜식, 시치미 떼기는…… 하여튼 돌아오는 그믐날 나랑 같이 토낄 각오하고 있어.”

“뭐?”

“놀라기는. 너도 알겠지만 지난번에 한번 뒈질 뻔하다 산 뒤로 기가 팍 죽어서 도통 용기가 안 나더라.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잖아. 뒈지든 살든 다시 한번 부딪쳐 봐야지.”

“그랬었구나. 난 또…….”

“왜? 경계할 놈으로 보였냐?”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 근데 그믐이야?”

그믐날

“그날은 음력으로 사리잖아.”

사리란 한 달 중 가장 물이 많이 빠지는 날을 뜻했다.

“쳇, 언제는 그런 날이 없어서 못 나갔나? 많이 빠져 봐야 거기서 거기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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