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믿음

2025.08.18 08:00:30 호수 1545호

이성원 외 2 / 바다출판사 / 1만6800원

제도화된 종교와 달리 무속 신앙은 그저 미신으로 치부되어 마치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 듯 방치되어 왔다. 그러나 무속은 우리 사회와 무의식에 깊이 뿌리 내린 채 우리의 미래를 쥐락펴락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 나왔다. 임기 내내 천공이라는 무속인에게 국정 조언을 받는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12·3 비상계엄 사태 때 배후 인물로 지목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직업은 무속인이었다.



한 연예 기획사 대표가 경영상 문제를 무속인과 상의한다는 소식도 한때 사람들의 입에 무수히 오르내렸다. 이렇듯 무속 신앙은 모순적이다. 누군가는 무속을 그저 미신이라고 천대하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귀신을 믿고 무당의 말에 일희일비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무속이 존재함에도 제도적으로 무속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치된 믿음’이다.

방치된 믿음은 착취를 먹고 자란다. 한국일보 탐사기획부 기자인 세 명의 저자는 오늘날 무속인의 존재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무속인 범죄에 접근했다.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구성된 피해자와 무당의 사건 일지는 충격적이지만 전형적이기도 하다. 두 딸이 차례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자 신내림을 받아야만 했던 소연과 무당 이미운의 이야기, 자신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맞혀 인생을 내맡긴 주은과 무당 명 도령의 이야기, 교통사고로 사람을 숨지게 해 삶의 의미를 잃어 자살까지 생각하다 무당을 만나 17억원 이상을 갖다 바친 선아씨 이야기 등은 관리되지 않은 믿음이 어떤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추적한다.

또한 무속인의 범죄 유형, 범죄 증가 추이, 가스라이팅 방법, 법정 양형의 분류, 법원의 무속인 인정 여부 등의 통계는 무속을 없는 것으로 우리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인 일인가를 증명한다. 요컨대 이 책은 무속에 대한 고발을 넘어선, 무속의 현실에 대한 사회학이다. 사람들이 무속을 믿는 이유에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다. 그저 재미 혹은 그저 성공이나 행복을 빌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기댈 곳이 없다는 것. 날이 갈수록 증대되는 불확실성도 무속이 인간 심리를 파고들 수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에 속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속인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 무속인 범죄에서 법원은 무속인의 직업적 지위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무속인이 실제로 굿을 했다면 이는 사기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곧잘 내려진다. 무속인들은 자신들이 인정받기를 원하며 ‘무속인 인증 자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이들을 보지 않는 걸까. 무속 신앙과 제도화된 종교는 정말로 다른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다. 제도화된 종교도 초현실적 존재를 믿으며 자신의 성공과 가족의 행복을 빌고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왜 유독 무속만 방치되어 온 걸까? 도대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저자들은 질문하며 믿음을 길들이는 방안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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