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이번에 발의된 ‘행정실 법제화’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교사들과 공무원 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며 언쟁이 펼쳐지고 있다. 행정직 공무원들은 환호하는 분위기지만 교사들은 마냥 달갑지는 않은 모양새다. 대학은 행정실 법제화가 이루어진 지 오래지만 초·중·고등학교는 매년 입법의 문턱에서 좌초됐다. 이유는 뭘까?
지난달 1일, 초·중·고등학교(이하 초·중·고) 행정실의 법제화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이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다. 이번 개정안은 각급 학교에 행정실을 설치·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과중한 업무
대학교는 이미 행정조직의 설치·운영이 명시돼 있는 고등교육법 제20조와 제15조 등 따르고 있다. 교육·연구 외에 필요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행정 조직’이 규정돼 있으며, 총장은 이를 구성하고 관리할 수 있다. 대학은 통상 학과, 연구소, 기획처, 총무처, 입학처, 학생처 등 세분화된 행정조직을 갖추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법적 근거하에 설치·운영된다.
반면 초·중·고의 경우, 초·중등교육법 제20조(학교의 조직 등)와 제30조(학교의 운영)는 ‘교원 및 직원의 배치’에 대해 규졍하고 있으나, 행정조직 설치·운영의 기준을 정한 내용은 없다. 어느 학교에나 ‘행정실’은 존재하지만, 법률상 명시된 개념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행정실의 인력 구성, 기능, 권한 범위 등은 시·도교육청이나 개별 학교의 운영 지침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돼 왔다.
이처럼 법적 근거 없이 운영되는 구조는 학교 행정 실무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 발의한 개정안은 초·중·고에도 대학교와 유사하게 행정조직을 명시함으로써, 학교 운영의 효율성과 행정의 전문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법안 발의 이후 교사와 행정직 공무원 간의 엇갈린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은 “책임 있는 행정 운영을 위해 법적 지위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교사단체는 “법제화가 오히려 업무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행정실 법제화는 20대, 21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발의됐었다. 하지만 교원과 공무원 단체 간의 이견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교사단체의 입장은 분명하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교육기관이며, 행정실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최근 성명에서 “교사의 업무는 이미 과중한 상황인데, 행정실 권한만 강화되면 직군 간 갈등이 심화될 것”라고 반발했다. 특히 교무·교육활동과 행정 간의 유기적 협력이 해체되고, 오히려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교육청공무원노조를 비롯한 공무원 단체는 “지금의 학교 행정실은 회계, 시설, 계약, 민원 등 학교 운영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법적 근거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대상”이라고 반박했다. 또, “학교는 특정 직군만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의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조직”이라며 “명확한 책임 규정은 오히려 갈등을 줄이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쌍수 들고 환영” “달갑지 않아”
공무원-교사 간 입장 갈려 논쟁
대학교는 이미 행정실 법제화가 이뤄진 데에 반해 초·중·고의 법제화가 쉽지 않은 배경에는 구조적 차이에 있다. 대학은 학생이 주체가 되어 교육을 선택하고 수강하는 성인 교육기관이다. 행정, 학사, 시설, 예산, 연구, 국제 교류 등 업무의 범위가 넓고 복잡하기 때문에 교육과 행정을 명확히 분리하여 전문 조직이 분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대학 총장이 교육정책을 주도하되, 행정 전반은 사무국이나 기획처, 총무처 등 각 부서가 담당한다.
반면 초중고는 의무교육 혹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생활지도 중심의 교육기관이다. 학생은 보호의 대상이고, 교사는 교육자이자 보호자이며 동시에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담임제’ 중심 구조로 운영된다. 이로 인해 교사는 수업뿐 아니라 각종 예산 관리, 행사 기획, 안전·복지 업무까지 폭넓은 행정 업무를 맡아야 한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를 맡는 것은 단지 인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행정 업무가 수업과 생활지도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전점검은 교사의 업무는 아니지만 학생 생활과 연결되는 경우는 교사가 직접 맡게 된다. 학교폭력 사안은 교육지원청, 경찰, 학부모와의 연계가 필요하지만, 사실상 담임교사가 전담하다시피 하는 일이 많다.
이처럼 ‘교육’과 ‘행정’이 분리되지 않고 교사에게 복합적으로 쏠리는 구조는 행정 업무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 공문 처리, 급식·예산 보고, 공시 업무 등이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지만, 이 업무를 누가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불명확하다. 교사단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업무 표준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교사, 행정직 공무원 간의 업무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어느 업무가 누구의 소관인지에 대한 기준 없이 관행적으로 업무를 나누다 보니, 불필요한 갈등이 쌓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외국어 교사가 원어민 강사의 집을 계약하거나 집기를 구매하는 실무를 맡는 경우, 불법 촬영 기기가 설치됐는지 점검하거나 현장 체험 학습에서 운전기사의 음주 측정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업무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실만 법제화되면, 교사는 오히려 회색 지대의 업무를 계속 떠안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매년 입법 문턱서 좌초
“업무 기준 먼저 정해야”
이는 단순히 업무 분담 문제가 아니라, 책임 소재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계약이나 예산 집행과 관련된 실수나 민원이 발생할 경우, 교사가 직접 관여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책임 소재는 불명확하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역할 정립’에 있다. 찬성 측은 행정실에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학교 업무를 분장하고,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입장이다.
현재 대부분의 행정실은 2~4명 인력이 방대한 업무를 떠안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회계, 인사, 시설, 기록물, 계약, 민원, 안전관리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업무가 집중되고 있으나 인력은 늘 부족하다. 이마저도 법적 근거 없이 ‘학교장의 명’이나 훈령, 조례 등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어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투명하고 책임 있는 운영을 위해서라도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행정실 법제화는 공무직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교사들이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 개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교육부가 학교 업무 정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교사 행정업무 경감’을 공언했지만, 명확한 업무 기준이 없고, 행정실이 법적으로 보장된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업무 표준화와 분장이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표준화부터
결국 논쟁의 핵심은 행정실 법제화 자체가 아니라, 법제화를 둘러싼 절차와 기준의 부재에 있다. 지금도 교사들은 교육 활동 외에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행정직 공무원은 법적 지위 없이 행정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누구도 온전히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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