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 민주당 웃지 못하는 이유

2025.08.05 09:05:45 호수 1543호

목소리가 갈라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에 속도를 내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철옹성이 정권 교체 두 달 만에 무너졌다. 그토록 염원하던 순간이지만 정부·여당이지만 한구석엔 고민이 남은 듯하다. 법안 처리를 위해 힘을 모으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8월 첫 주부터 여야 간의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그동안 윤석열 전 정부서 거부권(재의요구권)에 가로막힌 법안들을 몽땅 처리하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다. 정권 초 확실하게 주도권을 쥔 채 국정 동력에 힘을 싣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더 세져서
돌아왔다

당초 민주당은 지난 6월 임시국회 동안 윤 전 정부가 거부한 40건의 법안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다만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고 여야 간의 협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쟁점 법안 대부분이 7월 국회로 넘어왔다.

민주당은 더이상 입법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4일 본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양곡·농안법, 상법 개정안, 방송3법 등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7월 국회에서는 윤 전 정부의 거부권에 막힌 민생개혁 법안을 신속 처리하겠다”며 “지금의 복합적인 위기, 민생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법안 처리를 더는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먼저 민주당은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의(이하 환노위)에서 단독으로 노란봉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두 차례 폐기된 바 있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와 파업노동자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기 위한 조항이 신설됐다. 구체적으로는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배상 의무자의 책임 범위를 정하고,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동조합(이하 노조)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방위하기 위해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조 또는 근로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 ▲사용자는 노조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운영을 방해할 목적 또는 조합원의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손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여서는 아니된다 등이 적시됐다.

‘사용자’에 대한 정의 또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 국한하지 않고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포함됐다. 이로써 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업주의 교섭이 직접적으로 가능하게 됐다. 노사 갈등의 원인이었던 ‘노동쟁의’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 외에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범위를 넓혔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법안들…국회 난타전
사실상 ‘입법 프리패스’ 질주하는 여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도 쟁점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이 법안 역시 지난 정부서 거부권으로 폐기됐던 법안이다.

양곡관리법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농안법은 농수산물 시장가격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정부가 차액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특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기존안과 비교했을 때 초과 생산량을 공공비축미로 매입하고 평년 가격을 공정 가격으로 명시하되 쌀값이 공정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하는 ‘양곡가격안정제도’가 담겼다.

‘더 세진’ 상법 개정안과 방송3법도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면서 야당의 공세가 거칠어졌다. 특히 상법개정안은 한때 갑론을박이 이어졌던 ‘주주 충실 의무’ 개정에 더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권력이 대주주에게 쏠리는 현상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차원에서다.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사회적 숙의나 야당과의 협치 없이 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여야 간 최소한 신뢰마저 내팽개쳤다”고 지적했다.

지금 와서
발목잡기?

노란봉투법 통과가 현실화되자 재계에서는 각기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6·3 조기대선 정국부터 최근까지도 실용경제와 친기업 행보를 보였던 만큼 후폭풍도 거세졌다는 해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8단체는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상법 개정안 등에 우려를 표했다. 정부, 국회 그리고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국회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연이어 쏟아내는 것은 기업에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엄중한 경제 상황에도 상법 및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넘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우리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상황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 수출 시장을 잃는 것이고, 따라서 경제 정책 및 기업 경영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할 중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에 관해서는 사업재편 반대와 주요 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로 이어져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선거 운동을 할 때 이 대통령은 경제 우클릭을 하는 등 달콤한 말로 친기업 행보를 보였다”며 “당선되니 모든 게 걱정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벌써부터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기업들의 불안감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앞이 다르고 뒤가 다른데 무엇을 믿고 일을 하겠는가”라고 하소연했다.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노란봉투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 겸 대표이사는 “한국이 혁신과 경제 정책 측면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무대”라며 “해당 법안이 어떤 시그널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암참은 노란봉투법 개정안이 발의되자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 의사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의견을 전달해 왔다.

겨우 국회 문턱을 넘기게 된 양곡관리법과 농안법에 아이러니하게도 진보 정당과 농민계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 민주당이 진땀을 뺐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양곡법 개정안 투표 당시 기권표를 던지고 “공정가격은 지난 광장에서 한 농민과의 약속”이라며 “가격 안정제에 있어서도 양곡법에 명시될 내용이 농안법으로 이관되면서 공정가격과 기준가격 하락, 평년 가격이 삭제됐다. 이는 명백한 후퇴”라고 강조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또한 성명을 내고 “지난 개정안에는 ‘2개월분 국민 식량’을 비축하는 의무 규정이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에는 ‘국제기구의 권고 등을 고려해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후퇴했다”며 “폐기된 개정안에 포함됐던 수입쌀의 사료용 사용 등의 내용 역시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양곡관리법에 투입될 비용도 문제다.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수급 조절이 가능해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되지만, 시장 기능의 왜곡으로 다른 작물 재배를 꺼리는 등 쌀 과잉 생산이 문제로 지목된 것이다. 부담은 오롯이 정부의 몫이 되는데 당초 예상보다 쌀 생산량이 늘어난다면 의무 매입에 따른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의무 격리 시 2026년 약 1조원, 2030년 1조4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봤다. 게다가 쌀은 연평균 43만t(톤)을 초과 생산하는 등 산지 쌀값이 오히려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한 농해수위 관계자 역시 해당 법안에 대해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며 실질적인 대안과 예산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쌀 초과생산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 수급정책을 제도화하겠다”며 과잉 생산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추가적인 재정 소요는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또한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선제적 수급 관리를 하고, 사후 조치를 하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혔다.

또다시
침대 국회

제자리를 맴돌던 법안들이 막상 국회 문턱을 넘으려 하자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한 격이다. 여야와 법안 이해관계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없지만,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정부를 흔들어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현장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해결책을 마련했다지만, 3년 만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상 대통령 거부권이 사라진 만큼 법안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정부·여당에 전적인 책임이 달렸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후유증은 하루 만에 생기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였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터지는 것”이라며 “당장 변화를 보여주어야 하고 집토끼를 잡아야 하니 야당일 때 밀어붙였던 법안을 죄다 꺼내온 것 같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반대해온 이유가 있는데, 이걸 대화로 풀면서 협치를 해야지 지금처럼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오히려 탈이 난다”고 말했다.

개정안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막상 통과 앞두고 느슨해졌나”

민주당은 민생개혁에 앞장서기 위해 남은 7월 본회의를 ‘민생개혁 입법 2차 슈퍼위크’로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김 직무대행은 “가장 빠른 방법인 여야 합의처리를 위해 국민의힘을 설득해왔지만 이유 없는 반대와 몽니에는 단호히 대응했다”며 “상임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모든 관문에서 크고 작은 진통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묵묵하게 전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격한 대립이 예고되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로 맞불을 놓으면서 또 한 번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은 “소수 야당으로서 협상이 안 되면 유일한 방법은 필리버스터뿐”이라며 쟁점 법안이 상정되면 각 법안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부 여당에서 야당의 의견을 들어서 조금 더 협상하면 좋겠다는 게 현재 우리 입장”이라며 “노란봉투법이나 상법의 경우 독소조항 또는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일정 부분을 조정하고, 필요하다면 경영계·산업계·기업들의 얘기를 들어서 경영권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다른 조항과 함께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마지막 카드를 던졌지만 실질적으로 법안 처리를 막을 길이 없는 게 현실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시작 24시간 뒤 표결을 통해 토론 강제로 종결하고 법안 표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토론 종료를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종결 동의를 요구하고 24시간이 후 무기명 투표에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되는 만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의 도움을 받으면 179석으로 강제종료가 가능하다.

그래도
끝까지

다만 필리버스터가 진행됨에 따라 국회는 쟁점 법안 중 한 가지만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8월 임시국회가 곧바로 소집되지 않는 이상 7월 국회 내에서 모든 법안을 처리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에 민주당은 우선순위에 따라 법안을 하루에 하나씩 처리하는 이른바 ‘살라미’ 방식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필리버스터로 시간에 발목이 잡히더라도 8월 내 모든 법안을 입법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발목잡기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윤 전 정부가 시대에 역행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부터 처리하겠다”며 “민주당의 민생개혁시계는 언제나 국민 눈높이에 맞춰 제시간을 지켜갈 것이다. 국민의힘은 공연히 몽니를 부려서 국민적 비판을 자초하지 말고 입법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열의 3년 거부권 몇 번?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탄핵되기까지 3년 동안 총 25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소야대 정국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권한인 거부권으로 국회에 돌려보내는 등 무한 굴레가 이어진 것이다.

12년간 45번의 거부권을 행사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넘어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3년 만에 정권이 끝나면서 기록을 깨지 못했다.

한편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8번, 자리를 넘겨받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는 9번의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윤 전 정부는 총 42번의 거부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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