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8·15 광복절을 앞두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론이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과 종교계까지 나서 사면을 촉구하는 등 전방위적인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검토한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면론에 첫 불을 지핀 것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 의장은 지난 9일 수감 중인 조 전 대표를 직접 면회하며 사면 논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등 법대 교수 34명은 다음 날인 10일 “조 전 대표와 가족이 혹독한 죗값을 치렀다”며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여당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사면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을 통해 “조 전 의원의 8·15 사면을 건의한다”며 “그와 그의 가족은 이미 죗값을 혹독하게 치렀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최근 치러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조 전 대표의 사면·복권이 필요하고 죄에 비해 과도한 양형이 이뤄졌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에 종교계 핵심 인사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도 이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는 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면 요구는 사회 각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대통령실은 일단 거리를 두고 있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지난 28일 브리핑을 통해 “각계각층의 사면 요청 탄원서가 접수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통령실은 현재 관세 협상에 매진하고 있어 정치인 사면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광복 80주년 민생 사면은 준비 중”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는 조 전 대표 사면이 가진 정치적 부담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조 전 대표는 만기 출소가 내년 12월이다. 광복절에 사면될 경우, 형기의 3분의 1가량만 채우고 나오는 셈이라 ‘시기상조’라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
더욱이 그의 죄목이 국민적 공분이 컸던 ‘자녀 입시 비리’라는 점 역시 부담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광복절 특사보단 성탄절 특사 등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대통령실의 고심은 여러 층위에 걸쳐 있다. 가장 문제는 ‘국민통합’ 명분이 약하다는 점이다. 통상 정치인 사면은 진영 간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현재 조 전 대표와 짝을 이룰 만한 보수 진영의 상징적 인물이 마땅치 않다. 이는 사면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난 대선의 ‘정치적 청구서’라는 시각이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사실상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번에 사면이 이뤄질 경우, 당시의 지지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청구서’ 성격이 짙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대행은 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7당 대표들을 불러 모아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조 전 대표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도 꺼낸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외면할 경우, 범여권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와 국정 동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사면 이후 조 전 대표의 정치적 파급력 역시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조 전 대표가 사면·복권될 경우, 그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혁신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남 등지에서는 민주당과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여권 전체의 파이를 잠식할 수도 있다. 이는 집권 2년차 지방선거를 앞둔 이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의회 180석’이라는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각종 개혁 입법 추진에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혁신당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핵심 상임위 운영 등에서 혁신당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사면’이라는 선물을 줘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조 전 대표의 소속 당인 혁신당은 사면에 대해 언급을 삼가는 분위기다.
앞서 윤재관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지난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희들의 마음과 의견이 어떨지에 대해선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인지상정의 영역이고, 사면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주시는 많은 분들과 국민들께 감사한 마음”이라며 “당의 공식 입장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치적 거래라는 여론의 반발 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정가에선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와 여론 추이를 지켜본 뒤, 광복절 직전 최종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최종 결정은 이 대통령 몫이다. 아직 광복절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용산에서는 정치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 관세 협상의 성과가 긍정적일 경우, 경제적 성과를 내세워 조 전 대표의 사면에 대한 부정 여론을 잠재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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