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꺼낸 ‘법 왜곡죄’ 노림수

2024.10.01 09:16:39 호수 1499호

윤석열 검사의 ‘그때 그 법’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과거 박근혜정부 당시 최순실 특검의 법 왜곡 행위로 이득을 봤던 쪽은 민주당이었다. 법 왜곡 행위는 삼성 재판을 통해 다수 드러났고,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10일, 이건태 의원을 대표로 내세워 이른바 ‘법 왜곡죄’로 통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 왜곡죄는 ‘검사가 수사·공소 등을 할 때 법률을 왜곡해 적용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그룹과 북한에 800만달러를 보내는 것을 공모하고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1심서 징역 9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방탄법?

이 부지사 측은 “재판이 대단히 검찰 친화적인 방향으로 편파 진행됐다”며 반발했고, 민주당은 제20대 국회부터 계속 발의됐던 법 왜곡죄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법안서 규정하는 법 왜곡 행위는 ▲고의적인 수사 해태 및 불기소 ▲증거은닉·조작·불제출 ▲증거 해석·사실인정·법률 인정 왜곡 등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최순실 특검은 각종 증거조작을 저질렀다가 재판을 통해 드러났던 바 있다. 특검 수사에 출석했던 일부 참고인들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특검 진술을 뒤집으면서 “조서에 진술이 누락돼있다” “검사가 내 명의의 진술서를 직접 작성했다” 등의 주장을 했다.


최상목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은 2017년 6월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해석에 대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의견을 말한 적 없는데도, 진술조서에는 직접 말한 것으로 나왔다”고 증언했다.

이튿날에는 김모 당시 환경부 사무관이 증인으로 출석했고, 김 사무관 명의로 특검에 제출됐던 진술서는 김 사무관이 파견검사와 나눈 문답을 토대로 파견검사가 직접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 사무관은 법정에 출석해 “진술서를 작성할 때에는 특검서 조사받고 있었고, 검사가 질문하면 제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됐다”며 “검사는 문답한 내용과 제가 진술했던 내용을 종합해 진술서 형식으로 작성한 후 서명날인을 시켰다”고 증언했다.

14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남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은 “특검서의 참고인 진술은 특검이 보여준 처음 보는 자료를 토대로 추정한 의견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20대 국회부터 연이어…다시 발의
검사가 법률 왜곡해 적용 시 처벌

16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은보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은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시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아 서운했다”며, “특검이 참고인 진술조서에서 ‘서운했다’는 진술을 누락했다”고 증언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 부분은 진술을 시작하기 전에 김영철 파견검사(현 서울북부지검 차장)에게 말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27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채모 전 국민연금공단 팀장은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얼른 안 불면 옷 갈아입고 조사받을 수도 있다. 구치소는 춥다. 피의자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장시호씨가 운영했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된 뇌물거래 의혹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쳐 이 부회장에게 금전을 요구할 목적으로 사업기획안이 작성됐다”며 “기획안은 2015년 7월25일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측으로부터 받아가서 박 전 대통령을 거쳐 단독면담서 이 부회장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행정관의 통화기록과 삼청동 대통령 안가 차량 출입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11시7분 신사동에 있었지만, 이 부회장은 11시8분 삼청동 안가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1심 재판부는 이 근거를 토대로 “불상의 방법으로 기획안이 삼성 측에 전달됐다”고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이 기획안을 직접 수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4팀장이었고, 삼성 관련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파견검사들도 두루 요직을 거쳤다. 현재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신자용 대검 차장, 양석조 대검 반부패부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파견검사였다. 서울중앙지검 4차장으로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조상원 검사도 파견검사를 거쳤다.

민주당은 법정서 밝혀졌던 특검의 증거조작 상황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주당의 법 왜곡죄 발의를 놓고,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 의원은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 회의서 “범죄 혐의가 명백함에도 이를 고의로 간과한 검사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검찰이 의도적으로 불리한 증거만을 제출하는 등 증거은닉이나 불제출 행위 역시 법 왜곡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정서 드러난 최순실특검 증거조작 백태
독일·덴마크·스페인도…미국은 유명무실

같은 당 김용민 의원도 “법 왜곡죄는 독일·스페인·러시아 등에서도 존재하고, 검찰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를 제공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법률 적용이 왜곡됐는지 판단할 주체가 애매하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방탄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며 “검찰 수사와 기소권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위험이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당 장동혁 의원도 “검사가 범죄 혐의를 발견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하고, 증거은닉·조작 등은 다른 범죄 구성 요건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19년 6월 발간한 <형사사법 분야의 법 왜곡 방지를 위한 입법정책>에 따르면, 독일 형법에 규정된 법 왜곡죄에는 검사가 법적용을 위해 사실관계를 조작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독일에서는 대체로 구 동독 지역의 법관과 검사를 대상으로 적용됐다.

스페인·덴마크 형법도 고의·중과실로 법정된 형사 절차를 준수하지 못했을 때에는 처벌한다고 규정돼있다. 미국은 명목상으로는 검사의 법률왜곡 행위를 징계할 수 있지만, 1998년부터 2010년까지 연방검사의 부적절한 행위가 201건이 적발된 것에 반해 징계는 단 1건만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 및 기소 과정서 발생하는 각종 위법행위는 통상 윗선이나 정치권 등의 유도나 지시가 아울러 거론되는 정황이 있다는 점으로 비춰볼 때 “이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올 우려도 있다. 위 사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법 왜곡행위가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정황들도 있기 때문에, 그 우려를 흘려 넘기기만은 어려워 보인다.

검사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거론되고 있지만, 법안에는 ‘사법경찰관 및 기타 수사업무에 종사하는 자의 법 왜곡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경찰관의 고문·폭행·자백 강요가 있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대표적인 사건이다. 특히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경찰관들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을 경찰서 인근 모텔로 끌고 가 폭행하면서 자백을 강요한 사건이었다.

엇갈린 반응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논쟁보다는 잘못된 수사관행을 총체적으로 되짚어보면서 왜곡된 법 집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직·간접을 불문한 고위급이나 상급자의 유도·지시·압박 등에 의한 법 왜곡죄까지 검토해야 법안 발의의 진정성이 담보될 것으로 보인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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