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포식자들

2023.10.10 10:21:38 호수 1448호

장지웅 / 여의도책방 / 2만원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기업의 부도덕과 불법을 판단하는 건 사법기관의 몫이다. 투자자는 기업을 볼 때 도덕적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 관점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의 절반은 범법자다.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명단의 재계 순위 1~20위 기업 중 총수 일가에 법적인 문제가 없었던 기업은 포스코, 농협, KT, 카카오, 미래에셋 등 5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5개사 중 3개사인 포스코, 농협, KT는 법인 자체가 기업 총수다.

포스코의 총수가 ㈜포스코여서 총수에게 문제가 생길 수 없는 구조다. 나머지 2개사인 카카오, 미래에셋은 아직 승계가 진행되지 않은 기업이다. 

공식적으로는 2세 미승계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입장일 뿐 2세 승계가 가능한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기업은 거의 대부분 썩었다고 봐야 할까? 정치와 경제가 결탁한 절망적인 상황인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면 다른 질문을 해보자.

과연 부의 대물림은 나쁜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 내 부모가 건물주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증여받은 건물로 세를 받으며 조기 은퇴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손님으로 빼곡한 식당을 부모에게 물려받을 경우 어렵게 올라선 부모의 장사철학과 레시피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부분 말한다.


평생 식당일로 고생한 부모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서 멀쩡한 직장도 관두고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서 일하는 거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들은 부럽고 훈훈한 광경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왜 재벌3세가 가업을 이어받는 건 손가락질당해야 할까? 서민이 건물이나 잘되는 사업체, 식당을 물려받는 건 부럽고 효심 지극한 일인데 대기업 승계는 왜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미개한 가족경영처럼 얘기되는 것일까?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정작 피식자의 이중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융시장 포식자들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봐야만 돈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투자자는 주가의 하루 등락을 볼 게 아니라 특정 이슈가 기업의 최대주주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특허 침해 문제로 미국서 2년 가까이 소송전을 벌였다. 미국과 한국 정부까지 개입된 세기의 배터리 전쟁은 ‘합의금 2조원’으로 막을 내렸다.

앙숙이었던 이들이 쌍둥이처럼 똑같은 행동을 보인 게 있다. 

바로 배터리 부문의 물적 분할이다. 인적 분할이 아닌 물적 분할 발표 후 두 종목은 약속한 듯 주가가 하락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배신감에 몸을 떨며 가진 주식을 시장에 내던졌다. 값이 떨어진 주식을 외국인 등이 주워 담았다.

개인이 손절할 때 어부지리한 세력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당시 개인 투자자들은 전형적인 피식자의 행태를 보였다.

반대로 포식자들은 ‘이 행위가 최대주주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에 집중한다. 소액주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게 아니라 기업을 움직이는 오너의 시선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소액주주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푼돈만 만질 수밖에 없다. 흐름을 주도하는 포식자의 입장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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