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중개자들

2023.09.25 09:31:34 호수 1446호

하비에르 블라스, 잭 파시 / 알키 / 2만5000원

<얼굴 없는 중개자들>은 먼저 원자재 중개 업체의 시조인 루트비히 제셀슨, 테오도어 바이서, 존 H. 맥밀런 주니어를 소개하면서 현재 세계 3대 원자재 중개 업체인 글렌코어, 비톨, 카길이 탄생하기까지 원자재 중개 업계 흐름을 총 13장에 걸쳐 소개한다. 



리비아 ‘아랍의 봄’ 뒤에 있었던 비톨, (알루미늄 확보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대신 1980년대 자메이카에 자금을 지원해 정권을 바꾼 마크리치앤드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장기 집권에 숨은 공로자인 군보르에너지 등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누구와 어떻게 거래했는지, 그 거래가 미친 영향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취급하는 자원이 다르고, 국적과 언어 그리고 인종이 다른 원자재 중개자는 선악의 기준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이익만이 기준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얼굴’을 철저히 지우고 중개에 임한다. 왜 그럴까? ‘떳떳하지 않은’ 중개일수록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또 선악에 흔들리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이 단지 자메이카와 러시아만의 이야기일까? 우리나라 역시 이들의 영향서 자유롭지 않다. 이젠 ‘공급망 위기’ ‘공급 부족’이라는 용어는 너무나도 친숙하다. 원자재 수입이 끊기면 한국 경제는 모든 공장과 가게가 멈춰 선다. 우리 식탁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블라스와 파시는 비상장으로서 공개 의무가 없는 원자재 중개 업체의 재무 상황, 그들의 자회사 상황과 지배구조, 거래 방식 등을 상세히 해부한 수천 쪽의 자료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리고 20여 년간의 취재와 실제 원자재 중개 업체 경영자 인터뷰 내용까지 실었다.

당연히 원자재 중개 업체와 중개자가 끝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내용들이다.


최근 화두인 착한 소비, 지속 가능한 경영,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요즘 트렌드의 대척점엔 원자재 중개 업체가 있다. 그들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석유와 석탄으로 큰돈을 벌고, 독재와 아동노동으로 나온 면화와 원두를 거래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착한 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를 하고 싶다면, 윤리적 경영을 실천해야 하는 경영자라면 글렌코어나 카길이 어떤 곳이고, 이반 글라센버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야 한다. 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투자 측면에서도 그들을 알아야 한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책이 있다.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주식시장과 투자자가 아닌 원자재 중개 업체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원두를 사들여 원두 가격을 조종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스타벅스 주가는 브라질의 비보다 원자재 중개 업체에 달렸다.

우리의 삶을 진짜로 조종하는 이들은 청와대도 삼성도 구글도 아닌 ‘얼굴 없는 중개자들’인 셈이다. 그들에 관해 제대로 알지 않는 한 윤리적 소비도, 성공적 투자도, 지속 가능한 미래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얼굴 없는 중개자들’의 얼굴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에 관해 가장 노골적이고 집요한 신상 정보가 담긴 유일한 책이 바로 <얼굴 없는 중개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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