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사기 범죄 처벌 불편한 진실

  • 이윤호 교수
2023.07.08 00:00:00 호수 1436호

인간의 평균수명은 100년을 넘지 못하는데, 범죄자에게 선고된 형량이 150년이라면 믿을 수 있나? 과장이 아니고 사실이다. 미국 역사상 피해자가 가장 많았고 피해 규모도 제일 컸던 다단계 금융사기, 소위 ‘폰지(Ponzi) 사기’를 벌였던 월가의 큰 손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법원은 내릴 수 있는 최대 형량을 선고했던 것이다.



나스닥 증권거래 위원장까지 지낸 유력 금융인이 4800명의 피해자에게 무려 650억달러란 천문학적인 금액의 피해를 입혔던 데 대한 준엄한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2008년에는 노먼 슈머트라는 사람이 고수익 투자사기 사건으로 덴버 연방법원서 33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2000년에는 보험사를 상대로 4억5000만달러의 보험사기를 쳤던 숄람 와이스에게는 845년형, 공범 케이스 파운드에게는 740년형이 선고됐다. 

물론 미국이 비단 금융이나 보험이나 투자사기 범죄에만 엄격한 것은 아니다. 기업 최고책임자, CEO의 부정과 관련된 투자자 피해에도 마찬가지여서 세계적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부정과 공금 횡령에 대해서 24년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미국서 사기 범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야말로 수백, 수천의 피해자 엄청난 규모의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어도 사기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들 대한민국을 사기 치기 좋은 나라라고들 하는 이유다.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 나름 특별히 더 엄중하게 가중처벌을 위한다는 특별법조차도 50억원 이상의 피해액에 대해 법으로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정했으나,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전혀 그렇지 않다.

피해액이 100억원을 넘어도 실제 선고된 형량은 고작 3년에 정도에 그친다. ‘제2의 조희팔 사건’이라고 불렸던 1조원대 금융사기범죄를 저질렀던 IDS 홀딩스 대표에게는 15년형, 옵티머스 대표에게는 25년형이 선고된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금융범죄, 사기범죄에 관대한지를 엿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경우는 전체 피해액을 중심으로 양형이 결정되기 때문에 당연히 형량이 수백년까지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전체 피해액보다는 1인 피해액을 중심으로 형량이 정해진다. 전체 피해액이 1000억원이라도 피해자가 1000명이 넘는다면, 가장 큰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피해 금액을 기준으로 형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0억원 이상 사기에는 무기형까지도 선고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지만 실제 한 사람이 50억원 이상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 1000명에게 1억씩 1000억원을 사기쳐도 그중 50억원 이상 피해를 본 피해자가 없다면 1명에게 50억원을 사기 친 사람보다 형량이 더 가벼워질 수 있다.

심지어 경제범죄자가 아예 실형을 선고받지도 않고, 실형조차 집행유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금융사기, 투자사기, 보험사기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경제범죄는 속된 말로 남는 장사다.

범죄자에게 형벌을 가해 처벌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고전주의적 철학과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한다. 세속적으로는 인간은 계산적이라 이익과 손해를 잘 계산해 손해를 보는 선택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논리서 출발한다. 범죄의 이익보다는 형벌이라는 손해가 더 크게 만들어야 계산적인 인간이 범죄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특성을 파악한 미국의 Becker 교수는 범죄를 범죄로 인한 이익과 손실을 따져보는 경제학적으로 설명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서 더 최근에는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 이론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거의 모든 사기와 경제범죄에 대한 우리의 관대함이 사기, 경제범죄를 키우고, 궁극적으로 한국을 사기 치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온갖 사기나 경제범죄가 남는 장사가 절대 아닌, 크게 손해 보는 장사로 여겨질 수 있도록 형량이 절대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영리한 인간의 합리성이 범죄를 합리적 선택으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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