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는 착각

2022.08.16 10:17:59 호수 1388호

질리언 테트 / 어크로스 / 1만7800원

 

우리가 사는 방식을 ‘정상’으로 여기고 나머지 다른 방식은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고 모든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질리언 테트는 중국 속담 “물고기는 물을 볼 수 없다”를 빌려와 ‘어항’ 밖으로 뛰어내릴 때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고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문화를 수용하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맥락과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을 때 그 사회에 맞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대표 사례로 소개하며 ‘혁신적 금융 상품’ ‘파괴적 금융 공학’과 같은 용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리스크가 어떻게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는지 이야기한다. 만약 이 사태를 금융 엘리트의 눈이 아닌 인류학자의 렌즈로 바라봤다면 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리스크와 금융계 내부 모순을 사전에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애완동물과 소비자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해 사료 업계에서 반전을 일으킨 소비재 기업 마스의 사례, 에볼라부터 코로나19까지 세계 각지를 휩쓸고 간 전염병 대응 사례를 통해 빅데이터나 통계만으로 놓치기 쉬운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인류학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한편 우리는 소음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인류학의 힘은 우리가 사회과학에 귀 기울이고, 무엇보다도 숨겨진 무언가를 보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사회과학에 귀를 기울이면 내부인이자 외부인이 되기 위한 민족지학 도구를 수용하고 아비투스와 상호관계, 센스메이킹, 주변 시야와 같은 개념을 차용할 수 있다. 

질리언 테트는 책 후반부 월스트리트와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에서 인류학이 어떻게 사회적 침묵을 밝혀냈는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방법을 소개한다. 이런 분석의 틀을 도입해 정치와 경제, 기술을 다른 렌즈로 들여다볼 수 있다. 

2016년 9월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통령 토론에서 “bigly(크게)”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파이낸셜타임스> 뉴스룸은 낄낄대는 소리로 가득찼다. 트럼프의 말은 대통령이 쓸법하거나 저널리스트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공식적으로 적절한’ 영어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주의나 속물주의의 언어”에 신물이 나 있던 대다수 미국인은 트럼프에게서 동질감과 위안을 얻었고 그해 11월 그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기에 이른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 미국판 편집장으로 뉴스룸 현장에 있었던 질리언 테트는 이 경험을 되돌아보며 트럼프에 열광하는 지지자들의 문화와 언어를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그 열광 속 숨겨진 메시지를 놓쳐버렸다고 후회한다. 그리고는 ‘더러운 렌즈’라는 인류학적 방법론을 빌려와, 저널리스트 혹은 사회과학자라면 명심해야 할 조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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