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없다

2022.08.01 10:02:36 호수 1386호

로이 리처드 그린커 / 메멘토 / 3만3000원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가 정상성이라는 허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추적한 책. 낙인은 세상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 이 책은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역사적 양상(자본주의, 전쟁, 정신 질환의 의료화)을 연대순으로 살펴본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질병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산업혁명 시기의 경제적 요구, 단성 사회에서 양성 사회로의 이행, 인종주의, 식민주의 득세 과정에서 여성·동성애자·흑인의 몸이 어떻게 특정 정신 상태(정신이상)와 연결되었는지 탐색한다. 두 번째, 정신적 문제에 대한 낙인과 수치심을 군대와 민간 사회 모두에서 줄인 ‘전쟁’의 역할을 조명한다. 전시에는 정신의학적 장애가 전투 중이든 아니든 받아들일 만한 스트레스 반응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정신 질환의 점진적 의료화 문제를 다룬다. 의료화란 특정한 체질량에 이르는 것이 ‘비만’이 되는 것처럼 비의료적인 문제를 포함한 일상생활의 측면을 마치 의료적인 것처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의료화가 질병과 낙인의 사회적 기원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정신의학 역사서 대부분이 군진정신의학(military psychiatry)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그것이 정신의학사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재조명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 질환에 대한 분류와 설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이 만들었다.

군대가 만든 정신 질환의 분류 체계는 정신 질환 진단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초판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한 세대의 정신과 의사가 양산되었고, 정신역학이 진정한 전문 분야로 등장했으며 미국 심리학이 탄생했다. 한국전쟁 때는 심리치료의 핵심인 대화 요법이 일상화되었다. 

많은 정신보건 지도자들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것을 뇌의 장애로 이해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닌 뇌를 치료함으로써 낙인 찍기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4년에 정신과 의사 낸시 앤드리어슨이 낙인 찍기를 줄이기 위해 정신 질환을 ‘망가진 뇌’라고 표현했다.

그린커는 망가진 뇌 모델은 현대판 골상학(두개골과 코 턱 귀의 전체적 구조를 측정해 정신 질환과 인격 및 범죄 행동 성향을 설명하고 예측하려 한 유사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뇌에 직접 작용하는 치료법인 전기경련요법(ECT)에 대한 낙인 또한 없어지지 않는지 반문한다. ECT는 중증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지만 뇌엽 절제술과 관련된 끔찍한 낙인이 따라붙어 모든 치료법 중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료법이 되었다. 


저자는 정신 질환의 낙인을 감소시키고 정신의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항정신병 의약품 개발과 탈시설화, 신경다양성운동 등의 노력 외에도 낙인에 저항하는 좋은 예를 비교문화적 접근으로 제시한다. 

 

<webmaster@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