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일제 강제 동원 민관합동기구의 한계

2022.07.18 13:05:59 호수 1384호

“우리에겐 국민 지켜주는 국가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이 말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산과 강도 세월이 지나면 변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77년이 지나면 무엇이 바뀔까. 일본은 77년 전 한국인을 강제징용했지만, 사과나 보상은 없었다. 윤석열정부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 실속 없는 졸속 민관 협의회가 구성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일본이 일본 치하 강제 노역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관협의회가 지난 4일 공식 출범했다.

대화 시작

외교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조현동 1차관 주재로 강제 동원 피해자 측 대리인과 학계·언론·정재계 인사 등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협의회 첫 회의를 열었다. 첫 회의에서 구체적 해결 방안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관계자는 “대화의 자리가 문제 해결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언급하진 않았다. 피해자 측은 일본 가해 기업의 유감 표명이 있어야 한다며 일본의 가해 기업과 직접 협상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민관협의회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진 알 수 없지만, 제대로 된 협의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해당 문제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일요시사>는 (사)일제강제노역피해자정의구현전국연합회(이하 연합회)를 방문했다. 연합회의 총회원은 20만명으로, 중앙회와 지역본부로 나뉘어 움직였다. 


연합회의 한쪽 벽은 소송 서류로 빼곡히 가득 차 있었는데 모두 현재 진행 중인 소송 서류였다.  소송은 총 4건으로 나눠서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는 총 666명의 인원이 참여한 소송으로 일본어로 번역했고, 양이 너무 많아서 아예 책으로 만들어서 제출했다. 현재 이 소송은 1심에서 계류 중이다.

장덕환 (사)연합회장은 민관협의회에 대해 “역사적인 증거를 외교로 사용하고 있다. 위안부 사건처럼 일본 치하 강제 노역 동원 피해 당사자를 빼고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민관협의회에 들어가 있는 피해자 단체는 ‘법무법인 해마루’와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추진 협의회’다. 해마루는 2018년에 일제 강점기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바 있다.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은 피해자 4명에게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했다.

피해자 783만명 중 300명만 추려낼수도
“소수가 피해자 전체를 대변할 수 없어”

해마루가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법무법인 대표로 적합해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피해자가 대략 783만명이나 된다. 세밀히 보면 외국으로 동원된 사람이 200만명, 국내로 동원된 사람이 500만명 정도다. 이렇게 피해자 수가 많은 것은 한 달에 하루나 이틀 정도로 단기간만 징용된 사람들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결국 승소 판결을 받은 4명의 피해자가 아닌,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피해자로 민관협의회를 꾸려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다. 즉 민관협의회에 참여하는 피해자 단체가 피해자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장 회장에 따르면 피해자 783만명 중 300명만 추려서 보상을 해 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피해자가 783만명이나 되는 상황에 300명만 추리면, 나머지 피해자는 사과나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방식은 피해자를 차별화·계층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장 회장은 혹여나 특정한 사건의 원고에 해당하는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일 외교 정상화를 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해결 방법은 수많은 피해자를 도외시하고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여태까지 정부는 피해자가 어떤 방향의 해결을 원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장 회장은 “연합회 회원이 20만명이고, 현재 연합회에서 진행 중인 소송 인원 수만 1004명이다. 그런데 정부는 한 번도 회원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다. 사람을 10명 만나면 보상을 원하는 사람 5명, 사과를 원하는 사람 5명”이라며 “각자 상황마다 원하는 게 다 다른데,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통합된 해결책이 나올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갑자기 ‘속전속결’로 진행? 
피해자 차별화·계층화 우려

정부가 민관협의회 구성을 ‘속전속결’로 하겠다는 말도 피해자들의 마음에는 상처였다. 여태까지 제대로 된 전수 조사도 한 적 없으면서, 일을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의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피해자는 “우리에게는 국가가 없다. 그러니 일본이 우리에게 보상도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하며 해외 사례를 설명했다. 

201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설치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일본 오사카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었는데, 소녀상의 소식을 들은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매도시 결연을 끊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위안부 기념비는 노예화와 성매매를 강요받은 과거와 현대의 모든 여성이 직면한 고통을 상징한다며 기념비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며 일과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장 회장은 한국서 기자회견을 하면 일본 현지 기자와 한국 특파원 기자는 찾아오지만, 정작 한국 기자는 오지 않는다며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장 회장은 “정부가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특정한 법무법인의 두 변호사가 피해자를 대변하고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반대한다”면서도 “물론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라는 곤란한 사태가 긴박하게 다가오고 있다. 해당 사건의 법률대리인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외교부가 피해자 그룹을 사안별 대응책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폭넓게 접근

이어 “해당 법무법인의 변호사들이 마치 강제징용 피해자 전체를 대변하는 듯한 언동은 다른 피해자들과 그들을 위한 운동 단체에 좌절과 소외감을 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임 수상의 사망, 참의원의 재편 등 일본 정계의 급작스러운 변동이 있다”며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전체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민관협의회의 구성과 운영을 폭넓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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