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낙태약을?’ 불법 구매 루트 보니…

2022.07.11 14:03:18 호수 1383호

‘미프진’ 12만원 3주면 배송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은 지난 2019년 4월11일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낙태가 합법이 됐다. 하지만 대체 입법을 통한 임신 중지권 보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낙태를 위한 의료 시술 및 약물복용도 마찬가지다. 특히 합법적 방법으로 낙태약을 구매하기 위해선 불법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한 게 현실이다.



형법 제269조에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으로 한국에서 임신한 여성은 낙태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으나 2019년 4월11일부로 폐지됐다.

SNS로 접근

당시 폐지된 조항은 형법 제270조 ‘의사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와 모자보건법 제14조 ‘의사는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등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등이다.

이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임신중절수술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3년이 넘도록 낙태죄 대체 입법이 지체되고 있다. 

결국 낙태죄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도, 여성은 여전히 위험한 임신중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임신중절수술을 선택할 경우 7만원부터 300만원까지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낙태약을 대표하는 ‘미프진’ 역시 불법이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자궁 수축을 유도하고 호르몬 생성을 억제해 인공유산을 유도하는 알약이다. 임신 초기에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안전하게 복용할 경우 수술을 받지 않고 낙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60개국 이상에서 팔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권고에 따라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임신 7주 이내로 확진받은 여성만 복용이 가능하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다.

수술은커녕 미프진 구매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10대가 임신을 하면 위험은 배가된다. 지난해에 개봉한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에는 임신한 청소년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 영화에서 청소년들은 ▲배에 경락 마사지 ▲계단에 굴러보기 ▲벽에 부딪히기 ▲신약 실험에 지원해 약 먹기 등 위험한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한다. 중요한 건 영화 속 내용이 현실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먼 온 웹’ 접속 차단했지만…
가상 사설망 사용하면 가능해

실제로 10대들은 ‘낙태하는 법’을 인터넷에서 공유하고 있고, 위험천만한 방법을 동원해 낙태를 시도하고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문제는 낙태약 ‘미프진’이 합법화되면 해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프진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온 적도 있다. 지난 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여성 정치인들이 낙태죄 대체 입법을 앞장서서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입법 공백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여성이 음성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낙태죄 보완 입법을 비롯한 산적한 민생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법안 합의를 하지 않으면 여성의 건강권이 너무 침해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미프진이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미프진 구입을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게시글이 올라온다. 가격대도 천차만별로 20만원에서 45만원까지 다양하다.

불법으로 유통되다 보니 가짜 약도 팔린다. 2020년 5월에는 300명 여성에게 가짜 미프진을 팔아 1억3000만원을 챙긴 일당이 입건되기도 했다. 이들은 중국산 자연유산 유도약을 FDA 승인을 받은 정품 미프진이라고 속였다. 


구매 여성에게는 전문지식 없이 복약 지도까지 했다. 이 약을 복용한 여성 중 일부는 과다출혈, 복통 등의 부작용을 호소했다. 가짜 약물을 복용한 여성 중에는 배에 피가 고이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도 있다. 이 여성은 10대 청소년으로 자궁 외 임신을 한 줄 모르고 약을 먹은 것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10대가 불법 유통되는 미프진을 구해 먹고 낙태가 온전하게 되지 않아 과다출혈을 일으켜 실려 오기도 한다. 심하면 자궁을 덜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안전하게 ‘정식 미프진’을 구할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먼 온 웹(Women on Web)’이나 ‘우먼 온 웨이브(Women on Waves)’ 등의 사이트에 신용카드로 대략 12만원(90유로)을 기부하면 배송으로 미프진을 받을 수 있다. 한국 배송까지 3주 정도가 걸리며, 해당 단체서 배포하는 약은 임신 9주 이내의 여성이 먹으면 낙태가 가능한 약이다.

우먼 온 웹은 여성의 낙태를 돕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비영리단체다. 낙태를 원하는 모든 여성을 돕는 것은 아니고, 낙태가 금지된 국가에 있는 여성을 돕고 있다.

낙태죄 사라져도 의료 서비스 전무
“여성의 건강권 심각하게 침해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장벽은 있다. 한국에서는 이 단체 자체가 불법이다. 의사나 약사의 처방전 없이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도 불법이다. 게다가 한국은 인터넷으로 의약품을 거래할 수 없도록 돼있다.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도 인터넷에서 거래하면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우먼 온 웹이 한국에서 접속이 차단된 사이트라는 부분이다. 2019년 3월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 따라 국내 접속을 막아놨다. 하지만 사이트 자체에서도 우회 사이트 접속 방법을 기재해놨고, 낙태약이 절실한 여성은 가상 사설망(VPN)을 사용하면서 접속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많은 여성은 우먼 온 웹에서 미프진을 받고 있다. 우선 ‘가짜 약물’일 가능성이 가장 낮기 때문이고, 상담 및 의학적 조언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먼 온 웹은 미프진을 신청한 여성에게 ‘의료진의 지침사항’도 준다. 지침사항에는 ‘미프진을 사용한 낙태는 임신 12주까지 가능하다. 단 약품 낙태는 9주까지가 가장 안전하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미프진 복용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미프진 복용 시 친구나 믿을 수 있는 지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작용이 생겼을 때 대처법도 기재해놨다.

우먼 온 웹을 통해 미프진을 복용한 A씨는 낙태에 성공했다. A씨는 “처음에는 약을 먹어도 불안했다. 배탈, 가슴 통증, 복부 통증이 있었다. 입덧이 바로 사라지진 않았지만, 2주 정도 지나자 입덧이 멈췄다. 부정출혈은 한 달 넘게 지속됐다”고 말했다.

사칭 사이트도

물론 여기서도 주의할 점은 있다. 우먼 온 웹을 사칭하는 사이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칭 사이트도 기부금을 받고 낙태약을 보내지만, 가짜 낙태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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