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놀이' 범죄자들의 잇단 자서전 논란

2021.07.19 14:16:39 호수 1332호

감옥서 평생 썩어도 책으로 이름 남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다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다.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도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책을 집필했거나 집필하려고 하는 범죄자들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범죄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게 포토라인이다. 포토라인에 서는 범죄자들은 자신이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하기도 한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범죄를 일으키면 인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뒤 죄를 뉘우치기보다 자신을 우상화해 자서전을 출간하려는 이들도 있다.

기나긴 수감
독서·글쓰기

일본에서 인육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죄로 풀려나 자신의 범행 일체를 <악의 고백>이란 책으로 펴낸 살인마 사가와 잇세이의 자서전이 화제가 됐다. 또 1997년 고베 아동 연쇄살인 사건의 가해자인 당시 14세 소년 살인범은 32세가 된 해에 자신의 범행 경위와 심경을 담은 수기 <절가>를 펴내며 피해 유가족의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살인 경험을 쓴 해당 자서전은 2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희대의 살인마는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유명세를 탄 사가와는 <신센죠노 아리아>라는 성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등 인기를 누렸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영웅담 만들기’를 좋아하는 일본문화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사가와 잇세이 이전부터 국내의 범죄자들도 자서전을 출간한 적이 있다. 


지난 1991년, 국내 여객기 한 대가 인도양 상공서 실종된 적이 있다. 115명이 희생된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폭파 사건의 전모와 자신의 공작원 선발과 훈련 과정, 유년기에 대한 추억을 담은 수기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를 펴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국민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당시 김씨는 책으로 벌어들인 인세 8억5000만원을 KAL기 유가족 대표단에 전달하며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에도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문을 흘립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소설가 노수민씨가 김씨 자서전의 대필 사실을 폭로했다. 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서전 집필을 의뢰받을 당시 대필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각서를 쓰기도 했고 소설가로서 남의 글을 대필한 것이 자랑도 아니라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최근 공개된 김씨 편지에 그가 겪은 고통을 들은 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씨를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자서전이 인기를 끌자 조폭들도 앞다퉈 자서전 출간을 계획했다. 1995년 만기 출소한 조양은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듬해 <어둠속에 솟구치는 불빛>을 출간했다. 조씨는 자서전에서 순천교도소 난동을 자신이 배후 조종했다고 서술했다.

조폭이 전하는 싸움의 기술
살인마가 밝힌 살인의 이유

이후 영화 출연, TV 토크쇼 출연 등 갖가지 화제를 뿌리다 이듬해 사기, 폭행 등의 혐의로 재구속돼 2년 실형을 살았다. 2001년에는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다시 구속, 10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는 3년간 도망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 김태촌과 조양은 측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978년 화해하고 조창조씨가 신상사에게 사과하면서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주먹으로 전국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신상사파 신상형씨도 저서를 냈다. 1932년생인 신씨는 1950년대 명동에서 가장 강한 조직을 이끌었고,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전국구 보스 ‘신상사’로 군림했다.

그 역시 2013년 발간한 저서 <주먹으로 꽃을 꺾으랴>에서 1대 1 싸움 철학을 기술했다. 


책 내용에는 싸움의 기술 중 먼저 공격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주먹으로 턱을 가격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비슷한 싸움 실력에서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조폭 전성시대일 때 조폭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 위용을 드러냈다. 주먹 세계에 일어나는 일과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책에 담아 출간한 것이다. 

희대의 탈옥범 신창원씨도 책을 쓴 적이 있다. 직접 신씨가 쓴 것을 아니지만 <신창원 907일간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지금 나를 잡으려고 군대까지 동원하고 엄청난 돈을 쓰는 데 나 같은 놈이 태어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넌 착한놈이다’하고 머리를 쓸어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쌍놈의 새끼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는 내용이 기재돼있다. 

출소 전후
줄줄이 출간

신씨 배경을 알게 된 독자들은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네티즌 리뷰에 ‘신창원도 불쌍하다. 가난하고 돈 없어서…’ ‘신창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등 신창원의 가난하고 열악한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간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를 잃은 신씨는 6년 뒤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신씨에게는 가난보다,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슬픔이 컸다. 만약 아버지가 사랑을 줬다면 신씨가 이리 엇나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신씨를 폭행했고 나중에는 계모까지 가세했다. 신씨 계모는 신씨 동생이 아픈데 관심도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을 받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해 중학교 입학 세 달  만에 퇴학당했다.

신씨는 중학교 학생들로부터 잦은 따돌림에 석 달 만에 중퇴하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수감됐다. 신씨 아버지 신흥선씨는 아들이 소년원에 들어가서 새 사람이 되길 갈망했지만 신씨 사건으로 인해 본격 반항적인 인생을 살게됐다.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씨도 최근 구치소에서 자서전 집필에 매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살인범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하고 있다는 것.

이씨가 구치소에서 쓴 편지와 탄원서, 그리고 법원에 매일 작성해 제출하고 있는 반성문을 입수해 해당 내용을 공개했다.

한 매체에 따르면, 이씨는 법조인에게 쓴 편지에서 1심에서 무기징역을 받은 뒤 2심에서 싸우겠다며 항소 준비를 부탁하는가 하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주현 서울경찰청 경사는 “이영학이 사이코패스 평가에서 40점 중 25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25점은 사이코패스 판정 최저선이다. 이 경사는 “어릴 때 장애로 놀림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면 친구를 때리는 등 보복적 행동을 했고, 대응 방식이 폭력적이었다”고도 했다.

주먹 세계 
뒷이야기

이어 “성(性) 각성 수준이 높다”며 “아내와 17년을 살면서 수준이 조금씩 강해져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아성애자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 여성을 성범죄 대상으로 계획했다가 여의치 않자 통제가 쉬운 여성 청소년으로 바꿨다는 게 근거다.

어릴 적 트라우마가 관리되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자기를 피해자로만 여기다 보니 타인에 대한 보복심으로 이어졌다”며 “아내를 매춘부 취급했던 일에 비춰봤을 때 이영학은 매우 지배적인 성적 경향을 가지고 여성을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범행 동기 중 핵심적인 부분이 성적 쾌락”이라며 사이코패스 성향과 성 도착증적 행동에 연관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씨 자서전에는 “여자애들 앞에서 무안을 당한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며 “나도 모르게 눈물까지 주룩 흘렀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큰 바위 얼굴’이라고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차례 자서전을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작가 정성환의 글에 따르면 이씨 자서전은 실제로는 자신이 쓴 소설이며 출판사에 의해 에세이로 둔갑했으며 정 작가의 이름도 배제됐다. 

38세 나이로 6000억원대 어음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큰 손’ 장영자씨도 자서전 출간 계획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장씨는 이순자씨를 상대로 낸 소송이 무위(無爲)로 끝나자 이를 설욕하기 위해 <월간조선>에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이순자씨 관련 자료 등을 수집해 자서전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죄 뉘우치긴커녕 스스로 우상화
간증·강연 등 굴곡진 삶 전해

장씨가 작성한 서한 대부분에는 이순자씨에 대한 원한이 묻어 있는데 그는 시종일관 이순자씨를 ‘이 부인’이라고 호칭했다. 장씨는 이씨가 2017년 출판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 중 ‘작은아버지 처제 장씨가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남편 이철희씨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내용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도’ 조세형씨도 자서전을 준비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당초 조씨의 자서전은 ‘대도’라는 이름에 가려진 진짜 조씨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내는 내용으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조씨가 직접 쓴 이 책은 고아로 자라 거리에서 보낸 유년기, 소년 시절 장난으로 시작된 물건 훔치기, 자주 드나들었던 소년원과 당시 사회의 모습, 도둑이 돼 물건을 훔치는 생활을 담을 계획이었다. 

또 ‘대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건, 거듭된 탈주, 절도죄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사연, 누구도 견디지 못할 엄정 독거방의 고통, 교도소에서 겪은 이야기, 출소 후 만난 인연들, 행운으로 빚어진 가정, 재활을 위한 노력 등이 담겼다.

또 종교를 만나고 시작한 간증 생활, 보안업체에서 일하며 겪은 이야기, 말년에 일본에서 겪은 수난,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도’라는 허명, ‘대도’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었던 마음도 담았다.

조씨는 기나긴 수감생활 중에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해왔다. 조씨 필력은 이미 판검사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는 수준이다. 또 간증 활동 및 강연을 통해 다져진 경험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는 2012년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와 계약을 맺고 자서전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3일 강남 소재의 한 고급빌라를 털다가 출동한 경찰에게 잡히면서 출간은 무산됐다. 

항변하는 
싸이코패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범죄자들은 책을 내고 싶어하거나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강호순도 자신의 범죄를 책으로 써서 인세를 아들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기와 더불어’ VS ‘전두환 회고록’
김일성은 되고 전두환은 안 된다?

법원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항일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대한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자 4년 전 전두환씨 회고록이 출판·배포 금지 결정을 받았던 것과 비교되고 있다.

지방법원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결론내렸지만 법원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씨 회고록은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출판과 배포가 금지된 반면,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이 별다른 문제없이 출판돼 팔리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은 법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책의 내용을 문제삼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보호이익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인격권 침해나 명예훼손 여부에 있어서도 두 책이 법원에 의해 다른 판단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한 내용 등이 문제된 전씨 회고록은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던 5·18 단체들의 주장을 광주지법이 받아들였다.

회고록 내용이 조비오 신부를 비롯한 당사자들의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법원이 인정했다.

반면 김일성 회고록에 대해선 서울서부지법은 책 내용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 표현물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판매·배포 행위가 가처분을 신청한 시민단체 구성원들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부지법은 “신청인인 시민단체는 김일성 회고록의 내용이 대한민국 국민 일반의 인격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이유로 판매·배포 금지를 요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격권은 전속적 권리로서 채권자들이 임의로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이 같은 신청을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국민 일반을 대신해 시민단체가 김일성 회고록이 국민들의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 셈이다.

김일성 회고록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진행했던 소송대리인 측은 “신청인 중 한 사람은 납북된 인사의 직계후손이고 이 책은 납치범죄 전쟁범죄자를 거짓 미화하는 책인데, 그런 거짓된 책이 합법의 가장을 띄고 돌아다니는 것은 납북자 직계 후손의 인격적인 명예나 정신적인 온전성을 침해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씨 회고록은 2017년 8월 광주지법이 5·18의 진실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출판·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법원이 문제삼은 부분을 삭제한 ‘삭제판’이 재출간됐으나 5·18 단체는 2017년 12월 다시 삭제판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삭제판 출판·배포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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