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신동 김대섭, 다시 날아오르다

2009.02.03 12:36:19 호수 0호

1998년 고교 2학년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오픈을 제패하고 2001년 대학 2학년 때 또 한 번 한국오픈을 제패하며 ‘골프 천재’로 불리던 김대섭을 그 무렵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풋풋했던 그를 만난 후 7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해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고 2년간 우승이 없어 와신상담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가 올해 3년 만에 우승컵을 안으며 다시 한 번 세간의 스포트라이트 받고 있다.


지금이야 한국남자프로골프를 주름잡는 선수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젊은 프로들이지만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최광수, 강욱순, 신용진 등 30대 중·후반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이 무렵 등장한 무서운 10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대섭이었다. 앳된 얼굴에 체격도 호리호리한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한국오픈’처럼 큰 무대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 프로들과의 대결에서도 당당하게 경기를 펼쳤기에 많은 골프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1998년 한국오픈에서 한국 남자골프 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된 김대섭은 2001년 대학 2학년 때 다시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대회에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당시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하면 ‘군 면제’라는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프로무대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한참 동안 주변에서 프로전향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 올 때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말해왔었는데 사실 요즘은 그때의 선택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지금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김대섭 프로는 그 당시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아마추어가 1년 이내 프로전향을 하면 프로테스트를 면제한다’는 조항에 끌려 프로로 전향했다고 한다.
2002년 프로로 전향한 김대섭은 시즌 첫 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 4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른 뒤 포카리스웨트 오픈에서도 공동 2위에 올라 프로무대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9월에는 국내 대회 중 최고 상금이 걸린 메이저대회인 삼성증권배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프로데뷔 11개월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 김대섭은 총상금 1억7616만원을 벌어 상금순위 2위에 올랐고 그해 KPGA 최우수 신인에게 주어지는 명출상도 받았다. 다음해인 2003년에도 프로 2년차 징크스 없이 포카리스웨트 오픈에서 대회 최소타 타이기록인 19언더파 269타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기록하며 상금순위 5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2005년 3번의 준우승 끝에 동부화재 프로미배 PGA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때 그에게 미PGA로 진출하라는 권유가 쏟아졌고 현재 소속사인 스포티즌의 노력으로 SK텔레콤과 2년간 후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대섭은 2005년 12월 같은 대학(성균관대)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오던 왕윤나 씨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결혼 후 김대섭의 골프는 하향세를 나타내기 시작해 2008년 9월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결혼이 김대섭의 골프가 쇠퇴한 원인’이라는 억지스런 주변의 시선을 받았다.
“결혼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주변의 그런 시선에 아내와 저, 둘 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아무 굴곡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인 결혼이 오해를 샀다는 사실에 괴롭기도 했다.”
김대섭은 올해 3년 만에 우승을 거두며 상금순위 3위에 올라 한국프로골프대상 시상식에서 ‘감동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두 돌을 넘긴 아들 ‘단이’가 함께했다.
“3년 간 왜 그렇게 골프가 안 됐냐고 묻는다면 어떤 시합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 솔모로 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잘 가다가 마지막 날 스코어를 잘못 적어서 실격까지 당했다. 그 일 이후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안 된다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진짜 안 되더라. 그러다보니 드라이버샷부터 시작해 골프가 망가졌다.”
2008년 상반기에 특별히 감이 좋거나 하진 않았는데 몇몇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마음이 놓였었다는 김대섭 프로. 그 여세를 이어가고 싶었던 김대섭은 후반기 시작하기 전 2달간의 휴식기에 아내가 컴퓨터에서 찾아주는 스윙을 보면서 감을 많이 익혔다고 한다. 후반기 시작한 후 3번째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좋은 성적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역시 아내였다. 그동안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었다. 아내는 성격이 저랑 정반대다. 저는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아내는 시원시원하고 활발한 성격이다. 골프가 잘 안 될 때,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가서 운동하라는 소리도 안 하고 제가 하는 대로 지켜봐줘서 고마웠다.”

고교 2년때·대학 2년때 한국오픈 제패, ‘골프천재’ 등극
큰 무대에서의 기라성 같은 선배 프로들과 대결 ‘위풍당당’


지난 한 해 가장 아쉬웠던 대회로 상반기 때 있었던 토마토저축은행배 대회를 꼽은 김대섭 프로. 김형성 프로가 우승을 차지했던 그 대회에서 그는 초반에 역전도 했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2위를 차지했지만 기폭제 역할을 했던 대회로 기억했다.
후반기 때 KEB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감각을 회복한 그는 이후 서너 개의 큰 시합에서 우승권에 들면서 한 번 정도 더 우승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가졌지만 2008년은 그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소중한 한 해였다.
한편 SK텔레콤과의 계약이 끝난 후 후원사를 찾지 못했던 김대섭 프로는 대학교 2~3학년 때 도움을 주었던 삼화저축은행 회장과의 인연으로 올해 삼화저축은행과 후원계약을 맺기도 했다.
“저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 제게 닥친 가장 큰 과제는 군대 문제인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정말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할 생각이다. 일본이나 미국무대로의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 군대는 이르면 올해 갈 것 같다. 안 되다가 잘되니까 욕심이 생겨 조금 더 하다 갈까, 아니면 빨리 다녀올까, 이 생각 저 생각 들어서 고민 중이다.”
김대섭 프로는 2009년에 또 한 아이를 얻게 된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면 마냥 행복해지고 의욕이 생긴다는 김대섭. 아직 많지 않은 나이지만 ‘좋은 아빠’의 모습이 느껴지는 그를 보는 마음이 흐뭇해진다.


김대섭 프로필
▲ 1981년 6월 30일생
▲ 2001년 프로입문
▲ 스포티즌 소속
▲ 계약: 삼화저축은행
▲ 173cm/65kg
▲ 1998년 한국오픈 우승
▲ 2001년 한국오픈 우승
▲ 2002년 삼성증권배 제45회 한국프로골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3년 포카리스웨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5년 동부화재 프로미배 제48회 PGA 선수권 대회 우승
▲ 2008년 한-중투어 KEB인비테이셔널Ⅱ 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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