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은행 지점장 투신자살 파문

2012.06.25 15:46:19 호수 0호

여기서도 실적 저기서도 실적 "출근하기 두렵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외국계 시중은행 지점장이 아파트 계단 창문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지점장은 자필 유서를 통해 업무 실적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알려지면서 금융권의 영업실적 스트레스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은행은 지난해 노조원들의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제 도입 강행을 추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예견된 죽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용인서부경찰서에 따르면 한국SC(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중소기업 담당 조모(49) 지점장이 18일 오전 6시20분께 수지구 상현동 소재 자신이 살던 아파트 16층 계단 창문을 통해 투신,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조씨는 A4용지 3쪽에 달하는 자필 유서를 통해 업무 실적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했으며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에게도 "출근하기가 두렵다"는 말을 종종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압박 스트레스

조씨는 유서에서 "은행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항상 머릿속에 뱅뱅 돌고 압박감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조직이 너무 힘들게 한다"며 "최근 취급한 대출에 과실이 있어 은행에 민폐를 끼친 것 같고 지점 관계자들에게도 미안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의 가족들은 경찰에서 "조씨가 최근 잠을 못 잘 정도로 실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진술했다.


유서와 증언 등에 따라 경찰은 조씨가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며 실적 스트레스로 이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실적 스트레스와 투자실패 등을 비관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금융권 종사자들은 2002년 이후 매년 평균 3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시중은행 지점장이 자신의 고객으로부터 유치해 투자한 주식이 폭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증권사 직원 2명 등도 비슷한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SC은행의 '성과연봉제'를 들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직원 개인을 1~5등급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SC은행의 성과연봉제는 3등급 이상 직원에게만 노사가 합의한 인금인상률이 적용되도록 하고 있으며, 4등급일 경우 임금인상률의 절반만 적용하고 5등급은 전년도 급여를 동결하고 있다. 2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은 직원들은 후선으로 발령을 받고 그래도 영업성과가 개선되지 않으면 임금이 삭감된다.

성과급제 도입 강행 추진 ‘예견된 죽음’이었나?
추가 자살 가능성 제기 "근본적 대책 마련돼야"

SC은행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 할 때 노조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지난해 6~8월 장기파업까지 돌입했을 정도였다. 이는 은행권 최장기 파업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사측은 파업 중 영업을 일시 중단한 43개 지점 가운데 15개 지점을 영구 폐쇄하면서 맞섰다. 조직쇄신을 이유로 브랜드 명칭을 변경하고 명예퇴직제를 통해 813명의 직원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업무가 전가됐고 당시 신규채용이 시급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노조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SC은행은 성과연봉제 대신 6개월마다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등급을 정하는 '성과향상프로그램(PIP·Performanxe Improvement Plan)'을 도입했다. 성과향상프로그램의 정식명칭은 성과향상지원계획으로 직원들의 역량개발과 성과향상이 목적이라는 명분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적이 좋지 않으면 경고, 견책, 감봉 등 조치를 취하는 제도다.

평가위원회의 자체평가기준으로 6개월마다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1~5등급까지 매기게 되고 1~3등급은 인센티브와 급여인상, 원하는 직무배치, 승진 포상이 주어지며 4~5등급에 해당하는 600여 명 직원에게는 경고 조치가 내려진다. 또한 4~5등급 직원은 6개월 동안 현장실무를 통한 비즈니스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SC은행은 여기에 '후선발령제도'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태스크포스(TF) 구성을 통해 추가 논의 후 시행한다는 계획인데 후선발령제도는 실적이 부진한 직원들을 일선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별도의 목표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 노조 관계자는 "조씨는 과다 설정된 대출 실적을 100% 채웠는데도 그 이상을 강요받았다"면서 "수많은 직원들이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자살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이스트 사태 및 팍스콘 사태 때처럼 SC은행 직원의 추가 자살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곤혹스러운 SC은행

SC은행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향후 대책마련에 나섰다. 조씨의 죽음을 성과연봉제와 연관시키는 것에도 유감을 표하고 있다.

SC은행 관계자는 "경찰에서 조사 중인 사안이고 회사 측에서도 아직 유서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