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 신화’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 인생유전 풀스토리

2012.05.11 19:36:08 호수 0호

초라한 말년 보내는 ‘대구 이건희’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청구그룹을 기억하십니까?’ 1980∼90년대 잘나가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청구 신화’. 한때 재계 서열 30위권 총수였던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이 초라한 말년을 보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업 자금이 없어 아들 친구에까지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구 출신의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은 부산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자본금 2000만원으로 청구주택개발공사를 설립,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장사’를 시작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이후 10여년간 아파트 건설로 탄탄한 기반을 잡았다.



‘선단식 경영’ 발목

장 전 회장은 이를 토대로 1986년 서울로 진출했다. 첫 사업은 서울 중계동 청구아파트였다. 당시 현대건설, 우성건설 등 정상급 아파트 건설업체들을 제치고 청약경쟁율이 무려 37대 1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어 1990년 분양한 분당1차아파트 청약경쟁율은 수도권 신도시 최고인 203대 1을 기록했다.

장 전 회장은 부동산 경기 활황에 힘입어 매출이 크게 늘자 유통, 방송, 광고 등으로 사세를 급속도로 키웠다. 청구그룹은 모기업인 ㈜청구를 비롯해 청구주택, 청구산업개발, 청구상호신용금고, 대구방송, 블루힐백화점, 삼양코아 등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30위권까지 성장했다.

장 전 회장은 정부로부터 석탑산업훈장(1982년), 국민훈장목련장(1987년), 동탑산업훈장(1991년) 등을 수상했다. 1996년 한 조사에서 ‘총수 월급 순위’에서 10위 안에 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과 함께 월 급여로 7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었다.

그러나 청구그룹은 주택 경기에 한파가 불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끝내 1997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침몰했다. 외부 차입금에 기댄 ‘선단식 경영’을 펼치다 무너진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부도가 난 건설업체는 동아건설(1998년), 우성건설(1996년), 건영(1996년), 한신공영(1997년), 우방(1998년) 등이다. 이중 우방과 건영은 청구와 함께 대구를 기반으로 했던 건설사였다.


부도에 이어 ‘검풍’이 청구그룹을 덮쳤다. 검찰은 이듬해 장 전 회장을 횡령 혐의로 구속,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나아가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해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등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장 전 회장은 1472억원의 회사자금을 유용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6년6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때 재계 30위권…무리하게 몸집 불리다 침몰
비리로 징역 5년 채우고 출소…재기 사업도 좌초

이 와중에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이 경매에 넘어가는 굴욕을 당했다. 또 종합소득세와 증여세 등 252억원을 체납해 국세청이 발표한 대구 지역 고액 체납자 명단(2007년 말 기준)에 1위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동안 받았던 산업훈장 등도 모두 박탈됐다.

장 전 회장은 2003년 5년간의 형기를 모두 채우고 만기 출소했다. 각종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은 재벌 총수들이 대부분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난다는 점에서 다소 이례적이었다. 그 이후에도 장 전 회장처럼 형기를 다 채운 ‘회장님’은 없었다. 하나같이 ‘옆길’로 샜다.

장 전 회장은 출소한 뒤 한동안 칩거생활을 했다. 일체 외부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장 전 회장은 집에서 쉬고 있다. 재기를 모색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은둔해 있던 장 전 회장이 다시 회자된 것은 재기를 모색하면서다.

그는 타인 명의로 소규모 회사인 E사를 설립, 20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산업단지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초기만 해도 순탄하게 진행됐다. 금융기관들로부터 출자의향서와 참여의향서 등을 발급받은데 이어 평택시와 면적 4.3㎢, 사업비 3조7000억원 규모의 산업단지를 개발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금융기관과 건설사들이 사업 참여의 전제조건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에 참여하지 않아 위기를 맞았다. 장 전 회장은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지난해 1월 평택시가 업무협약을 해지하면서 완전히 무산됐다.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장 전 회장은 아들로부터 소개받은 대학 친구 서모씨가 관심을 보이자 “평택시와 공동으로 토지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투자를 권유해 12억원을 빌렸다. 2007년 10억원을 빌린 뒤 이듬해 다시 2억원을 빌렸지만, 프로젝트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돈을 갚지 못했다.

결국 장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서씨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장 전 회장이) 개발사업을 벌이다 자금이 부족해지자 임의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렸다”며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아들 친구에 손 벌려

14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장 전 회장은 지난 3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장 전 회장은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릴 당시 평택시와 공동으로 추진하던 사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며 “어려운 상황을 피해자에게 속이거나 숨기려 했다는 증거가 없어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장 전 회장의 사업이 차질을 빚은 것은 평택시가 일방적으로 사업 물량을 축소하고, 시공사가 사업 참여를 하는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자유로워진 장 전 회장은 올해 70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노구’의 다음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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