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이 부른 부부 간 '황혼의 비극' 실태

2012.03.29 09:35:18 호수 0호

"내가 죽어야 끝날까? 죽여야 끝날까?"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백년해로'는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자녀까지 모두 출가시키고 노년에 이혼하는 이른바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겉으로는 아무일 없이 살아왔지만 속으로는 절절 끓고 있는 부부들이 많다는 것. 최근 늘어나고 있는 황혼이혼의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가정폭력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부부싸움 끝에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지난 21일 서울 중랑경찰서는 부부 싸움을 하던 중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아내 권모(60)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양모(61)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은퇴 후 수년간 직업이 없던 양씨는 권씨로부터 돈을 벌어 오지 못한다는 잔소리를 들어왔으며, 양씨는 자주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양씨는 이날도 만취한 상태에서 권씨가 돈 얘기를 꺼내 말다툼을 벌이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부엌에 있던 흉기를 휘둘렀다.

말다툼 끝 흉기

양씨가 휘두른 흉기에 권씨는 수차례 찔려 숨졌으며 싸움을 말리던 아들도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같은 날 서울 도봉구에서도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내를 흉기로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로 이모(52)씨가 구속됐다. 이씨는 지난 15일 오전 2시30분께 서울 도봉구 도봉동 자택에서 아내 김모(49)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김씨가 이혼 얘기를 꺼내자 홧김에 베란다에 있던 장식용 수석을 들어 아내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으로 후송된 김씨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 21일 정오쯤 숨졌다.


지난 13일에는 경남 사천시에서는 아내가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술에 취해 부부싸움을 하다가 부엌에 있던 식칼로 가슴을 찔러 살해한 60대 남편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천경찰서에 따르면 정모(63)씨는 술에 취한 채 지난 12일 밤 12시5분경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아내가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부엌에 있던 길이 31cm 식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내를 당구 큐대로 찍어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3일 경기 평택경찰서는 부부싸움을 하다 격분해 아내를 당구 큐대로 찍어 살해한 김모(65)씨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월21일 오후 9시30분께 평택시 자택에서 아내 한모(59)시가 평소 자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한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벌이다 격분해 당구 큐대로 한씨의 머리와 가슴 등을 수회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범행 다음날 119에 전화를 걸어 "사람이 죽은 것 같다"고 신고했고, 경찰에는 "전날 밤 아내와 술을 마셨는데 아내가 평소 지병이었던 저혈압으로 죽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한씨의 몸에서 폭행 등 타살 정황이 발견됨에 따라 거짓말 탐지기 등을 동원해 김씨를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흉기로 찌르고 수석으로 내리치고 살벌한 부부싸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이젠 '칼로 살 베기'

한편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도 잇따라 발생했다.

경기 남양주경찰서는 지난 5일 부부싸움 끝에 남편을 살해한 A(6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일 오후 6시30분께 남양주시 화도읍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 B(62)씨와 말다툼 및 몸싸움을 벌이다 고무호스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술을 마시고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왔다"면서 "술에서 깨면 또 때릴 것 같아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진술했다.

경기 시흥경찰서에는 지난 4일 부부싸움 끝에 남편(56)을 둔기로 내리쳐 숨지게 한 아내(55)가 살인 혐의로 붙잡히기도 했다.

한편 부인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자 사망한 것으로 오인한 60대 남성이 극약을 마시고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한 일도 있었다. 지난 20일 전남 진도경찰서에 따르면 19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C(69)씨 집에서 C씨와 부인 D(60)씨가 쓰러져 신음 중인 것을 이웃 주민이 발견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이들 부부는 긴급 출동한 전남도 소방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남편은 숨졌다. 응급치료를 받은 부인 D씨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며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C씨 집 방에서 농약병과 수면제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남편 C씨는 농약을 마시고 부인 D씨는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부부싸움 뒤 부인 D씨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지 않자 숨진 것으로 오인한 남편 C씨가 이를 비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보고 정확한 사망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가정불화 공개해야

이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칼로 살 베기' 부부싸움이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가정불화나 부부싸움을 가족 내 문제로 치부하고 공개를 금기시 하는 사회분위기와 인식이 부부싸움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전문적인 치유나 상담을 받아 초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주변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계속 쌓여가면서 감정에 치우친 두 당사자가 직접 부딪히다 보니 극단적인 방법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다.

한편 통계청의 2010년 이혼 통계에 따르면 50세 이상 여성의 이혼 건수는 2만900건으로 10년 전인 2000년(7500건)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남편에 의해 목숨을 잃은 아내의 수는 최소 57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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