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기자도 솔깃했던 신종 '불법 다단계' 유혹

2012.03.22 08:58:18 호수 0호

"연봉 1억8000만원, 당신도 이룰 수 있습니다?"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대학생' 사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허황된 꿈을 꾸는 대학생들이 그 덫에 걸려들고 있다. 불법 다단계업체가 신학기를 맞아 서울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에서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합숙이 문제되자 이젠 감시자를 붙여 찜질방으로 숙소를 옮기는 수법을 썼다. 미인계까지 등장했다. 고수익과 취업을 미끼로 학생을 유인해 강제로 물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고 사이비종교에 버금가는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는 한 불법 다단계업체를 <일요시사>가 잠입 취재했다.



봄철 신학기 맞아 다시 고개 드는 불법 다단계 유혹
취재 내내 달라붙었던 여 매니저, 기자 모텔로 유인

지난 13일 오후 2시 취재기자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한 다단계업체의 실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 거여역 인근의 한 커피숍을 찾았다. 가게 안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은 남녀 2명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아예 없었다. 기자는 그들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말을 꺼냈다. 그들은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더니 이내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함께 있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더니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기자에게 건넸다. 남성이 소개를 시작했다.

늘씬한 여성 매니저
화려한 언변에 솔깃

"저는 ○○○○에서 영업총괄을 맡고 있는 김정환(가명)이라고 합니다. 옆은 영업사원 모집을 담당하는 신고은(가명) 매니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취업준비생 000씨 맞으시죠?"

이들은 기자를 지방 모 사립대를 갓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취업준비생으로 알고 있었다. 어수룩한 표정으로 "맞다"고 하자 이들은 기자에게 부모님께 전화할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연신 기자가 "괜찮다. 알고 계신다"고 말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래도 지방에 계시는 부모님은 걱정하실 겁니다. '잘 도착했다. 회사 쪽 사람 만났다'고 전화 한번 하세요."

'지방에서 온 걸로 알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기자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니 전화를 거는 척하고 통화도 혼자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통화(?)를 끝내자 이들은 이상한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회사 홍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이었다.

"서울에 아는 사람은 없어요? 요즘 결혼식도 많은데 예정되어 있는 지인 결혼식은 없나요? 집에는 별일 없죠?"

왜 이런 것을 물어보나 싶어 곰곰이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혹시라도 신분을 의심할까 싶어 성실하게 대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불법적 회사가 아니다'고 안심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실장 옆에 앉아있던 매니저 신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자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불법 다단계업체에서 미인계도 쓴다고 하는 말이 헛소문은 아니었다. 신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호감이 가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앉아 있을 때는 몰랐지만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왜 이쪽으로 옮겨 앉느냐"고 묻는 것도 이상할 정도로 행동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신씨는 기자에게 찰싹 달라붙더니 회사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00씨가 마트에서 1만원짜리 수박을 샀다고 가정할게요. 그런데 그 수박의 생산지 원가가 1000원이라면 9000원이라는 차액은 어디서 생겼을까요?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통과정에서 생긴 비용이겠죠. 예를 들자면 운송·창고보관·광고 등 중간유통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는 거죠. 저희 회사에서는 이런 유통과정을 개개인이 담당해요. 회사 직원이 소비자 겸 판매자가 되는 거죠. 00씨가 회사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 물건을 제3자에게 팔면 제3자는 제4자에게, 제4자는 제5자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식이에요. 그럼 당신은 중간 판매원이 되고 최종 판매원 여럿을 거느린 셈이죠."

종이에 이것저것 쓰고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미리 불법 다단계업체라는 사실을 알고 오지 않았다면 '혹'할 수도 있는 설명이었다. 신씨의 말은 너무도 그럴듯했다.


30여 분 동안 정신 차릴 새 없는 설명이 끝나고 이들은 기자를 사무실로 이끌었다. 사무실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신씨는 기자와 팔짱을 끼면서 회사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거여역 인근 골목길을 따라 5분여를 걸었을까? 이들은 기자를 지상 5층짜리 건물로 안내했다. 응당 있어야만 하는 회사 간판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10여 명의 직원들이 기자를 둘러싸더니 여기저기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씨(지인)친구분이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강의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가방이랑 겉옷, 그리고 휴대폰은 제가 맡아 드릴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자는 20평 정도 되는 강의실에 앉아있었다. 가방과 겉옷은 누가 가져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김씨가 기자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A4용지 3장으로 이뤄진 종이는 나이, 군필 여부,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작성하는 부분부터 부모님의 직업, 월평균 소득, 주거형태, 보유자동차의 종류 등 초등학생 시절 작성했던 가정환경실태조사서를 연상케 했다.

다단계 아니라고?
속지마세요!

사실대로 적었다가는 당장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허위로 작성하고 제출했다. 주변 연수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몸에 딱 붙는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성 강사가 들어왔다. 이 강사는 자신의 가방에서 소지품을 모두 책상위에 늘어놓더니 열띤 강의를 시작했다.

"기 있는 모든 물건들 가격을 합하면 1000만원이 넘을 겁니다. 저는 현재 32살 다이아몬드급 이사입니다. 일을 시작한지는 4년째, 초기 투자금 300만원, 현재 월수입 1500만원 이상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저보다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습니다. 300만원이 너무 부담된다면 사측에서 저리로 자금을 융통해드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자금이 준비되면 여러분들에게 사측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제공하고 여러분들은 그 물건을 팔아 또 다른 하위판매원을 모집하면 됩니다."

급 1500만원이면 단순계산으로도 연봉이 1억8000만원이다. 1억8000만원은 월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숨만 쉬고 3년9개월을 모아야 하는 금액. 금액만 보면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었다.

전화·문자 이용제한
회사 내부규정?

기자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몇몇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믿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강사는 자신의 통장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정말 매달 10일에 1500만원 내외가 입금되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이러다가 여기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 때문에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 같았다.


이들이 판매하는 물품은 대부분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한 중소기업이 만든 기능성 속옷이나 화장품, 의료보조기기, 건강보조식품 등이었다. 하지만 실제 물품들은 돈이 마련되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강사가 화이트보드에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회사의 조직도였다. 사장이 화이트보드의 왼쪽 중앙에 위치했고 두 갈래로 줄이 나눠지고 양쪽으로 다이아몬드가 위치했다. 다이아몬드는 각각 5갈래로 나눠졌고 그 끝에는 골드가 적혔다. 골드 역시 5갈래로 나눠져 레드로 이어졌고 레드 역시 5갈래로 나눠져 블루로 이어졌다. 고개를 왼편으로 꺾어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영락없는 피라미드였다. 

2시간여 동안 정신없지만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강의가 모두 끝났다. 고개를 돌려 연수생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강사의 언변에 모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세뇌교육의 무서움이었다.

강의 2시간 만에 빠져드는 연수생들, 참기 힘든 '고수익' 유혹
알아도 걸려드는 무서운 다단계 '덫'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기자는 중간보고를 위해 처음 만났던 실장을 찾아 가방과 겉옷 그리고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사무실 번호를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순간 실장이 기자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가관이었다.

"강의가 끝나 휴대폰은 돌려드렸지만 아직 연수는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전화 통화나 문자는 할 수 없어요. 회사 내부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취재 중간보고는 해야 했다. 머리를 굴렸다. 화장실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실장이 따라왔고 "급하다"고 말을 하고 뛰어 들어가 화장실 문을 닫았다. 밖에서 실장이 소변을 보고 손을 닦으며 연신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통화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대신 볼륨을 무음으로 낮추고 문자를 보냈다.

10분 정도가 흐르고 실장이 문을 두드리며 기자를 재촉했다. 실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연수생들이 먼저 가 있다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실장은 자신이 골드등급이라며 월 500만원 이상을 번다고 했다. 호프집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니 20여 명의 연수생들이 여기저기 나눠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테이블당 한명 꼴로 실장이나 매니저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화장실 등의 이용을 위해 자리를 뜨는 연수생들에게 여지없이 맨투맨으로 따라붙었다.

기자도 신씨와 함께 자리를 잡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기자를 데려온 실장은 연수생들의 주의를 끌더니 숙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 사측에서 마련한 숙소가 있는데 오늘 유난히 연수생들이 많이 몰렸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숙소가 비좁을 듯해요. 그래서 여성 연수생들은 사측이 마련한 숙소로 가고 남성 연수생들은 찜질방을 이용하도록 할게요. 물론 찜질방 비용은 사측에서 부담합니다."

설명이 끝나자 실장과 매니저들은 게임을 주도하면서 연수생들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고 기자의 술잔도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졌다. 이런 저런 핑계로 술을 거절한지 2시간쯤 지났을까?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들이 남성 연수생들과 짝을 맞춰 한 커플씩 호프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깨동무를 하거나 팔짱을 끼는 등 오래된 연인사이를 연상케 했다.

그때 기자 옆에서 연신 술을 마시던 신씨가 노골적으로 기자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니 유혹을 하는 듯했다. 가뜩이나 짧은 치마는 스타킹 끝 부분이 보일 정도로 올라가 있었으며 기자에게 몸을 기대왔다. 기자가 별 반응(?)이 없자 기자의 손을 이끌었고 못 이기는 척 신씨를 따라나섰다. 5분여를 걸었을까? 신씨가 한 모텔로 들어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신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찜질방으로 가겠다"고 하자 기분 나빠할 줄 알았던 신씨가 안내를 해주겠다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찜질방에 도착해 신씨가 매표소에 "○○에서 왔어요"라고 하자 직원이 표 2장을 건넸다. 신씨와 헤어지고 대충 몸을 씻고 찜질방으로 들어서니 그곳에서도 역시 '네트워크 마케팅' 찬양 일색이었다. 여자 연수생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성 매니저 여럿과 남자 실장들이 보였고 찜질방으로 들어서는 기자를 발견한 실장 한 명이 기자에게 다가와 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관함 열쇠를 가져갔다.

"내일 아침에 다 같이 이동해야 되는데 한 분이라도 열쇠를 잊어버리면 늦어지니까 통합 보관 할게요."

구석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헤어졌던 신씨가 찜질방으로 들어서더니 기자를 발견하고 다가왔고 남자 실장 한명도 기자 옆에 누웠다. 무슨 '포로수용소'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12시30분. 이제 슬슬 '수용소'를 탈출할 준비를 해야 했다. 기자가 자는 것이 확인돼야 이 둘도 잠에 들것 같았다. 일단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내 고요해졌다.

모두들 자는 듯 했다.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00씨 어디가세요?"

아직 잠이 들지 않은 것인지 뒤척임에 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찌됐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용변을 보러간다 말하고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문을 열면 신씨와 실장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자리로 와 누웠다.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이 지났을까? 찜질방 내부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새벽 3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찜질방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기자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카운터로 가 옷장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 뒤 1만원을 지불하고 예비열쇠로 옷장을 열어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노력해도 깊게 빠져드는
마약 같은 '검은 유혹'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의 휴대폰이 무섭게 울어댔다. 총 3개의 번호를 수신 거부하니 더 이상 전화는 울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고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세상사다. 하지만 종종 들려오는 불법 다단계 피해사례를 보면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가 겪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다단계 체험은 잠시 기자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빠져들 만큼 솔깃하게 사람을 세뇌시켰다. 지금이라도 불법 다단계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빠져나와 관계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시는 불법 다단계의 검은 유혹에 빠져들지 말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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