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삼성 오너부부가 특정 종교에 120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재벌그룹 총수들의 종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장님’들의 종교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와 불교가 대부분. 이도 아니면 무교이거나 천주교, 원불교, 성공회 등 소수 종교를 갖고 있다. 총수들은 무슨 종교를 믿을까.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봤다.
기독교·불교 양분…천주교·원불교·성공회도
부인·집안 영향으로 심취…가슴 아픈 사연도
10대 그룹 오너들의 종교를 살펴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교회를 다니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불교 신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은 각각 원불교, 성공회, 천주교를 믿고 있다.
총수들이 종교에 빠진 과정은 다양하다. 최태원 회장은 부인이 전도했다. 최 회장은 원래 무교에 가까웠다. 최 회장의 부친은 물론 형제들도 종교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최 회장이 기독교에 심취한 것은 2003년 ‘SK사태’로 구속되면서다. 최 회장은 7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보낸 뒤부터 대학로에 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집안간 인연 맺기도
최 회장이 신앙인으로 변신한 것은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성경 공부를 하던 재계 총수 부인들이 1999년 결성한 ‘미래회’를 주도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종교를 갖게 된 배경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구 회장도 무교였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던 구 회장은 1990년대 중반 고등학생이던 외아들 원모씨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불교에 귀의했다. 당시 아들의 위패가 안치돼 있던 삼청동 칠보사를 찾아 슬픈 마음을 달랬다. 칠보사엔 구 회장 부부와 장녀 연경씨 이름으로 원모씨의 영혼을 위로하는 거대한 석등이 설치돼 있다.
종교 활동을 하다 집안간 인연을 맺은 총수들도 있다. 바로 삼성·한진·GS 일가다.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은 원불교를 믿고 있다. 최근 원불교 해외 포교사업에 쓰라며 지난 2년간 총 120억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는 홍 관장의 부친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영향이 컸다. 홍 전 회장은 집안에 원불교 법당까지 만들고 수행할 정도로 독실한 원불교도였다.
집안의 영향을 받고 자란 홍 관장은 여성불자 모임인 ‘불이회’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 모임에서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을 만났다. 임 명예회장 부부는 불교 상징인 코끼리를 의미하는 ‘대상’으로 사명을 정할 정도였다. 홍 관장과 박 부회장의 친분은 자녀들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불이회를 통해 평소 가깝게 지내면서 1997년 이재용-임세령의 교제를 주선했고 이듬해 결혼했지만 결국 파경했다.
한진가도 불교 모임이 경사로 이어졌다.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는 2006년 김태호 충북대 교수의 외동딸 김미연씨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기여고 선후배 사이이자 불교 신자로 친분을 쌓은 양가 모친의 소개로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기독교인 허창수 회장의 자녀는 신앙으로 사랑을 키워 결혼했다. 허 회장의 장녀 윤영씨는 2006년 김영무 김앤장 대표변호사의 장남 현주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둘은 미국 뉴욕에서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랑을 키웠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점이 두 사람을 급속히 가깝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와 관련된 아이러니한 상황도 엿보인다. 현대가문은 전체적으로 불교 색채가 짙다. 정몽구 회장도 불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1995년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인 정지선씨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로, 이 집안이 기독교인 게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승연·박용현·박삼구 회장은 집안의 영향을 받았다. 김승연 회장은 재계에서 드문 성공회 신자다. 성공회는 1534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파한 개신교의 한 종파. 김 회장의 부친 고 김종희 창업주는 ‘성 디도’, 김 회장은 ‘프란시스’란 세례명이 있다. 부자는 정동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을 자주 찾았다. 매년 7월 열리는 김 창업주의 추도식을 이 성당에서 열고 있는 김 회장은 성공회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잘 드러내지 않아
박삼구 회장은 친가와 외가는 물론이고 처가도 이름 난 불교 집안이다. 선친과 모친, 형제들의 위패가 모셔진 순천의 송광사를 자주 찾는다.
박용현 회장 일가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두산가가 상을 치를 땐 돌아가신 이를 기리는 가톨릭식 연도가 끊이지 않는다. 조문객도 유난히 신부와 수녀들이 많다.
신격호 회장은 종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2002년 대한생명 인수전 당시 롯데그룹도 관심을 보였으나 신 회장의 부친 묘소도굴 사건이 터졌고, 신 회장이 기도하는 형상의 63빌딩을 인수하려 해 이런 일이 생긴 것으로 여겨 포기한 일화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