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20년의 기록’ 이정진

2018.04.02 10:07:09 호수 1160호

한지에 찍어낸 자연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달 8일부터 작가 이정진의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정진은 한국 현대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작가다. 그의 개인전 ‘이정진: 에코- 바람으로부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국립현대미술관서 선보이고 있는 이정진의 개인전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사진 전문기관인 빈터투어 사진미술관과 공동으로 추진됐다. 2016년 스위스 빈터투어 사진미술관, 지난해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립미술관과 스위스 르 로클 미술관을 순회한 후 더 확장된 형태로 나타났다.

이전 전시서 볼 수 없었던 ‘미국의 사막Ⅲ’ ‘무제’ ‘바람 시리즈’의 일부 작품들이 공개된다. 또 작가가 한지에 인화하는 암실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도 함께 소개된다.

더 커진 전시

‘미국의 사막’은 1990년대 초 이정진이 미국을 여행하며 마주한 원초적인 자연 풍경을 주제로 제작한 4개의 연작이다. 사막, 바위, 덤불, 선인장 등 자연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과 비현실적인 공간에 감응하는 내면의 울림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장엄하고 숭고한 자연 풍경을 그대로 포착하기보다는 사막에서 발견되는 물리적 특징과 형상을 극적으로 확대하거나 제거해 버리는 등 장소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인상을 표현했다.


‘무제’ 연작은 1997∼1999년 작업한 작품들이다. 해변에 있는 나무 기둥, 바다와 부두, 물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등 자연을 다뤘다. 이정진은 모든 이미지를 세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한 화면 담아내는 과정을 거쳐 이미지를 추상화했다.

사막, 바위, 덤불, 선인장…
사실 그대로 아닌 주관 담아

이 과정이 끝나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미지들은 고요하지만 동시에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다. 또 섬세하면서도 강하다.

2004∼2007년까지 미국 뉴멕시코 사막과 한국의 각지를 여행하며 포착한 풍경을 담은 ‘바람 시리즈’도 주요 볼거리다. 이정진은 숲이나 들판 혹은 사람의 흔적이 남은 마을서 감정과 상상력을 흔들어놓는 장면을 만나게 될 때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지형학적이거나 사실적인 속성보다는 풍경에 투영된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는 사색과 내면의 표현이다.

이정진은 원래 대학서 공예를 전공했지만 사진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공부했다.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이스라엘 프로젝트’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참여했다.

끝없이 시각 언어에 몰두
한지 사용해 독특한 질감

이스라엘 프로젝트 ‘This Place’는 2011년 유태인의 삶을 기록해 온 프랑스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프레데릭 브레너가 기획한 국제 사진 프로젝트다.

브레너는 사진작가 12명을 초청해 이스라엘의 땅과 현실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정진은 컬러 사진의 거장인 미국의 스테판 쇼어, 독일 현대 사진을 대표하는 토마스 슈투르스,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조세프 쿠델카 등과 함께 분쟁지역서 발견되는 균열과 모습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담아냈다.

이정진은 자신의 작업을 사진이라는 고정된 장르로 규정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면서 작업 방식과 인화 매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그 과정서 발견한 게 바로 한지다.
 


그는 전통 한지에 붓으로 직접 감광 유제를 바르고 그 위에 인화하는 수공적인 아날로그 프린트 기법을 통해 매체와 이미지의 실험과 물성, 질감을 탐구했다. 한지의 사용은 재현성과 기록성, 복제성과 같은 사진의 일반화된 특성서 벗어나 감성과 직관을 통한 시적 울림의 공간을 보여준다.

독특한 울림

이번 전시에선 이정진이 1990년과 2007년 사이 20여년간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11개의 아날로그 프린트 연작 중 대표작 70여점을 재조명한다. 각각의 피사체가 지닌 원초적인 생명력과 추상성 등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특히 별도의 액자 없이 한지 프린트 원본 그대로 설치돼 아날로그 프린트 작품의 독특한 질감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물성과 질감, 수공적인 것에 깊이 천착해 독특한 시각 언어를 창조해 낸 이정진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뜻깊은 전시”라며 “익숙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마주하며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7월1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이정진은?]

▲학력

뉴욕대학교 사진과 대학원 졸업(1991)
홍익대학교 공예과 도자 전공(1984)

 


▲개인전

‘Echo’ Musee Des Beaux-Art, 레 로클, 스위스(2017)
‘Unnamed Road’ 파리 포토 특별전, 그랑팔레, 파리, 프랑스(2017)
‘Everglades/Opening’ Andrew Bae Gallery, 시카고(2017)
‘Echo’ Stadtische Galerie Wolfsburg, 볼프스부르크, 독일(2017)
‘Echo’ Fotomuseum Winterthur, Retrospective, 윈터투어, 스위스(2016)
‘Everglades’ Stephan Witschi Gallery, 스위스(2016)
‘Everglades’ Camera Obscura Gallery, 파리, 프랑스(2016)
‘Works From Everglades And Unnamed Road’ Howard Greenberg Gallery, 뉴욕, 미국(2015)
‘Thing’ 신세계 갤러리, 서울, 한국(2014)
‘Thing/Wind’ 동강 사진 박물관, 영월, 한국(2013)
‘Wind/Thing’ Camera Obscura Gallery, 파리, 프랑스(2012)

 

▲수상

동강 사진상(2013)
Anonymous Was A Woman Awards(2011)
Photography Award, Camera Club of New York(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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