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모레퍼시픽 ‘수상한 부동산’ 추적

2011.08.19 18:32:22 호수 0호

제주땅 알박기 의혹…큰 덩어리 노림수?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가 포착됐다. 제주 땅을 사는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수년째 버티고 있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다른 토지주들이 원하는 토지분할도 거부하고 있다. 이 땅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아모레퍼시픽의 의문투성이 부동산 거래를 들춰봤다.

2005년 8만평 서광리 임야 지분 20%만 매입
6년째 더 사지도 팔지도 않고 눈치만 ‘살살’



아모레퍼시픽이 제주 땅에 이른바 ‘알박기’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몇년 전 수만평의 임야 가운데 일부 지분만 매입한 뒤 버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때문에 땅이 묶여 재산권 행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모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소재 임야 25만7096㎡(약 7만7900평)의 지분 20%를 30여년 전부터 소유하고 있다. 지인들과 함께 은퇴 후 제주에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지분을 나눠 공동소유하게 됐다.

“늙어 보낼 곳이…”
노후 꿈 산산조각

그러나 지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모씨가 자신의 지분을 아모레퍼시픽에 매각하면서 강씨의 꿈이 꼬이기 시작했다. 신씨는 2005년 6월 소유하고 있던 지분 20%를 장원산업에 팔았다. 장원산업이 서광리 임야 5만1419㎡(약 1만5581평)의 소유권을 쥔 셈이다. 당시 매매가는 약 16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고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장원(粧源)’이란 아호를 딴 장원산업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서 창업주의 차남)이 최대주주로 사실상 오너일가 소유의 개인 회사였다. 녹차를 생산하는 농장사업과 부동산임대업 등을 사업 목적으로 1974년 12월 설립됐다가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따라 서광리 땅을 산지 6개월 만인 2005년 12월 ㈜태평양에 흡수합병됐다.

합병 당시 장원산업 지분은 서 사장이 53.63%를, 나머지는 대부분 기타 특수관계인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 지주회사였던 ㈜태평양은 지난 3월 계열사간 연관성 강화 및 글로벌 기업이미지 구축 차원에서 사명을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 변경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서광리 땅의 지분을 매입한 뒤 그대로 뒀다. 다른 지분을 추가로 사지도, 갖고 있는 지분을 팔지도 않았다. 이 땅이 묶이면서 공동 토지주들은 재산권 행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동의 없이 처분이나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법 등 관련법에 따르면 공동소유의 물건은 다른 공유자의 동의 없이 공유물을 처분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한 필지의 땅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면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권리를 제대로 내세울 수 없다. 지분만 거래한다 해도 개별 부동산의 구체적인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아모레퍼시픽 외 강씨 등 나머지 지분 소유자 5명은 아모레퍼시픽의 ‘알박기’식 지분 매입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주들 땅 묶여 재산권 행사 못해
수십차례 토지분할 제의했으나 거부

이들은 “막강한 자금과 권력을 쥔 대기업이 힘없는 소시민들의 재산을 움켜쥐고 있다”며 “지난 6년간 20% 지분을 가진 아모레퍼시픽의 합의 없이 어떤 재산권 행사도 불가능했다”고 호소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제주에서 보내고자 했던 꿈과 희망이 무너지고 오히려 피맺힌 한과 절규만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강씨와 다른 토지주들은 아모레퍼시픽 측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토지분할은 지적도에 등록된 1필지의 토지를 지분만큼 2필지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공유토지를 분할할 경우 공유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분할이 이뤄질 수 없다.

이에 따라 토지주들은 수십회에 걸쳐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제의했다. 그때마다 회사 측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다 나중엔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됐다. 한번은 아모레퍼시픽의 ‘OK 사인’을 받아 토지분할을 위한 지적 측량 등 용역에 착수했으나, 또 다시 뒤늦게 백지화해 토지주들이 수천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에 토지분할을 요구했지만 부서간 서로 떠미는 것도 모자라 결제가 늦어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며 “매번 토지분할을 해주겠다는 구두 약속만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1년에 세금만 수백만원씩 내는 등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부지 점유도 지적했다. 그는 “지적 측량을 하면서 공동 소유의 부지 수천평을 회사 측이 주차장, 녹차밭 등으로 어떤 승인도 없이 무단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줄곧 시정을 요청해도 모른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랬다 저랬다’
말 뒤집기 반복

그렇다면 아모레퍼시픽은 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매입한 것일까.

문제의 땅 바로 인근엔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고 있는 녹차밭 ‘서광다원’이 있다. 따라서 업계에선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 확보 차원에서 땅의 지분을 사들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최초의 차 전문박물관인 ‘오설록 티 뮤지엄’이 있는 서광다원은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대 차 생산지로, 면적이 66만1160㎡(약 20만350평)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의 녹차사업은 서 창업주의 필생의 의지로 이뤄진 산물이다. 이 창업주는 국내에서 사라진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1970년대 버려졌던 황무지를 직접 일궈 차나무 재배단지를 조성했고, 1980년대부터 설록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서 사장의 차 사업에 대한 의지도 남다르다.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차 사업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울 방침을 내비치기도 했다. 녹차는 전통음료로서의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 유망사업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2015년까지 주사업인 화장품에 이어 핵심사업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서 사장은 평소 “녹차는 맥이 끊긴 우리나라 차 문화를 잇기 위해 부친이 필생을 바친 일”이라며 “그 유지를 받들어 우리나라를 녹차 강국으로 만들겠다” 고 임직원에게 강조해 왔다.

만약 아모레퍼시픽이 사업부지용으로 서광리 임야의 지분을 사들였다면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된다. 무슨 이유로 부지 전체를 매입하지 않고 일부 지분만 취득했느냐다.

"땅 문제 법적분쟁으로 끌고 가
싼값에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

이에 대해 강씨는 아모레퍼시픽의 야욕을 의심했다. 한마디로 땅 전체를 노린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의도라는 게 강씨의 주장. 강씨는 또 땅 문제를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가 결국 싼값에 다른 지분까지 통째로 거머쥐려 한다고 의심했다.

실제 부동산 공유자간 합의가 되지 않아 토지분할이 불가능할 경우 법원에 공유물분할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통상 서로 좋은 위치의 땅을 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실상 협의 분필이 어렵다. 이때 법원은 직권으로 경매를 명령하고, 경매 처분 후 매각 대금을 공유지분별로 배당받게 된다. 경매는 토지 공유자도 참여해 낙찰 받을 수 있다. 낙찰가는 대부분 일반 시세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강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토지주들의 부담이 커져 아모레퍼시픽이 협상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며 “소송을 하려고 해도 실거래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땅 시세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논란이 되고 있는 서광리 산XX번지의 공시지가는 지난 1월 기준으로 단위면적(㎡)당 8480원으로 나타났다. 총면적이 25만7096㎡란 점을 감안하면 이 임야의 땅값이 22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분을 매입한 2005년 1월 공시지가는 9770원. 6년 전에 비해 땅값이 내려갔지만, 실거래가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에 호재가 많아 실거래가가 공시지가보다 수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았다.

서광리 일대는 ▲첨단과학기술단지 ▲휴양형 주거단지 ▲신화·역사공원 ▲서귀포관광미항 ▲헬스케어타운 ▲영어교육도시 등 건설교통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서 추진하는 6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신화·역사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신화·역사공원은 오는 2015년까지 404만㎡(약 122만4000평)에 1조6000억원을 투입해 세계적 수준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JDC는 2007년 12월 우선 510억원을 투입해 부지 조성공사에 착수했다.

일체 함구…의혹만 키워
확인취재도 응하지 않아

한국산업은행은 “신화·역사공원의 개발 효과가 고용 파급효과는 3만1497명, 생산 파급효과는 2조3553억원, 소득파급효과는 5015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은 제주 땅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어 의혹을 키우고 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사실 확인을 위한 본지의 취재에도 응하지 않아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이희복 아모레퍼시픽 홍보팀장은 지난 10일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회사 땅 문제는 잘 모른다. 담당 부서에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19일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11일 아모레퍼시픽 측에 지분 매입 배경, 토지분할 거부 이유, 부지 활용 계획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 역시 어떠한 회신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반론이나 해명을 듣기 위해 십여 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회사 측은 “팀장이 자리에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여러 번 메모를 남겨도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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