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비자금’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공판 지상중계

2011.08.17 11:10:00 호수 0호

오리온 부부 ‘질질 짰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오리온그룹 오너 부부가 법정에서 만났다. 피고석에 담철곤 회장이 앉았고, 증인석엔 이화경 사장이 앉았다. 두 오너가, 그것도 부부가 법정에서 어색한 ‘각도’로 재판을 받은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두 사람은 울먹였고, 이내 재판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남편 선처해주세요” 이화경 사장 증언 내내 ‘울먹’
담 회장도 눈물 흘렸지만 재판부 “준법부족” 일침

지난 9일 오후 4시50분 서울중앙지법 424호 형사법정. 3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유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로 지난 6월 구속 기소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 대한 속행 공판이 진행됐다. 담 회장은 회삿돈 226억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74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푸른 수의를 입고 등장한 담 회장은 부티가 절로 흘러넘치는 귀공자 포스는 온데간데없었다. 수척해진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담 회장은 신분과 거주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치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이 오가는 사이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두 나 때문”

조용하던 법정이 술렁인 것은 담 회장의 부인 이화경 오리온 사장이 나오면서다. 피고석에 담 회장이 앉았고, 증인석엔 이 사장이 앉았다. 이 사장은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구속되지 않았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남편 구속으로 인해 경영공백이 우려되는 점, 본인 건강이 좋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입건유예했다.

화려한 평소와 달리 수수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한 이 사장은 증인석에 앉자마자 글씨가 깨알같이 적힌 메모지를 책상에 올려놓은 뒤 진술을 시작했다. 선처를 부탁하는 이 사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이내 울먹였고, 이를 듣고 있던 담 회장도 눈시울을 붉혔다.

“주변의 우려에도 오리온의 경영시스템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증언하기로 결정했다”고 첫 말문을 연 이 사장은 담 회장을 가리키며 “남편이 저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나 때문”이라며 훌쩍거렸다. 먼저 이 사장은 담 회장의 ‘업적’을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해외시장 진출 등의 담 회장 공로를 부각시켰고, 이 사장이 이를 맞받아쳤다.

“‘35g 외교관’이란 광고대로 초코파이로 대한민국의 정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회사를 있게 한 남편은 해외 인맥과 외국어 실력 등 본인의 에너지를 해외시장 개척에 쏟아 경쟁사보다 앞서 오리온을 세계 60개국에 진출시켰습니다.”

이어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전했다.

“남편의 구속으로 일본,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룹의 최대 위기인 지금 남편의 경영복귀 기회를 한 번만 주신다면 오리온이 아시아 넘버원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사장은 담 회장과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 과정도 털어놨다. 집안 반대가 심했던 사실을 고백한 것. 담 회장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 사위다. 고조부가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 대구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던 화교 집안에서 태어난 담 회장은 서울외국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던 이 창업주의 차녀 이 사장과 만나 10년 열애 끝에 1980년 결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남편이 화교란 이유로 집안에서 결혼을 많이 반대했습니다. 먼 미래에 중국 시장이 열리게 되면 이 사람의 가치를 보자며 가족을 설득했어요.”

이 사장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쏟았고, 담 회장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 사장은 ‘부부 경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마케팅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한 해 동양시멘트 대리로 입사한 담 회장은 동양제과 구매부장, 사업담당 상무, 영업담당 부사장, 동양마트 사장, 동양제과 사장 등을 지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나온 김 사장은 1975년 동양제과 평사원으로 입사해 구매부, 조사부, 마케팅부 등을 거쳐 2000년 사장에 올랐다.

담철곤-이화경 부부는 1989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직후 가족간 협의를 통해 오리온 계열을 이끌다 2001년 이 창업주의 맏사위 현재현 회장(부인 이혜경씨)이 맡은 동양그룹에서 독립했다. 이후 오리온그룹은 담 회장이 그룹 총괄을, 이 사장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외식 부문 등을 맡는 ‘부부경영’체제로 운영돼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언니 부부와 함께 갑자기 회사를 맡게 됐습니다. 34세에 그룹 부회장이 된 남편은 화교 출신에 대학을 미국에서 나와 혈연·학연·지연마저 없었어요. 검증받지 않으면 안 됐죠. (그런데) 창업자의 딸과 대주주로서 권한을 더 많이 행사한 저로 인해 남편이 회사 경영에서 소외된 때도 있었습니다. 부부경영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서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을 몰랐어요.”



결혼 과정도 털어놔

이 사장은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재판부가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남편은 피고인석, 난 증인석에 앉아 있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번 (검찰 조사) 일을 통해 지난 일을 뒤돌아보고 몰랐을 부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경영과 소유의 분리, 투명성 확보, 선진 경영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모든 걸 걸고 잘하겠습니다.”

이 사장은 30여분 동안 진술했다. 진술 내내 담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호소하면서 계속 눈물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기업의 이미지, 성장, 해외시장 개척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고 기소된 사실을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준법경영이 부족한 것은 사실 아니냐”고 일침을 가해 이 사장을 뻘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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