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 위기론 내막

2011.08.11 12:20:00 호수 0호

대기업 돈 먹는 하마…고삐 놓은 ‘독일 병정’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 한창 ‘잘 나가던’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갑자기 벼랑 끝에 몰렸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한마디로 앞날이 흐리다. 30여년간 성공가도를 달려온 정 부회장. 여기까지일까.

수해복구 한창 때 부인과 동반 라운딩 강행 ‘물의’
회원사 의견 수렴 없이 1조 사회공헌 추진 ‘논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 롯데호텔에서 ‘2011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을 주최했다. 전경련이 매년 개최하는 하계포럼은 기업인들이 1년에 한 번 제주도에 모여 경제 현안과 산업계 이슈 등을 논의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자리다. 올해는 전경련 사무국 임직원을 비롯해 기업인과 그 가족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전경련은 ‘재계 축제’인 만큼 이 기간 요트 관광과 요가 강좌, 가수 콘서트, 클래식 공연, 한라산 등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참석자들은 오전에 강연을 듣고 오후엔 프로그램을 즐겼다. 이를 두고 포럼 행사와 전혀 관계없는 ‘호화 일정’이란 지적이 나왔지만, 전경련은 당초 예정대로 진행했다.

‘재계축제’ 하계포럼
호화 프로그램 즐겨



문제는 28일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었던 ‘골프대회’. 전경련은 엘리시안, 스카이힐, 타미우스, 레이크힐스 등 컨트리클럽 4곳에서 ‘전경련 회장배 친선골프대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 수해 피해가 확산되자 여론을 의식해 대회를 부랴부랴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수해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과 국민정서를 감안해 골프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며 “전경련 임직원들은 골프를 치지 않는다. 다만 회원사 참가자들에겐 불참을 강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전경련의 설명대로 일반 참석자 300여명은 85개 팀으로 나눠 이날 오후 1시부터 엘리시안CC에서 골프를 쳤다. 하지만 골프채를 잡은 기업인들 사이에 전경련 임원도 끼어있었다. 정병철 상근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부인과 함께 라운딩을 강행해 물의를 빚었다. 그 시간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재계는 수해복구 지원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난 2일에도 전경련의 무책임한 행동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전경련은 3일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SK그룹 등 4대 그룹 임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사회공헌재단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전경련은 이 자리에서 주요 그룹별로 1조원의 사회공헌재단 자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전달할 방침이었다. 전경련 산하 회장단 20개 그룹과 비회장단 5개 그룹 등 25개 그룹이 내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각출해 10년에 걸쳐 1조원 규모의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삼성그룹이 250억원, 현대차그룹·LG그룹·SK그룹이 각각 130억원씩 내는 밑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 내용은 간담회 직전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고, 주요 그룹들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전경련이 회원사들과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전경련은 주요 그룹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예정됐던 간담회를 하루 전날 긴급히 취소했다.

전경련 측은 “3일로 예정됐던 조찬간담회는 경제 전반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로 계획됐던 것”이라며 “사회공헌과 관련된 재계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결정되는 자리가 아니었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 취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회원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비를 받으면서도 재계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반기업 정서 등 재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들린다.

언론들도 등을 돌렸다. 전경련이 삐딱하게 나가자 연일 비난 기사가 쏟아지는 등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언론들은 “전경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물론 비난 여론마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재계의 본산’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자 ‘전경련 무용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수장 인선 문제로 진통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순항하는 듯 했으나 이도 잠시. 제대로 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계 한 인사는 “대기업 이미지를 관리해야 할 전경련이 각종 구설로 위신이 땅에 떨어져 오히려 재계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며 “제 기능과 역할도 못한 채 재계를 대표하는 이름표만 덩그러니 달고 있다”고 꼬집었다.

모 그룹 관계자는 “전경련은 회비 내기 아까울 정도로 하는 일이 없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 먹는 하마와 다를 바 없다”며 “너무 배가 불러서인지 좀처럼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조용한 절에 비유한 ‘전경사’란 말이 딱 맞다”고 비꼬았다.

전경련에 빗발치는 화살들은 자연스레 사무국을 이끌고 있는 임원들에게 향하고 있다. 전경련이 암초에 걸려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내부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무국 수장인 정병철 상근부회장의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경련 안팎에서 독선적인 조직 운영 논란이 일더니 급기야 교체설이 확산되는 등 위기론에 휩싸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 2월 선임된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에게도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처지다. 훤칠한 용모에 온화한 성품으로 ‘영국신사’란 별명을 가진 허 회장과 달리 정 부회장은 작은 체구에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별명이 ‘독일 병정’이다.

기능·역할 미흡
‘본산’ 위상 흔들

올해 65세인 정 부회장은 관리형 CEO이자 재무통으로 30년 넘게 LG그룹에서 근무한 ‘LG맨’출신이다. 경복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LG화학에 입사해 LG반도체 관리본부 전무,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과 관리담당 사장 등을 지냈다. 이어 LG산전 사장, LG CNS 사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 등을 거쳐 2008년 3월 상근부회장에 선임되기 전까지 LG CNS 고문을 역임했다.

재계입장 제대로 대변 못해 오히려 반기업 정서 키운다
독선적인 조직 운영 지적 재계 안팎서 교체설 확산


정 부회장은 LG CNS 사장 재직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서울시 신교통카드 서비스사업을 직접 구축하면서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인터넷 수능강의시스템인 ‘e-러닝’사업 인프라 구축 등 전자정부사업의 11대 과제 중 5대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경영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전경련은 넓은 인맥과 역량을 갖춘 정 부회장이 재계와 MB정부간 가교역할을 잘해 낼 것으로 기대했다.

전경련은 정 부회장을 선임할 당시 “재계 화합은 물론 정부와 경제계간 가교 역할에 적임자라”라며 “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계 현안을 해결할 적임자"라고 추대 배경을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MB정부가 들어선 후 기업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이럴 때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내면 국가경제발전과 국민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보좌하면서 사무국을 총괄한다. 인사와 재무 등 실권을 쥐고 있다. 동시에 500여개 대기업과 60여개 업종별 단체 등 회원사의 애로를 파악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제언을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재계의 대변인’또는 ‘재계와 정부의 가교’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전경련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재계가 정 부회장을 곱게 볼 리 없다. 허 회장보다 오히려 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기업별 동반성장지수 발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법인세 감세 철회 움직임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등 재계에 대한 정치권 압박이 거세졌지만, 대기업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 대응이 부실하다는 재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모 그룹 임원은 “전경련이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모두 정 부회장을 비롯한 사무국 임직원들의 책임”이라며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사고에 젖어 회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 부회장의 리더십·소통 부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가벼운 ‘입’이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장기간 공석이었던 신임 회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시간을 갖자고 했다”며 영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삼성그룹 측은 곧바로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해 진실공방이 펼쳐진 바 있다. 이에 정 부회장은 “(이 회장이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라)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다”고 말을 바꿨고, 결국 이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월에도 신중하지 못한 처신으로 뒷말이 적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제주포럼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사말(회장 대독)이 논란이 되자 언론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때문일까. 정 부회장은 자리가 날 때마다 “기자들을 출입시키지 않고 싶다”등의 발언하는 등 언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5월엔 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광고주협회가 ‘광고주가 뽑은 나쁜 언론’을 선정 발표했는데, 해당사의 실명을 밝히면서도 입장이나 반론을 전혀 싣지 않는가 하면 구체적인 내용도 적시하지 않아 사실상 ‘언론 길들이기’란 비판이 일었다.

이 와중에 정 부회장은 전경련 내 역할보다 ‘자리’에 연연하는 행보까지 보였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5월 한국광고주협회장을 맡은데 이어 지난 5월 한국경제연구원에 신설된 부회장직까지 겸직하기로 했다.

부적절 처신 뒷말
전열 재정비 시급

이에 따라 협회와 연구원은 사실상 전경련의 지배를 받게 됐다. 두 곳은 전경련에서 설립했으나 별다른 간섭 없이 자율 체제로 운영돼 왔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장악하자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 훼손 논란이 불거졌었다.

한경연 한 관계자는 “전경련은 김영용 전 원장을 사퇴시키고 대신 정 부회장을 밀어 넣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며 “이는 재계로부터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자 그 화살을 한경연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내년엔 나라에 큰 일이 많다. 총선이 있고, 대선이 있다. 모두 정치권 사안이지만 재계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질 테고, 상대적으로 재계를 압박하는 수위가 높아질 게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넋 놓고 있는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오는 9월이 설립 50주년이라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하루빨리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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