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

2018.01.16 09:08:36 호수 1149호

실종자만 보고 온 27년 외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고, 떨이로 옷을 파는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주변엔 은행,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입점한 높은 건물이 즐비했다.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의 근거지인 컨테이너는 그런 북새통 속에 고요한 섬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해 9월과 12월에 발생한 2건의 실종사건은 전 국민을 경악에 빠뜨렸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실종됐던 피해자가 결국 시신으로 발견된 점, 초동 조치가 빨랐다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으로 아동 실종에 대처하는 경찰의 안일한 태도가 드러났다. 아동 실종 대책이 수립됐지만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뒤 실종 신고 후에야 발견된 고준희양 사건은 결국 막지 못했다.

6평 컨테이너

지난 5일 청량리역 2번 출구 근처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이하 전미찾모)’ 사무실서 만난 나주봉 회장은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분주했다. 봉사활동 시간 확인부터 인터뷰 요청까지 용건은 다양했다. 

나 회장은 최근 두 사건과 관련해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고준희양 사건에 대해서는 아이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 이미 부모와의 연관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두 사건을 두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회장은 “아동 실종 사건의 골든타임은 3시간이다. 굉장히 짧은 것처럼 보이지만 요새 3시간이면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며 “실종을 인지한 즉시 경찰에 신고해 찾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서 첫 신고 전화를 받는 담당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이영학 사건이나 고준희양 사건 모두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나 회장은 이와 비슷한 사례로 2011년 5월 실종된 후 9개월 만에 경기도 의왕의 모락산서 변사체로 발견된 K씨에 대해 언급했다. 
 

평소 파킨슨병과 우울증을 앓던 K씨는 실종되기 며칠 전 자살하기 위해 자살명소로 알려진 전남 목포의 유달산 마당바위를 찾았다. K씨는 가족들 걱정에 차마 목숨을 끊지 못하고 돌아와 아내에게 자살 시도 사실을 털어놨지만 위로받지 못했다. 결국 이틀 뒤인 5월23일 집을 떠나 홀연히 사라졌다.

이영학·고준희양 사건 충격
실종에서 강력 범죄로 발전

나 회장은 “가족들은 신고 당시 K씨에 대한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접수 담당자가 가족들에게서 K씨가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는 자살의심자라는 정보를 끌어냈다면 더 빨리 찾았을 것이고 살아있는 그를 만났을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할 때 들고 오는 건 대부분 사진 한 장이다. 담당자는 그런 상황서 실종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재 우리 경찰에는 그런 프로파일링 매뉴얼이 부족하다”고 탄식했다.

실종 사건은 대형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받는다. 사건을 되짚는 과정서 드러난 경찰의 허술한 대처와 수사 체계의 부재는 매번 여론의 뭇매를 맞는 지점이지만 큰 변화는 없다. 

매년 줄어들던 아동 실종 건수는 지난해 다시 부쩍 늘었고, 잔혹한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있어 대책이 필요하지만 전담 수사 인력은 전국 200여명에 불과하다.

나 회장 역시 부족한 지원과 관심에 허덕이고 있다. 6평 남짓한 컨테이너 벽면엔 실종자 전단지가 빼곡히 붙어있고, 한편에는 유인물이 수북이 쌓여있다. 컴퓨터와 냉장고 등 최소한의 세간만 놓인 공간은 성인 세 사람이 서 있으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나 회장은 물건 정리를 하지 못했다고 멋쩍어했지만 현실적으론 치울 시간도 인력도 없는 상태였다.


1991년 인천 월미도서 각설이 공연을 하던 중 개구리소년 다섯 부모들과 만난 이후 27년간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실종자 찾기에 매진했다. 
 

나 회장은 “주변서 저한테 미쳤다고 많이 말했는데 그들 말대로 정말 미쳐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사실 내일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토로했다.

전미찾모는 그가 활동을 멈추면 그대로 사라질 수 있는 단체다.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사무실 내 화이트보드의 기록조차 업데이트가 안 된 상태였다. 지원금이라고는 동대문구서 나오는 몇 백만원이 전부. 그 외 비용은 후원을 받거나 사비를 털어 넣는 수밖에 없다. 바쁜 시간을 쪼개 보험회사에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두 시간 동안 나 회장은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해 찾아온 학생 두 팀, 5통 넘게 걸려온 전화를 일일이 대응해야 했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실종자 가족까지 등에 업은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최근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결국 재작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나 회장은 이 길에 접어든 것에 대해 소위 말해 “낚였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실종자 문제를 거론하는 그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두 대의 컴퓨터를 오가며 10여년 동안 쌓인 자료를 설명하는 그에게선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매달린 사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신고 접수 담당자 중요해
지원도 관심도 열악 수준

일을 시작했던 초기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를 돌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시설에 들어가 일일이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찾은 실종자는 700∼800명에 이른다. 그 과정서 시설 관계자에게 욕을 먹거나 얻어맞기도 했다. 

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해 실종자 가족들과 법을 만들었고,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데 일조했다.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정치인들과 사진을 찍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끝내 찾지 못한 실종자에 대한 추모도 그의 몫이다. 나 회장은 개구리소년 사건 피해자 추모제, 이웃집 남성에게 납치·살해된 혜진이·예슬이 추모제를 매년 주관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 국민, 언론의 관심을 호소했다. 

특히 언론에 대해 “실종 사건을 잘 뜯어보면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참 많다. 언론서 그런 부분을 깊게 파고들어 보도해주면 좋을 텐데, 현재 실종 사건 보도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30년 가까이 없어진 사람을 찾는데 온 시간을 바친 그는 몹시 지쳐 보였다. 
 

그는 “매년 어린이날이면 아동 실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여러 행사를 기획했다. 실종자를 찾겠다고 대형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며 “말 그대로 미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두 아들의 협조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에 대해 항상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 회장은 실종자 찾기 일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꼭 하나로 단정하긴 어렵다”면서도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국회에 성인실종법이 계류 중인데 꼭 통과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심 필요해

또 “개구리소년 사건, 안양 혜진이·예슬이, 최근 발생한 이영학 사건, 고준희양 사건 등 못된 어른들에게 희생된 수백명의 아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추모관이 건립됐으면 한다”며 “그 공간 자체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실종 사건에 대한 교육장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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