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치졸하기 짝이 없는 검찰과 재판부

2017.10.23 10:56:01 호수 1137호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실려 있는 글 한 토막 소개하고 넘어가자.



『전라도 남원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성품이 어리석고 미련하며 불교에 빠져 조상 대대로 전하여 오던 재산을 모두 부처 섬기는 데 쓰고, 다만 수백평 밭이 남았었다. 그것도 복을 비노라고 만복사(萬福寺)의 늙은 중에게 시주하여 영원히 매도한다는 문서까지 만들어 놓고, 나중에는 결국 굶어 죽었다.

자손이 돌아다니며 구걸하다가 거의 죽게 되니, 소장(訴狀)을 남원부에 바치고 밭을 돌려주도록 청원했다. 남원부의 관원이 문서를 가져다 보고는 내쫓아버렸으며, 또 감사에게 고소장을 바쳤지만 여러 번 소송해 여러 번 졌다.

신응시(辛應時)가 마침 감사로 갔는데 그 소장 끝에 손수 판결문을 쓰기를 “전지를 시주한 것은 본래 복을 구하려고 한 것인데 자신이 이미 굶어 죽었고, 아들이 또 걸식하니 부처의 영험이 없는 것은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밭은 주인에게 돌려주고 복은 부처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이에 그 아들이 밭을 찾아서 명을 보전할 수 있었으니 도내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통쾌하다고 했다.』

상기 내용은 조선 중기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한 바 있는 신응시(1532~1585)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있었던 실화다. 동 내용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솔로몬의 판결을 보는 느낌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사건을 현대에 우리 재판부에 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당연하게도 남원부 관원들과 타 감사들의 행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문서상 그렇게 기록됐다면 그에 따르는 수 외에는 없다’로 판결난다. 

필자가 이에 대해 확고하게 장담하는 데에는 그 사유가 있다. 지면 관계상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으나 필자가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른다는 사실을 밝힌다.

각설하고,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이 연장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검찰의 입장이다.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경우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하거나 주요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진술 번복이나 증거 조작을 시도할 우려가 있어 원활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재판부는 추가 영장을 발부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검찰도 그렇지만 증거인멸의 사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다시 발부한 재판부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먼저 구속기간 연장에 대해서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6개월 동안 구속돼있었다.

그런데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검찰은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재판부에 구속기간을 구걸하는지 이해 불가다. 결국 이는 검찰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재판부가 언급한 증거인멸에 대해서다. 그동안 <일요시사>를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박 전 대통령은 증거를 인멸하기는커녕 조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의식세계가 엉망이다.

그런데 증거인멸을 그 사유로 들었다. 그저 유구무언으로 검찰과 재판부 둘 다 치졸하기 짝이 없다. 그냥 사실 그대로 ‘석방할 경우 지지자들로 인해 재판진행에 차질이 우려 된다’고 떳떳하게 밝히는 게 이치에 맞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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