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니콘코리아 ‘사쿠라 굴욕’ 전말

2011.07.06 01:00:00 호수 0호

얼렁뚱땅 식수식에 ‘죄 없는’ 벚나무만 고생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니콘이미징코리아가 굴욕을 당했다. 창립을 기념해 식수한 것을 두고서다.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산에 나무를 심은 것은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니콘이 곤욕을 치룬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상 일본의 국화인 벚나무를 우리의 얼굴로 여겨지는 남산에 심어서다. 벚나무와 남산, 특수한 상징들이 맞물리면서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낳았고, 죄 없는 벚나무는 결국 뿌리 째 뽑혀지는 운명을 맞게 됐다.

1월 창립 5주년을 기념해 남산에 벚나무 식수
“국민정서 고려 안 해” 반발에 뿌리 째 뽑혀

니콘이미징코리아(이하 니콘)는 지난 1월11일 창립 5주년을 맞아 서울 남산공원에서 기념 식수식을 가졌다. 이날 우메바야시 후지오 니콘이미징코리아 대표는 직접 삽을 쥐고 흙을 퍼다 나르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실 니콘의 창립일은 4월이다. 그럼에도 굳이 2011년 1월11일을 택한 건 지난해 캐논에 밀려 2위로 떨어진 점유율을 다시 1위로 끌어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남산 치욕적 역사

우메바야시 후지오 대표는 이날 기념사를 통해 “한국 고객의 카메라에 대한 다양한 욕구와 높은 관심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앞으로 우수한 신제품 출시, 고객과 접점 확대, 영업망 강화 등을 통해 니콘의 명성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창립기념식은 ‘훈훈하게’ 마무리 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건 심은 나무가 벚꽃나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벚나무는 일본의 역사적 상징성을 강하게 지닌 사실상 국화(國花)다. 그런 벚나무를 ‘한국의 얼굴’로 여겨지는 남산에 심은 것이다. 게다가 남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치욕적인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충무로와 명동을 포함한 남산 일대는 당시 일본인 집단촌으로 이용됐다. ‘작은 일본’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는 게 관련학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또 현재 남산공원 자리에 일본의 신사인 조선신궁을 건축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남산에 계단을 만들고 입구에는 도리이(일본 신사의 상징이자 출입문)를 세웠다. 결국 남산은 일제 식민지 일본의 신지(神地)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산에 나무를 심었다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칭찬을 받을 일이다. 하지만 남산에 벚꽃나무를, 그것도 ‘일본기업’이 심은 게 화근이었다. 강점기를 거치면서 남은 상처는 뿌리가 깊다. 정서상 아직 민감한 부분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한 재계 관계자는 “니콘도 한국에서 장사를 하는 기업인만큼 우리 정서를 좀 더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의 날선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들의 항의전화에 서울시와 남산공원 측은 진땀을 쏙 빼야 했다는 후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남산은 일제치하 치욕스런 역사를 견뎌낸 중요한 역사적 상징이다”며 “이번 니콘의 식수식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명패를 붙여놓았을 뿐, 사실상 일제식민지 시기의 기억을 부활시키는 도발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비록 나무를 심었다고는 하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에 쇠못을 박은 행위를 연상시키는 일”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니콘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란 입장이다. 니콘 측 관계자는 “일본기업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남산의 역사적 상징을 훼손했다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라며 “벚나무도 일본산이 아닌 제주산 왕벚꽃나무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문제가 된 나무 말고도 남산엔 벚꽃나무가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니콘 측의 주장대로 남산에는 벚나무가 많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제식민지 시기 본토에서 공수해 온 벚나무를 곳곳에 심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산 일대의 벚나무 역시 치욕적인 역사의 증거인 셈이다. 때문에 가득이나 남산의 벚꽃나무를 잘라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분분한 상태였다. 여기에 니콘이 기름을 들이 부은 것이다.

뿌리 째 뽑아

식수와 관련된 논란이 커지자 니콘은 결국 문제의 벚나무를 뿌리 째 뽑아야 했다. 현재 벚꽃나무가 심어졌던 곳엔 소나무 묘목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상태다. 니콘 측 관계자는 “서울시와 남산공원 측으로부터 해당 벚나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내부적인 논의를 거쳐 서울숲공원으로 옮겨 심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재계 관계자는 “물론 악의가 없고 잘해보려던 건 이해한다”면서도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정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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