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시신 없는 살인’ 피의자에 무기징역

2011.06.10 12:59:17 호수 0호

정황만 봐도 한눈에 ‘딱!’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려 한 ‘시신 없는 살인사건’ 피의자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정황 증거만으로 혐의가 인정됐다. 살인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인 시신이 없음에도 실형을 선고한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대체 어떤 사유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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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손모(여)씨의 삶은 일찍부터 순탄치 않았다. 1993년 대학 졸업한 손씨는 1997년부터 같은 학교 출신 방모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둘 사이엔 딸도 있었다.

그러나 손씨는 늘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결국 범죄에 손을 대고 말았다. 손씨는 우선 방씨의 명의를 무단 도용해 차량할부구입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다른 사람에게 차량을 매도하겠다고 속여 돈을 챙긴 뒤 차량할부계약을 해약해 버리는 이른바 ‘차치기’ 수법으로 수천만원을 편취했다. 사기행각은 얼마 못가 덜미를 잡혔고 손씨는 1999년 구속됐다. 이 일로 방씨와의 관계는 파경을 맞게 됐다. 그때부터 손씨는 홀로 노모와 딸을 부양해야 했다.

궁핍한 생활

출소 후 손씨는 강사로 학원가를 전전했다. 이 역시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2004년 딸 손양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게 되면서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어머니  명의로 어학원도 운영해 봤지만 영업이 부진해 2009년 처분했다. 직후 커피점을 열었으나 이마저도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2010년 자궁근종수술을 받게 되면서 커피점까지 폐업하게 됐다. 일정한 수입은 없었고 날로 빚만 쌓여갔다.

이런 가운데서도 손씨는 2003부터 당시 대학생이던 13살 연하의 김모씨와 사랑을 싹 틔웠다. 손씨는 환심을 사기 위해 김씨와 그의 부모에게 “아버지로부터 20억 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니 결혼해서 해외로 나가 살자”라는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았다. 손씨는 가짜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랜저 승용차를 임차해 타고 다니는가 하면 김씨에게 용돈과 값비싼 선물을 주고 고급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빚이었다. 갈수록 손씨의 주머니 사정은 어려워져 갔다.

그러던 지난 2010년 김씨에게 결혼경력과 함께 딸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았다. 김씨는 곧바로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를 붙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음은 물론이다. 급기야 김씨에게 ‘아이를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타인의 태아사진을 김씨와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보내 헤어지게 하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손씨는 김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새 신분과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손씨는 우선 사망하면 15억 원을 받는 7개 보험사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살인한 뒤 남의 시신을 자신인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내려는 의도였다. 범행대상은 오갈 데 없는 여성을 삼기로 했다. 그녀는 대구에 여성쉼터가 있다는 글을 읽고 지난해 6월16일 직접 찾아갔다. 자신을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속였다. 쉼터에서 김모양을 소개받고 “대학에 보내주고 어린이집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꼬드겼다. 손씨는 김양을 부산으로 데려와 17일 새벽 살해했다.

이때부터 손씨는 ‘신분 세탁’을 했다. 그녀는 의사에게 시신 인적사항을 자기 것으로 둘러댔다. 자신은 아는 동생이라고 속였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는 거짓말도 했다. 손씨를 믿은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급성심근경색이란 판정을 내렸다.

손씨는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김양을 화장한 뒤 해운대구 청사포 앞바다에 뿌렸다. 지난해 7월 어머니 박씨가 부산진구청에 사망신고서를 냈고 손씨는 여지없이 ‘죽은 사람’이 됐다. 같은 달 30일 손씨는 어머니와 우체국에 사망진단서를 내고 600만원을 타냈다.

이로서 손씨는 새신분과 돈을 거머쥐었다. 떠났던 연인 김씨도 돌아왔다. 손씨는 김씨와 외국에 나가 제2의 인생을 꿈꿨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장밋빛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손씨가 꼬리를 밟힌 건 보험금을 타내는 과정에서다. 지난해 7월30일 손씨는 해당 보험사에 사망보험금 2억5000만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손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사국 직원 송모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손씨의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법 형사합의6부는 “손씨가 지난해 4월부터 범행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독극물, 여성쉼터, 사망신고 절차 등의 단어를 검색한 데다 실제 독극물을 구입한 사실도 있다”며 손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내연남 관계회복 위해

재판부는 “피해자 사인(死因)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자연사나 자살했을 가능성이 낮고, 사건 전 거액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고 인터넷으로 살인방법 등을 검색한 점 등으로 미뤄 혐의가 인정된다”며 손씨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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