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무브스 온’ 세계 동시 발매하는 재즈 거장 나윤선

2017.05.11 14:47:04 호수 0호

열정적인 쿠바를 닮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스타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48)의 목소리에 객석이 먹먹해졌다.



한국의 한(恨), 재즈의 본질인 응어리, 유럽의 모던함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뒤섞여 어디서도 듣기 힘든 음색의 보컬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나윤선이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유일하게 지난달 30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서 열린 ‘국제 재즈 데이-올스타 글로벌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유네스코(UNESCO)서 2011년에 공식 지정한 국제 행사인 ‘재즈데이’는 ‘재즈를 통해 인류의 평화와 화합, 그리고 대화와 협력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선포, 매년 전 세계서 내로라하는 재즈뮤지션들이 함께 공연한다.

나윤선은 이날 콘트라 베이스의 에스페란자 스팔딩, 바이올린의 레지나 카터, 드럼의 안토니오 산체스, 피아노의 타렉 야마니 등 쟁쟁한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와 함께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불렀다.

비틀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을 재즈로 편곡한 무대의 인트로에서는 재즈 거장인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과 듀엣으로 탄성을 자아냈고 리차드 보나와 함께 불어로 노래하기도 했다.


나윤선은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레제코>가 “오늘날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재즈 보컬리스트는 다름 아닌 한국인이다. 그의 이름은 나윤선”이라고 쓸 정도로 유럽서 이미 인정받고 있다.

정규 7집 ‘세임 걸’과 8집 ‘렌토’가 유럽서 15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골든 디스크를 받았다. 프랑스 정부가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슈발리에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이미 미국서도 뉴욕에서도 수차례 공연하며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재즈의 종주국인 미국, 게다가 걸출한 뮤지션들이 대거 운집한 공간은 천하의 나윤선이라도 떨리는 자리였다. 그는 “미국 사람 입장서 새롭고 독특하다는 말을 들어서 저도 놀랐어요”라고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는 평소 존경해마지 않았던 허비 핸콕. 불교 신자인 그가 굉장히 선하다고 했다.

“수많은 굴곡의 재즈의 역사를 함께 했다고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너무 평온하셨어요. 그런 영광을 얻기까지 정말 힘들게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저렇게 쿨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매일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당연한 말을, 그 분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까 새삼 절실히 와 닿더라고요.”

나윤선은 허비 핸콕 같은 아티스트들이 있는 재즈 장르가 만약 100년 넘게 산 사람이라면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할 것 같다”고 설레했다.

“재즈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건, 재즈가 민주적인 음악이기 때문이죠. 그 민주적인 음악을 하는 핸콕의 얼굴에는 특히 자유로움과 사랑이 가득해서 정말 보기 좋았어요.”

만만치 않게 얼굴에 사랑과 따듯함을 간직한 나윤선은 이미 세계 정상급 뮤지션임에도 성장을 지속하고 겸손을 유지하고 있다. 4년 만인 오는 19일 세계 동시 발매하는 정규 9집 ‘쉬 무브스 온(She Moves On)’이 이를 증명한다.

총 11개 트랙이 실리는 이번 앨범은 미국의 프로듀서 겸 건반 연주자인 제이미 사프트와 지난해 말부터 녹음한 작업물이다.

지난 2년 간 한국서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 ‘2016 평창겨울음악제’에 참여하며 뉴욕서 스팅, 피터 가브리엘, 건스 앤 로지스, 드레이크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장을 찾은 그녀는 아방가르드 음악을 듣다가 사프트를 알게 됐다.


사프트는 레게 밴드, 자메이카 음악, 클래식은 물론 일본의 마니아 음악인 노이즈 장르까지 섭렵한 뮤지션이었다. 뉴욕 주 남동부에 있는 우드스탁 깊숙한 산속에서 사는데 그의 집 주변에는 곰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평소 듣는 음악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밥 딜런 그리고 조니 미첼.

“종잡을 수 없는 음악을 하는데 쓰는 멜로디는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자신은 시나트라와 딜런의 노래로부터 모든 걸 배웠고 영감을 얻었대요. 싱어송라이팅의 중요성을 아는 뮤지션이었던 거죠. 아내와 아이 셋과 함께 사는 그의 집 근처에 방을 구해서 3주간 같이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보컬 호흡에 대해 많은 걸 배웠죠.”

앨범은 지난해 12월 뉴욕의 시어 사운드(Sear Sound) 스튜디오서 녹음했다. 존 레넌, 밥 딜런, 데이비드 보위, 스팅, 시규어 로스, 노라 존스 등이 녹음한 곳이다.

나윤선은 사프트, 미국 뮤지션들과 그곳에서 녹음하면서 일상 자체가 음악 작업인 삶에 대해 새로움을 느꼈다.

“모든 곡을 거의 한 번에 작업했어요. 저 혼자 했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10번 넘게 작업했을 거예요.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1주일 전에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계속 몸을 단련시키는 것인데, 녹음 작업도 그들에게는 마찬가지였어요, '오늘을 위해 갈고 닦은 것'이 아닌 평소에 열심히 하던 대로 하는 거죠. 그들의 쿨한 태도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새삼 알게 됐죠.”

루 리드의 ‘티치 더 기프트드 칠드런’, 포크 송 그룹인 피터 폴 앤 메리의 ‘노 아더 네임’, 지미 헨드릭스의 ‘드리프팅(Drifting)’ 등 재즈 스탠더드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레퍼토리가 실린 이번 앨범은 덕분에 듣기에 자연스럽고 귀에 척척 감긴다.

나윤선의 삶과 음악인생도 이처럼 자연스러웠다. 일반 회사를 다니다 노래를 잘한다는 이유로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에게 발탁,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그녀는 27세때 프랑스 유학을 결심, 실행에 옮겼다.

불문과를 졸업한 나윤선은 파리에 유럽 최초의 재즈 학교가 있다는 것과 샹송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프랑스로 가게 됐고 정상의 재즈 가수가 됐다. 부러 재즈의 시초인 미국 진출을 노리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현지에 이름을 알렸고 미국 뮤지션들과 작업한 명반도 내놓게 됐다.


‘순환의 뮤지션’으로 불러도 될 법하다. 국립합창단 단장을 지낸 나영수와 성악가 김미정의 딸인 그녀는 아버지가 몸담기도 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첫 재즈 뮤지션이다. 1950년 개관한 이후 63년만에 처음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삶 안에 다양한 역사가 공존하고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수록곡인 ‘쉬 무브스 온’서 따왔다.

지난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를 위해 폴 사이먼이 작곡한 곡이다. “이번 앨범은 저와 음악의 관계에 있어 변환점 또는 변곡점이 됐어요.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쉬 무브스 온’ 즉, 여전히 그녀는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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