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오리온 비자금 수사 관전포인트

2011.05.13 12:27:50 호수 0호

‘7부 능선’ 검풍…담철곤 회장 덮칠 일만 남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검은돈’을 만든 혐의로 오너 가신과 브로커가 쇠고랑을 찼고, 그 주변인들이 속속 검찰에 불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 출처와 조성 경위, 사용처 등 각종 의혹들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나씩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까면 깔수록 입이 떡 벌어진다. 세간의 시선은 ‘최종 타깃’에 쏠린다. ‘7부 능선’을 넘은 검풍이 오너일가를 덮칠 일만 남았다.

100억대 비자금 조성 혐의 ‘핵심고리’ 2인방 구속
오너일가 개입 여부 집중수사…소환 조사 ‘초읽기’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의심됐던 40억원을 훌쩍 넘어선 금액이다. 추가 수사 상황에 따라 금액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 비자금 출처와 조성 경위, 사용처 등 혐의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검찰은 막바지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의 ‘오리온 비자금’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3월. 지난해 8월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털기’에 나섰다. 그 신호탄이 서울 용산구 문배동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사무실 8∼9곳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어 압수수색 범위를 넓히면서 관련자들을 줄소환했다.

그 결과 오리온그룹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오리온 금고지기’로 불리는 그룹 전략담당 사장 조경민씨를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조씨는 비자금 조성을 총괄 지시해 실행에 옮기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조씨의 비자금과 횡령, 배임, 탈세 총액은 160억원에 달한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2006년 8월 중순께 부동산 허위·이중 매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 오리온그룹 계열 건설사 메가마크가 시공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고급빌라 ‘마크힐스’시행사인 E사와 짜고 209억여원짜리 부동산을 169억여원에 위장 거래하는 수법으로 비자금 40억원을 만들었다.

조씨는 서미갤러리 계좌를 통해 이 돈을 송금 받아 횡령하고 법인세 10억원을 포탈한 의혹도 있다. 뿐만 아니다. 조씨는 그룹에 제과류 포장재 등을 납품하는 ‘위장 계열사’인 I사를 통해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부동산 위장 거래
임원 급여 빼돌려


이외에 ▲중국법인 자회사 3개 업체를 I사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이들 회사의 법인자금 200만 달러(한화 20억원) 횡령 ▲I사의 중국법인 자회사 L사의 지분 53억원어치를 오리온의 홍콩 현지법인 P사에 22억원에 넘기는 ‘헐값 매각’을 통해 I사에 31억원 손해 ▲I사 임원들의 급여와 퇴직금을 가장해 38억원 횡령 등의 혐의도 있다.

검찰은 “I사 지분은 전·현직 대표와 그 친족 등이 76.66%를, 창투사 등 기타 주주가 23.34%를 각각 소유하고 있지만, 이 지분은 그룹 사주인 담철곤 회장, 이화경 사장 부부의 차명 지분”이라고 밝혔다.

수사 초기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검은 돈거래’를 진두지휘한 ‘몸통’으로 지목됐었다. 국세청은 검찰에 수사 의뢰하면서 조씨를 피고발인으로 적시했다.

‘비자금 키맨’으로 찍힌 조씨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씨는 전략통이자 재무통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막후 실력자다. 그룹 내부에선 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오리온 집사’로 통한다. 그를 ‘삼성 집사’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에 비교하기도 한다.

1980년대부터 오리온에서 근무한 조씨는 그룹 몸집을 늘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오리온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한때 10여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전직 계열사 한 임원은 “조씨는 그룹 전반의 자금줄을 훤히 알고 있다”며 “그를 털면 ‘검은돈’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조씨를 상대로 한 수사 과정에서 담 회장 등 경영진이 회삿돈으로 외제 고급 슈퍼카를 굴린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계열사 법인자금으로 외제 고급 차량을 사들이거나 리스해 담 회장 등이 개인적인 용도로 쓰게 했다.

조씨가 2002년 10월부터 2006년 5월까지 회삿돈으로 마련한 차량은 ‘포르쉐 카레라 GT’,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포르쉐 카이엔’, ‘벤츠 CL500’등이다. 조씨는 이들 차량을 담 회장과 계열사 김모 대표 등에게 제공했고, 계열사가 리스료와 차량보험료, 자동차세 등 5억7000여만원의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했다.

검찰은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담 회장은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량을 리스해 자녀 통학 등 개인 용도로 무상 사용했다”고 전했다.

담 회장 등이 ‘공짜’로 몰고 다녔던 차량들의 가격은 웬만한 집 한 채보다 비싼 고가다. ‘스포츠카 황제’로 불리는 ‘포르쉐 카레라 GT’는 수입가가 8억8000만원에 달한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는 3억5000만원, ‘포르쉐 카이엔’과 ‘벤츠 CL500’는 각각 2억원대를 호가한다.

조씨도 2004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계열사 명의로 빌린 포르쉐 등 외제 차량들을 몰고 다녔다. 계열사는 여기에 들어간 비용 13억9000만원을 댔다.

회사가 빌린 차로
‘똥폼’ 잡고 다녔다

검찰은 조씨 외에 온미디어(현 CJ E&M) 전 대표 김모씨도 수사 중이다. 일단 협력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과 함께 수억원을 받은 개인비리 혐의다. 김씨는 2007∼2008년 방송·미디어 사업과 관련해 협력 관계에 있는 A사 관계자로부터 “편의를 봐 달라”는 취지의 청탁과 함께 6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다만 검찰은 김씨가 온미디어 대표로 재직할 당시 이 회사가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활용됐거나 비자금 조성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또 담 회장이 온미디어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해 9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남긴 의혹에 대해서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설립된 온미디어는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 사업을 하다 지난해 6월 CJ그룹에 인수, CJ그룹 계열사들과 합병되면서 미디어 전문업체인 CJ E&M으로 재출범했다. 그전까지 ‘오리온 비자금’조성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조씨와 담 회장이 김씨와 함께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경영에 관여했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방어권 보장의 필요성이 있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이 지금까지 거둔 성과 중 하나는 그동안 요리조리 수사망을 피했던 서미갤러리 대표 홍송원씨를 구속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오리온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홍씨의 집도 뒤져 광범위한 미술품 거래 내역을 확보한 뒤 홍씨를 2차례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홍씨는 ‘오리온 비자금’조성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오리온그룹이 ‘마크힐스’를 짓는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 40억원을 입금 받아 미술품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해 범죄수익을 숨겨준 의혹이다.

‘회삿돈=회장돈?’ 8억대 외제차 굴려
‘고급 슈퍼카’ 자녀통학 등 개인유용


홍씨는 오리온 계열사 등 고객이 위탁판매를 맡긴 고가의 미술품들로 담보 대출을 받아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위탁 미술품 중엔 오리온그룹 미디어 계열사 M사가 소유했던 미국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스틸라이프’시리즈 중 한 작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라이프는 리히텐슈타인이 1970년대 주로 시도한 정물화 시리즈물로 가격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홍씨는 재벌가 비자금과 악연이 깊다. 2004년 해외 미술품 유통 비리와 관련해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데 이어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당시 삼성을 대신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을 해외 경매를 통해 샀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엔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부하를 시켜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구입한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검찰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온 홍씨는 매번 예봉을 피했지만, 이번엔 ‘오리온 덫’에 걸려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와 김씨, 홍씨 외에도 오리온그룹 비자금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이들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언제든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리온그룹 관련 인사들이 잇달아 구속되거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담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담 회장 등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소환 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담철곤 소환 임박 
사법처리 가능성도

‘오리온 비자금’을 캐고 있는 검찰의 칼끝은 ‘윗선’을 겨누고 있는 상황. 검찰은 조씨와 홍씨가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오너일가의 개입 여부 확인에 ‘핵심 고리’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먼저 구속된 조씨의 혐의들이 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등을 밝혀내는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또 홍씨가 비자금의 돈세탁을 돕는 과정에서 담 회장 등과 접촉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검찰은 두 사람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담 회장 등 그룹 수뇌부 소환 일정을 정할 방침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두 푼도 아니고 100억원이 넘는 비자금 있다면 오너의 지시나 묵인 없이 임원이 개인적으로 조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담 회장의 혐의가 짙든 옅든, 죄가 있든 없든 의혹 해소 차원에서 소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간의 시선은 ‘키맨 2인방’진술에 쏠리고 있다. 둘의 입에 따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오리온 비밀을 머금고 있는 이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검찰 수사에 순순히 협조할까. 당장은 입을 꾹 다문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제 어느 때 뒤집을지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