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릴 듯 말 듯 ‘금호 비자금’ 수수께끼

2011.05.03 09:21:40 호수 0호

형제의 난 전후반 마치고 막장 폭로전 연장전 돌입?

[일요시사=박민우 기자]‘금호가의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 박삼구-찬구 회장 사이에 또 다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수사의 불똥이 금호아시아나로 튀면서 형제간 다툼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양 진영에서 서로를 겨낭한 ‘음해설’이 흘러나와 긴장 속 대치전선이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박찬구 비자금’ 검찰 수사 박삼구 회장에 불똥
협력업체서 10여개 차명계좌 발견…100억 추정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석유화학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수사관 20여명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압수했다. 검찰은 이날 2∼3곳의 금호석유화학 협력업체도 압수수색했다.

‘누가 왜 찔렀나’
제보자 의도 주목



박찬구 회장은 출국금지 된 상태.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회사 임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박찬구 회장 소환시기를 조율할 계획이다.

검찰이 뒤지는 것은 비자금이다. 비자금 규모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대로 추정됐다. 검찰은 박찬구 회장이 지인과 친인척 등이 운영하는 협력업체와 거래를 맺으면서 납품단가 등을 부풀려 차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협력업체에 집중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금호석유화학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는데도 다른 업체가 공급한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허위 작성해 단가를 부풀리는 수법을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업체에서 싸게 구입한 물건을 금호석유화학에 비싸게 파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린 의혹도 있다. 실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금호석유화학 협력사인 A사는 매출 증가율이 2008년 65%에서 2009년 842%로 급증했다. B사 역시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이 9.38%에서 42.94%로 뛰었다.

검찰은 박찬구 회장 일가가 경영권 확보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입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파악했다.

세간의 관심은 검찰 수사 배경에 모아졌다. 검찰에 ‘누가 찔렀을까’하는 의문이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결정적인 제보가 있지 않았겠냐는 반응이 나왔다. 공익적 제보보다는 개인적 감정 등 제보자가 금호석유화학에 앙심을 품고 검찰에 비자금 첩보를 제공했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비자금 수사는 대부분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하면서 시작된다”며 “금호석유화학 수사도 비자금 조성 내용을 깊숙이 아는 내부자가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도 잠시.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수사가 금호아시아나로 틀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을 뒤지는 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10여개의 차명계좌를 발견해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검찰은 박삼구 회장 측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차명계좌는 2009년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기 전 금호석유화학 협력업체가 개설했다. 이 계좌에 적게는 60억원에서 많게는 100억원 정도의 ‘검은돈’이 입출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석유화학 비자금 문제가 처음 터질 당시 금호아시아나 쪽에서 ‘작업’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됐었다. 검찰에 비자금 의혹을 제보한 협력업체 대표가 ‘박삼구 사람’이란 점에서다. 이 협력업체 대표와 박삼구 회장은 평소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협력업체 대표가 박삼구 회장 쪽의 사주를 받았거나 충성심에서 일부러 관련 정보를 흘린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2009년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자사주를 매입했을 때 금융감독원에 “투명하지 않은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제보하기도 했다. 이에 금감원은 박찬구 회장을 상대로 조사한 뒤 “혐의 없다”고 결론지었다.

금호석유화학 측도 음해를 의심했다. 박 회장은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해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비자금 조성에 금호아시아나가 관련된 것을 암시하는 발언으로 해석됐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6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이 결과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6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뒀다. 지난 1분기에도 영업이익(연결 기준)이 288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 급증한 깜짝 실적을 내놓았다. 2분기 실적 전망치도 좋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경영 정상화가 가시화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다른 사람들의 의도적인 공격인 것 같다”며 음해세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삼구측 “음해” 주장에 
찬구측 “역제보” 맞불

공교롭게도 검찰의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이번엔 금호석유화학 쪽에서 ‘역제보’를 흘렸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측 인사들의 소환 조사 과정에서 의도적인 진술이 나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에 ‘박찬구 비자금’ 의혹을 제보한 협력업체 대표의 ‘변심’도 추측이 가능하다. 이 제보자는 박삼구 회장 측의 자금 조성에 개입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박삼구 회장 측이 박찬구 회장 비자금 의혹을 문제 삼았다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꼴”이라며 “반격을 받은 박찬구 회장 측이 재반격 카드로 ‘박삼구 비자금’을 건드렸다면 양측의 감정싸움은 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박삼구-찬구 형제 사이에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의 ‘비자금 떠넘기기’공방전 양상을 띠자 형제간 다툼이 또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호가 ‘형제의 난’이 1·2라운드를 끝내고 연장전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경영권 싸움은 지금부터란 얘기도 있다.

금호일가는 2009년 ‘형제의 난’ 이후 냉전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룹에서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고’가 터지지 않았냐는 관측이다. 형제간 분쟁에서 이번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다는 의견도 있다.

양 진영서 ‘음해설’ 흘러나와
금호 형제간 또다시 이상 기류

업계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해묵은 갈등이 이번 수사의 원인이 되지 않았겠냐”며 “만약 그렇다면 금호가 ‘형제의 난’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삼구-찬구 형제가 처음 충돌한 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찬구 회장은 향후 자금난을 걱정해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삼구 회장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구 회장의 예상대로 그룹은 대우건설을 삼킨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박삼구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불신의 싹이 자랐다. 형에게 불만을 품은 박찬구 회장은 돌연 그룹 경영권을 노린 ‘쿠데타’를 일으켰다. 2009년 6월부터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부장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당초 10.01%에서 18.47%로 늘렸다. 이게 화근이 됐다. ‘10.01%’는 금호가 형제들이 동일하게 보유해온 이른바 ‘황금 지분율’이다. 뒤늦게 박삼구 회장 부자도 금호석유화학 지분(11.77%)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동생에게 뒤통수를 맞은 박삼구 회장은 결국 ‘동반 퇴진’이란 초강수를 뒀다. 박삼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다른 친인척들의 지분을 동원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직을 박탈했다.

박삼구-찬구 형제는 각각 지난해 11월과 3월 금호아시아나 회장,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경영에 복귀한 상태. 이후 계열분리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외부적으로 양측의 갈등이 봉합된 듯 보였지만, 내부적으론 소송이 끊이지 않는 등 신경전은 여전했다.

긴장 속 대치전선
“둘 다 다칠 수도”

검찰 주변에선 양측이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낼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X파일’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 형제가 경영에 복귀하고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는 등 금호석유화학의 계열분리가 속도를 내자 검찰에 X파일이 접수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편으론 검찰이 발견한 차명계좌가 ‘형제의 난’전에 개설된 박삼구-찬구 공동자금이란 추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형제간 사이가 좋을 때 함께 쓰기 위해 만든 비자금이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공동자금 사실이 확인될 경우 두 사람 모두 위험할 수 있다.

검찰은 “차명계좌가 누구 것인지 단정 짓고 수사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목표로 정해놓은 수사도 아니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은 “비자금은 없다”고 부인하면서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최종 종착역은 박삼구 회장일까, 아니면 박찬구 회장일까. 수십억원의 ‘금호 비자금’주인이 누구일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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