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발’ 김기춘·조윤선 공소장 공개

2017.02.21 09:58:43 호수 1102호

‘블랙리스트’ 박근혜가 지시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뜻밖에 등장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목을 조였다.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실세들로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주도한 혐의로 철창신세가 됐다. 국회 위증 혐의도 추가됐다. <일요시사>는 이들의 범죄 사실이 담긴 특검 공소장을 입수했다. 김기춘과 조윤선의 혐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을 구속 기소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일부 공소사실에 공범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기춘 하달
조윤선 실행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지난 7일 정례브리핑서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문화계 지원배제 명단 작성 및 관리 관련, 직권남용과 강요, 국회 위증죄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문화계 블랙리스트 핵심 피의자로 알려진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은 불구속 기소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특검팀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의 블랙리스트 작성과 집행 시작은 이렇다. 2013년 8월 초순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하는 회의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들도 줄을서고 있다”며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 과제다”고 발언했다.

당시 이 자리에는 박준우 정무수석, 모철민 교문수석 등 수석비서관 등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 두 실세 구속
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

또 김 전 실장은 2013년 9월30일경 수석비서관들에게 “국정 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 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 밖에 김 전 실장은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에게 ‘보수 가치’의 확산 등을 언급하고 ‘정부에 비판적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12월 말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업을 구체화한다.

당시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공직자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반정부·반국가적인 성향의 단체들이 좌파의 온상이 되어 종북세력을 지원하고 있다”며 “그러한 성향의 단체들에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2014년 1월4일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김 전 실장은 ‘좌파에 대한 지원 현황을 전수조사하라’는 취지로 재차 지시한다.

김 전 실장은 “좌파정권 10년에 MB정권 5년까지 총 15년 동안 좌파의 뿌리가 깊다. 모두가 전투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 나가야 한다”며 “대통령은 혼자 뛰고 계시는데, 내각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지시가 잘 먹히지 않는다. 좌파 척결의 진도가 잘 안 나간다”고 말했다.

최순실로 촉발
다른 의혹은?

특검은 김 전 실장이 문체부뿐 아니라, 교육부, 복지부, 안행부 산하의 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실태를 전수조사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블랙리스트 작성이 모든 부처에서 이뤄졌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김 전 실장은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직접 불러 ‘수석실 별로 나뉘어 있는 업무 관련 비서관들을 모아서 TF를 만들어서 내용을 정리하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지시에 따라 박 수석 등은 2014년 4월4일부터 5월 말까지 국민소통, 행정자치, 사회안전, 경제금융, 교육, 문화체육, 보건복지, 고용노동 등 비서관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했다.


각 분야별로 야당 후보자 지지선언, 정권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거나 좌파 성향으로 선별한 개인·단체 등에게 지원된 정부 예산을 소위 ‘문제 예산’으로 명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총 130건(예산 합계 189억원)의 문제예산을 선별 후 이들에 대한 지원 축소 내지 지원 배제를 지시했다.

이후 3000여개의 문제단체(좌파단체, 불법 시위 참여 등)와 8000여명의 좌편향인사(문재인 지지, 민노당 지지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지속적으로 이를 보완하며 감시했으며, 공모사업을 실시하는 문체부 등 주요 부처 및 산하 기관의 심사위원 중 좌편향 인사를 선별해 배제토록 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문학평론가 황현산 등이 문화예술위 책임심사위원서 배제됐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공지영 작가 등도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됐다. 이밖에 작가 강은교, 은희경, 윤대녕, 박범신 등도 문화예술위 심의위원 선정 명단서 배제됐다.

박 수석 등은 민간단체보조금 TF의 중간 진행상황을 김 전 실장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했다. 2014년 5월 하순경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 방안’ 보고서를 김 전 실장이 보고 받은 후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좌편향 인사들
데이터베이스

박 수석은 그해 6월 퇴임을 앞두고 후임자인 조 전 장관을 만나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과 문제 단체 조치 내역 및 관리방안 등 현안을 설명하면서 업무를 인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전 장관은 당시 김 전 실장 등의 지시에 따른 기조를 유지하면서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대상자를 선별해 교문수석실을 통해 문체부 등에 그 명단을 하달했다.
 

2014년 10월 경 정관주 전 청와대 소통비서관도 교문수석실과 협업해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야당 인사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한 문화예술계 개인·단체 등에 대한 지원 배제 등 조치사항을 조 전 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정무수석이 된 이후 문화계블랙리스트 선별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 전 장관은 2014년 11월 경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 결과 등 진행 상황을 보고서로 정리해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반대 세력 종북 좌파로 분류 
문화계 전반 지원 배제 의혹

소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포함한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교문수석실과 문체부 등 일부 예술전용관에 대한 지원 중단,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 삭감 방침 등을 정해 실행한 것으로 공소장에 나타났다.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진흥사업 심사관리 규정에 따르면 “영진위의 심사위원회는 한국영화산업과 영상문화의 진흥을 도모할 수 있도록 공모와 심사가 필요한 영화진흥사업에 대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해야 한다”며 “영진위 소속 임직원들도 이러한 심사 과정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명시했다.

특검은 “청와대와 문체부가 영진위 소속 위원들로 하여금 특정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비서관에게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좌파 성향 저자가 저술한 도서가 세종도서에 선정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세종도서에 선정되면 출판진흥원이 1000만원 상당을 구매해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한다. 그 결과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9종의 도서가 배제된 것으로 특검팀 수사 결과 드러났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위증혐으로도 특검에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7일 국회의사당 회의실에서 속개된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제8차)’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증한 혐의다.

알면서…
“모릅니다”

국정조사 특별위원들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했느냐’고 김 전 실장에게 질의했지만, 김 전 실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사실이 특검 조사에서 밝혀졌다.

조 전 장관 역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 한 바 있다. 특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김기춘은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허위의 진술을 하여 위증했다”고 주장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반격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이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문화연대 등으로 구성된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은 지난 8일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국가와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한다”며 “9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송 대리인단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소속 변호사 10여명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3일까지 원고를 모집했고 현재 예술인 474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피고는 정부를 비롯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법인이다.

청구액은 소장 제출 시 1인당 100만원으로 정했다. 향후 블랙리스트 기재 경위와 피해 실태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날 경우 청구액을 확장할 방침이다. 대리인단은 이름과 직업, 정치적 견해 등 개인정보호법상 민감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김 전 실장 등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앞서 블랙리스트 법률대응 모임은 지난해 12월 1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을 고발했다.

소장이 제출된 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이 답변서를 30일 이내 법원에 제출하지 않으면 자백으로 간주되고 무변론 패소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법조계는 전했다. 이들이 고위 공무원으로서 재산을 매년 신고해왔다는 점에서 패소시 집행도 쉽게 피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답변서 제출도 두 사람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원고가 답변서를 첨부해 두 사람의 형사사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면 두 사람에게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창>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