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판결]부모에 대한 고소 제한 합헌

2011.04.06 12:38:06 호수 0호

부모에 대한 고소…"아직은 패륜"

최근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패륜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자식이 부모를 고소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나와 관심을 끈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본인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해 직계비속이 고소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224조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관 9명의 판단은 5(위헌) 대 4(합헌)로 첨예하게 갈렸지만 위헌 결정 재판관의 숫자가 정족수 6명을 넘지 못해 가까스로 합헌 결정이 났다.

반윤리성 억제하는 합리적인 근거 있어 합헌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특별법으로 고소 가능



부모에 대한 고소 제한에 대한 헌법 소원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부터 친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고 고소까지 당했던 서모(50·여)씨는 참다못해 친어머니를 직접 고소했지만 각하 당했고, "부모를 고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고소권의 과도한 제한이고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며 2008년 6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대학교수인 서씨는 어릴 때부터 친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등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씨가 세 살 무렵, 서씨의 어머니는 울고 있는 서씨에게 "시끄럽게 운다"며 서씨의 입을 손으로 잡아 찢었다. 이 일을 계기로 서씨에게 어머니는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어머니의 포악한 성격은 서씨가 성인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서씨의 아버지와 큰오빠가 사망했음에도 이를 믿지 않았고, 도리어 이 모든 것이 재산을 빼돌리기 위한 조작이라며 자녀를 상대로 수많은 고소장을 제출했다. 특히 어머니는 서씨가 허위로 남편의 사망신고를 했다며 서씨의 집으로 쳐들어와 전기드릴로 문을 부수고 난입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공포의 대상

수차례에 걸쳐 서씨의 집과 사무실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서씨가 다른 남자와 내연의 관계라고 떠들고 다녔다. 서씨는 20년 간 어머니와 떨어져 사는 것에 만족하며 간간히 계속되는 횡포를 견뎠지만 한계에 부닥쳤다.

2006년 어느 날 어머니가 또 다시 서씨가 근무하는 대학 연구실로 찾아와 실랑이를 벌인 것. 실랑이는 몸싸움으로 번지긴 했지만 서로 큰 상해를 입지 않고 끝났다. 하지만 며칠 뒤 서씨의 어머니는 서씨가 자신의 갈비뼈 부위를 짓밟는 등 전치 12주의 존속상해를 가했다며 허위의 사실을 근거로 고소했다. 서씨는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무고 및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실제 어머니가 감옥생활을 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강제로라도 정신감정 혹은 치료 감호 등의 적절한 조치를 받게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담당검사는 A씨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에 대한 고소를 금지한 형사소송법 224조 때문이었다. 이 법 조항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A씨는 이 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고, 기각되자 2008년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서씨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에 헌법 재판소는 9명의 재판관은 5(위헌) 대 4(합헌) 의견으로 형소법 제224조를 합헌으로 결정하고 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위헌의견이 더 많았지만 위헌정족수인 7명에 미달해 합헌으로 결정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범죄피해자의 고소권은 그 자체로 헌법상 기본권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형사절차상의 법적인 권리에 불과해 입법자에게 넓은 입법형성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부모 고소 제한은 합헌

이어 "특별법으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제외돼 고소권을 제한하고 있는 분야는 피해의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범죄에 국한돼 있다"면서 "유교적 전통 측면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규범을 수호하기 위해 비속이 존속을 고소하는 행위의 반윤리성을 억제하고자 이를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차별이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또 이 조항이 범죄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제한한다는 주장에 대해 "비친고죄의 경우 고소의 존부와 무관하게 기소될 가능성이 있고, 친고죄의 경우에도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특별법으로 직계존속의 경우에도 고소를 할 수 있어 재판절차진술권의 중대한 제한이 초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이공현·김희옥·김종대·이동흡·목영준 재판관 등 5명은 "해당 조항은 비속의 고소권을 완전히 박탈함으로써 헌법상의 재판절차 진술권 보장에 중대한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법이 보호할 가치가 없는 존속에 대해서까지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포기하고 범죄 피해자인 비속에 대한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심각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또 "존속, 비속이라는 신분 관계는 범죄의 죄질과 책임의 측면에서 경중을 고려할 수 있는 요소를 될 수 있을 지언정 국가형벌권의 행사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면서 존속에 대한 고소를 허용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다양한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고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만이 가족제도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한편, 부모의 고소를 제한하는 해당 조항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뒤 유지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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