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누명쓴 필리핀 새댁사건 진실게임

2011.03.30 11:32:10 호수 0호

필리핀 새댁이 강도?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한국인 남편의 학대에 못 이겨 남편이 잠든 사이 돈을 훔쳐 집을 나간 혐의로 기소된 필리핀 여성 A(23·여)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A씨의 남편 김모(46)씨는 A씨가 자신의 금품과 여권을 훔쳐 달아났다며 배상청구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김씨가 제기한 배상청구를 각하했다. 김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날부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학대를 겪은 A씨의 파란만장 한국살이를 재구성했다.



22세 연상 한국인에게 시집온 24세 필리핀 여성 
갖은 학대와 멸시, 협박에 목숨 위협까지 느껴 
학대 벗어나기 위해 수면제 탄 커피 혐의 인정

서울동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설범식)는 지난 14일 남편에게 수면제를 탄 커피를 건넨 뒤 현금 20만 원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강도)로 불구속 기소된 필리핀 여성 A(23·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역시 만장일치로 무죄라고 평결했다.

끔찍했던 결혼생활

A씨는 지난해 5월27일 김모(46)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해 10월2일 한국에 입국했다. 그때부터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모 오피스텔 12평 규모의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필리핀을 떠나왔지만 A씨의 행복한 상상은 2주 만에 끝이 났다. 어쩌면 두 사람의 결혼은 혼인신고를 진행했을 때 멈췄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김씨가 A씨와 결혼을 약속했을 때 A씨는 김씨가 이혼한 경력이 있고, 전처 사이에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자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위해 한국대사관에 찾아갔다가 이런 사정을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김씨를 믿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혼인신고를 마쳤다.

혼인신고 이후에도 비자발급 문제로 한국으로의 입국이 늦어졌고, 사건 발생 2주 전인 2010년 10월2일에야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김씨는 A씨가 한국에 입국한 이후 태도가 급변했고, A씨를 거칠게 대하기 시작했다. 김씨의 거친 태도는 A씨의 입국 당일부터 시작됐다. 여독으로 피곤해 하는 A씨에게 오피스텔을 청소하라고 윽박지르고 이를 거부하는 A씨를 드라이버로 위협해 결국 A씨는 지친 몸으로 청소를 했다. 이후 대부분의 끼니는 라면과 초콜릿으로 때우게 했으며, A씨가 불만을 토로하면 욕설을 하거나 불같이 화를 냈다.

A씨가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김씨는 A씨에게 나이트클럽에 동행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김씨는 A씨에게 탁자 위에 올라가 춤을 추라고 시켰고, A씨는 마지못해 김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때 김씨는 A씨에게 필리핀 여성 20명 정도를 데려와 술집에서 일하게 하고 A씨가 그들을 관리해 돈을 벌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결혼생활이 아님을 후회하던 A씨는 다음날인 10월14일 저녁 김씨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화가 난 김씨는 평소 집안에 보관하고 있던 수갑으로 A씨의 양손목을 묶고, 삼단봉으로 때릴 듯이 겁을 줬다. 또 장난감 총을 들이대며 A씨에게 "나는 마피아의 일원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한다"는 말로 겁을 줬다.

한국에 입국한지 한 달은커녕 이제 보름도 되지 않은 A씨는 자신이 믿고 따라온 김씨에게 잦은 학대와 협박을 받게 되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A씨는 김씨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학대 피해 도망친 것


생명에 위협을 느낀 A씨는 한국에 온 지 2주 만인 지난해 10월16일 아침 7시께 수면제를 탄 커피를 김씨에게 건넨 뒤 남편이 잠든 사이 미리 챙겨둔 김씨의 돈 20여만 원과 보석이 박힌 반지와 여성용 백금반지, 김씨의 여권 등을 챙겨 집을 나갔다.

A씨가 돌아오지 않자 김씨는 같은 달 17일 오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에서 실종신고로는 수배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A씨를 절도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 역시 친족상도례에 의해 수배가 어려웠고, 결국 김씨는 변호사와 상담을 통해 19일, A씨를 강도죄로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A씨가 가져가지 않은 물품을 허위로 추가시켰다. 현금 100만원과 여권, 패물 100만원 상당의 반지, 모친의 반지 등 피해품을 뻥튀기 시킨 것.

하지만 A씨는 경찰은 물론 검찰과 법원에서도 일관되는 주장을 했다. 자신이 도망 친 것은 생명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고 자신이 가지고 나온 것은 현금 20만원과 김씨에게 선물로 받은 반지 2개, 노트북 가방과 김씨의 여권뿐이라는 주장이다.

또 노트북 가방은 자신의 옷 등 짐을 담아 나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이고, 강취할 의사가 없었으며, 김씨의 여권은 결혼관련서류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파일철의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어서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을 뿐 가지고 나올 고의가 없었다는 것. 또 A씨는 김씨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수면제를 탄 거피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김씨는 그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A씨가 생명과 신체에 위협을 느껴 탈출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고, 현금이나 여권을 빼앗으려고 수면제를 탄 커피를 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A씨가 고의적으로 강도행위를 했다는 게 인정되지 않는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 참여한 7명의 배심원 역시 A시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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