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인수전’ 190일 대장정 풀스토리

2011.01.11 09:30:30 호수 0호

‘‘각본 없는’대역전 드라마, 현대차 주연으로 대단원


현대차그룹이 결국 이겼다. 현대건설을 놓고 현대그룹과 숨 막힌 대결을 벌인 결과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 끝에 거둔 승리다. 아직 인수 절차가 남았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벼랑 끝에 몰린 현대그룹이 마지막 저항에 나설 기세지만, 현대차그룹 쪽으로 기운 판세는 더 이상 요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긴박하게 전개됐던 현대건설 인수전, 그 190일간의 대장정을 총정리 해봤다.

법원, “현대그룹 MOU 해지 정당” 가처분 기각
1조2000억 대출 ‘발목’… 현대차 협상 급물살


지난해 6월29일. 현대건설 채권단은 4년 만에 현대건설 매각 작업을 재개했다. 현대건설은 상당히 매력적인 먹잇감이었다. 2009년 9조원이 넘는 매출에 46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시가총액은 7조원. 순자산 가치는 10조5000억원에 이른다. 반면 부채비율은 150% 정도에 불과해 양호한 재무구조를 자랑했다.



장자론 vs 후계자론
‘적통’ 신경전 치열

먼저 인수전에 뛰어든 곳은 현대그룹이다. 현대건설이 2006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후 줄곧 군침을 흘려온 현대그룹은 8월11일 인수전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그룹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이라며 “오래전부터 현대건설 인수 준비에 나선 만큼 앞으로도 일정에 따라 차분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9월27일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사업 강화 및 시너지 창출을 위해 현대건설 매각 입찰에 참여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그룹 숙원사업이었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자동차 사업도 글로벌시장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기 때문에 미래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대 현대그룹’구도의 현대가 집안싸움으로 전개된 인수전은 두 그룹이 선전포고한 뒤부터 본격화됐다. 그야말로 사생결단식 혈전이 벌어졌다. 출발선을 넘자마자 양측은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현대그룹은 감성을 자극하는 여론전을 펼쳤다. 고 정주영 창업주와 고 정몽헌 전 회장을 내세운 TV 광고를 선보인데 이어 주요 일간지에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기대합니다’란 제목의 광고를 게재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이 지킬 테니 현대차그룹은 본업에나 집중하란 뜻이었다. 또 현대차그룹이 인수전 참여를 선언하자 “현대건설이 어려웠을 때는 지원을 외면하다가 정상화되자 이제 와서 인수하겠다는 것은 유감”이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과 관련 말을 아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며 현대그룹 도발에 공식 대응도 자제했다. 인수전이 시숙(정몽구 회장)과 제수(현정은 회장)간 벌이는 집안 내부의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해서다.

명분 신경전도 볼만했다. 두 그룹 모두 현대건설을 품에 안을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각각 ‘장자론’과 ‘후계자론’으로 맞섰다. 현대건설이 정 창업주가 일군 옛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상징으로, ‘현대 적통’을 잇는데 반드시 필요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집안의 장손인 정몽구 회장이 당연히 현대건설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분가 후 지난 10년 동안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시장의 선두로 키우면서 현대가 장자로서 정 창업주의 숙원사업을 이어왔다. 40년 전부터 추진한 고로사업(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완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형제 기업’인 만도, 현대종합상사, 현대오일뱅크 등 옛 현대 계열사들을 다시 찾는 데도 구심점이 되는가 하면 사촌 형제나 조카 등 현대가 가족들을 직접 챙기는 등의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정 창업주가 정 전 회장에게 현대건설을 물려줬기 때문에 원래 주인이 인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과거 현대그룹 계열사였던 현대건설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정 회장과 정 전 회장 간의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2001년 그룹에서 분리,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는 수모를 겪어왔다.

무엇보다 현대그룹에게 현대건설이 없으면 안 될 절실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경영권 문제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전 결과에 따라 경영권이 위험할 수 있다. 현대건설이 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라도 기필코 ‘먹어야’하는 처지다.

현대차서 현대로,
다시 현대차로…

현정은 회장의 우호지분이 40%가량 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현대상선은 현대중공업이 17.6%를,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7.9%를, KCC가 4.9%를 소유하고 있다. 만약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삼킬 경우 현대그룹으로선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사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의 압승을 점치는 전망이 우세했다. M&A에선 시장의 경제 논리가 우선 적용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에서다. 결국 자금력 싸움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그룹에 비해 ‘실탄’이 넉넉한 현대차그룹 쪽으로 판세가 기울었다.

몸집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에서 현대차그룹은 2위, 현대그룹은 21위다. 자산 규모는 각각 100조7000억원, 12조4000억원으로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2009년 매출액은 50조2750억원, 10조5000억원. 계열사는 43개, 12개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채권단은 11월16일 현대건설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했다. 현대그룹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그룹 전체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현 회장은 인수전을 주도한 임직원들에게 일일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가 하면 축하떡까지 돌렸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쯧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수자금 5조1000억원(주당 13만1000원)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물음표가 달렸다. 무리하게 현대건설을 인수했다가 나중에 부실화될 수 있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대그룹 측은 “오랫동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인수 자금 조달은 문제없다”고 자신했지만, 업계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현대그룹이 전략적 투자자로 지목했던 독일의 엔지니어링 업체 M+W그룹의 불참 선언에 이어 1조2000억원을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인수자금 출처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해당 자금의 예금주가 자산 규모 33억원에 불과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란 점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채권단은 11월23일 현대그룹에 1조2000억원의 자금조달 소명을 요청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나티시스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고 현대그룹 계열사나 현대건설 주식 등을 담보로 잡히지 않았고 보증도 없다”고 소명했다.

‘풀세트’ 물고 물린 대접전
결국 뚝심이 감성 눌렀다!


채권단은 예정대로 11월29일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다음날 1조원이 넘는 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빌렸다는 현대그룹의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해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현대그룹은 이를 거부했다. 채권단은 12월6일에도 대출계약서 제출을 재요구했지만 명확하게 자금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11월25일 현대그룹,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로 현대차그룹 고소 ▲11월29일 현대그룹, 현대차그룹에 50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11월30일 현대차그룹, 현대상선에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 맞고소 ▲12월2일 현대그룹,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 관련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 등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간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에 대해 ‘불충분’결론을 내리는 등 수세에 몰린 현대그룹은 급기야 12월10일 법원에 “MOU의 효력을 유지해 달라”며 채권단을 상대로 MOU 해지 금지 등의 가처분신청을 냈다. 채권단은 이와 상관없이 10일 뒤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해를 넘겼다. 모두들 법원의 결정만 기다렸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과 역전의 드라마가 연출됐다. 법원은 지난 4일 채권단이 현대그룹과 맺은 MOU를 해지한 것은 정당하다며 현대그룹이 채권단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현대그룹이 입찰절차에서 중대한 관심사였던 사정까지 감안해 자료제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며 “양해각서 추가 합의조항 등에서 현대그룹은 1조2000억원 대출에 대한 자료제출 요청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출제한 여부와 대출확인서 작성 명의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기각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법과 입찰 규정에 따른 당연한 결론으로 현대건설과 국가경제를 고려한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으로 생각한다”며 “현대차 컨소시엄은 채권단과 후속절차를 진행, 조속한 시일 내에 현대건설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대, 항소 으름장
4월 매각작업 종료

현대그룹은 즉각 반발했다. 현대그룹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항고 의사를 밝히는 등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놨지만, 현대차그룹 쪽으로 기운 판세는 더 이상 요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대차그룹으로 우선협상자를 바꿔 현대건설 매각 작업을 추진하려는 채권단의 움직임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채권단은 법원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현대차그룹과 매각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과 오는 14일까지 MOU를 맺고 4∼5주간 실사를 거쳐 이르면 다음 달 중순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본 계약을 맺은 뒤 현대차그룹이 3월말이나 4월초 인수대금을 완납하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종료된다.

현대건설 인수전 일지

▲2010.6.29 채권단, 현대건설 매각 작업 재개
▲8.11  현대, 현대건설 인수참여 공식 선언
▲9.27  현대차, 현대건설 인수참여 공식 선언
▲10.1  채권단, 입찰 참여의향서 접수
▲11.15 본입찰 참가 신청서 마감
▲11.16 우선협상대상자에 현대그룹 선정
▲11.23 채권단, 현대에 1조2000억원 자금조달 소명요청
▲11.25 현대,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로 현대차 고소
▲11.28 현대, 채권단 대출증빙 자료제출 요구 거부
▲11.29 채권단, 현대와 MOU체결
           현대, 현대차에 50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11.30 채권단, 현대에 대출계약서 제출 요구
           현대차, 현대상선에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 맞고소
▲12.2  현대, 현대차에 이의제기 금지 가처분 신청
▲12.6  채권단, 현대에 대출계약서 제출 재요구
▲12.10 현대, MOU 해지 금지 가처분신청
▲12.15 채권단, 현대 2차 대출확인서 ‘불충분’결론
▲12.20 채권단, 현대와 MOU 해지 결정
▲12.22 현대, MOU 효력 유지 가처분 신청으로 변경
▲2011.1.4 법원, 현대 가처분신청 기각



바로잡습니다

지난 1월13일자 782호 44면 ‘이수동 STG그룹 회장’ 제하의 기사내용 중 STG그룹의 연간 매출은 2000억원이 아닌 4000억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또 이 회장의 아들 이필립씨의 출신 대학도 보스턴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원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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