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허술한 흉기소지법 논란

2016.06.07 10:53:50 호수 0호

칼 들고 다녀도 OK?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흉기 소지가 경범죄로 처벌돼 이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현행 흉기소지죄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 흉기소지법 개정 서명운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대구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추모 현장에서 50대 A씨가 흉기를 들고 서성이다 경찰에 붙잡혔다. 목격자에 따르면 A씨는 15cm 길이의 공업용 칼을 정장 속에 숨긴 채 동성로의 한 매장을 엿보고 있었다. 번화가 지역이라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매장 안만을 바라봤다.

사건으로 연결

이 수상한 남성이 매장의 문을 열고 상체만 들이밀어 매장 안을 들여다보자 매장 직원이 문을 잠그기도 했다. 이후 이 남성은 매장 옆의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도 매장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목격자는 마침 부근을 지나가는 경찰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고 경찰은 CCTV를 확인한 뒤 A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즉결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경찰은 “A씨가 당시 흉기로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공격하진 않았고 흉기를 휴대만 한 상황이었다”며 “이런 경범죄는 현행범 체포 요건이 아니지만 A씨처럼 신분증 요청에 불응해 주거부정이 되면 현행범으로 체포해 즉심에 넘기게 된다”고 말했다.

또 지난달 24일 새벽 경산에서는 40대 B씨가 양손에 칼을 두 개 들고 주머니에는 가위까지 넣은 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출동한 경찰에 B씨가 흉기를 버리며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소동을 일으킨 B씨가 받은 처분은 범칙금 8만원이 고작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 흉기 소지라 현장에서 통고 처분하고 범칙금 스티커 끊고 석방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흉기 소지에 대한 현행법상 처벌 규정은 경범죄 처벌법에 의한 10만원 이하 벌금과 구류 그리고 과태료가 전부다. 나중에 큰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경범죄 말고는 이들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

현행법상 경범죄 속해 ‘있으나 마나’
그냥 귀가조치?…개정 서명운동 확산

이에 불안한 시민들은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 시키는 등 사회적 격리나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한 시민은 “분명한 정황 증거가 있고 목격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정신감정을 받든 치료를 받든 그런 강제력 있는 처벌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흉기 든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면서 시민 불안은 커지고 있지만, 안전을 보장할 제도는 뒤따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흉기소지법 개정 서명에 동참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대구 흉기소지자 검거현장에 있었다고 밝힌 글쓴이는 “범행을 저지를 ‘잠재적 범죄자’로써 충분한 근거가 보였지만 현행 흉기소지법에 의거해 이 남성은 즉결심판으로 귀가조치됐다”라며 “받은 벌은 벌금 20만원으로, 예전에 길거리에서 그냥 주먹에 맞아 받은 합의금보다 적다”고 꼬집었다.

이어 “운 좋게 피해자가 없어서 다행이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다행스럽게 살아야 하나”며 “안전하게 밖을 돌아다니고 싶다. 우리 누나, 우리 엄마, 내 친구가 안전하게 거리를 돌아다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민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법을 만들라고 국회가 있는 것 아니냐”며 흉기소지법 개정을 촉구했다.

글쓴이는 “군사독재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심검문하고 흉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모두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분명한 정황증거가 있고 목격자까지 있는 상황에서는 조금 더 강제력 있는 정신감정이나 치료를 통해서 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네티즌들도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의 뜻을 표하고 있다. 이들은 “흉기소지법이 꼭 개정돼서 맘 놓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보다 끔찍한 피해를 막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똑같은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예방하는 데 힘써주세요” 등의 댓글을 달았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7조는 범죄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흉기 등 휴대·제공·알선 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면서 흉기가 범죄에 이용되지 않더라도 휴대 및 소지 자체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흉기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불분명해 혼란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총기는 흉기로 인정하지만 근로자들이 들고 다니는 망치와 같은 연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구분할지 전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검문을 실시할 경우 시민들의 원성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원활한 범죄 예방을 위해서는 정확한 흉기의 법적인 정리가 필요하고 경찰 검문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정부는 각급 학교별로 청소년·대학생 대상 중증 정신질환자 조기발굴 체계를 마련하고,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 고위험군도 조기에 찾아내 치료를 지원할 방침이다. 개정 정신보건법에 따라 정신질환 의심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위협하는 경우 경찰이 신병을 확보한 즉시 행정입원 요청 등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행정입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벌금 고작 몇만원

한 전문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일선 경찰서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진단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흉기를 들고 돌발행동을 벌이는 정신질환자를 효과적으로 막기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게 경찰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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