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삼킨 현대그룹 ‘승자의 저주’ 막전막후

2010.11.23 10:04:44 호수 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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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현대건설을 인수한 현대그룹. 잔칫집 분위기다. 그룹 전체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여기저기선 떡 돌리고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10년 넘게 공을 들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갑다. ‘쯧쯧’ 혀 차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렇다. 현대그룹은 지금 마냥 웃고 떠들 때가 아니다. 아직 현대건설의 진짜 주인이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잔칫집 분위기
적통유지·성장동력·경영권안정 ‘일거삼득’


지난 16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 현대그룹이 현대·기아차그룹을 제치고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임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안았다. 현정은 회장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수전을 주도한 임직원들에게 일일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날 연지동 술집 골목은 ‘현대맨’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후문이다.

‘축하떡 돌리고,
샴페인 터뜨리고’



들뜬 분위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전날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다. 그룹 측은 사옥 로비에서 출근하는 임직원들에게 백설기를 나눠줬다. 현대건설 인수를 자축하는 ‘축하떡’이었다. 떡을 주고받은 직원들은 서로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의 노고를 자축하는 작은 행사”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하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 외환위기와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2001년 그룹 계열에서 떨어져 나간 뒤부터 줄곧 군침을 흘려왔다. 현대건설은 당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2006년 정상화됐다. 현 회장은 그룹의 모태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을 반드시 되찾겠다고 다짐해왔다.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현대건설이 필요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자산규모가 22조원이 넘고, 매출도 지금보다 2배 가까이 늘게 된다. 이에 따라 재계순위는 21위에서 단숨에 14위로 올라선다.

무엇보다 경영권 문제로 절실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이 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라도 기필코 ‘먹어야’하는 처지다. 현 회장 우호지분이 40%가량 되지만 안심할 수 없다.

현대상선은 현대중공업이 17.6%를,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7.9%를, KCC가 4.9%를 소유하고 있다. 만약 범현대가가 현대건설을 삼킬 경우 현대그룹으로선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싸늘하다. 현대그룹이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인수 능력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것. 과연 통 큰 ‘베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물음표다.

“마냥 웃을 때 아니다”
인수대금 마련 불투명
5조5천억 중 4조가 빚
외부 수혈 문제 없을까

현대그룹은 이달 말까지 현대건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12월초 이행보증금을 납부한 후 정밀 실사를 거쳐 내년 초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과정이 남았다. 문제는 역시 인수 자금이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금액으로 약 5조5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M&A 업계에서 당초 예상되던 인수가 4조원보다 무려 1조5000억원이나 많다. 현대건설의 지난 15일 종가 7만3100원으로 계산할 경우 현대그룹은 이 금액에다 95%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입찰가격을 써낸 셈이다. 이는 국내 주요 인수·합병(M&A) 가운데 최고의 경영권 프리미엄 수준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현대그룹보다 4000억원 정도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가 결국 밀린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그룹은 “오랫동안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인수 자금 조달은 문제없다”며 “인수대금을 최종 인수까지 현금으로 한꺼번에 납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채권단 측은 “총 대금 중 11월 말 MOU 체결 때 이행강제금으로 5%, 본계약 시점에 10%, 주식매매계약 시점에 나머지를 받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현대그룹은 5조5000억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현대그룹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5000억원 정도다. 몽땅 털어 넣는다고 해도 4조원이 모자란다. 나머지는 계열사들과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지원받는다는 게 현대그룹의 복안이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주축으로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 등에서 회사채·기업어음 발행, 자회사 지분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동원하는가 하면 동양종금증권과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자금을 끌어 모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선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현대그룹은 “전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했다”며 자신하고 있으나, 시장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자금조달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아 5조5000억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뿐더러 가까스로 모두 준비한다 해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룹이 쥐고 있는 현금을 제외하면 대부분 차입 형식이라 막대한 이자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만약 3조원을 차입했을 경우 금리를 연 5%만 적용해도 매년 이자를 1500억원씩 내야 한다.

현대건설 자산 매각설
그룹 측 해명에 진땀

또 현대건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초기 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현대건설이 그룹 덩치와 맞먹는 점을 감안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재무적 투자자에게 보장한 수익도 부담이다. 현대그룹은 투자자들과 맺은 계약 조건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현 회장은 한 술 더 떠 “현대건설에 2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큰소리까지 친 상태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현 회장은 지난 18일 금강산관광 12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에 있는 시아버지 고 정주영 창업주와 남편 고 정몽헌 회장의 선영을 참배한 직후 “현대건설이 글로벌 톱5로 성장하는 202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할 것”이라며 “현대건설 인수로 현대그룹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펑크 난 지갑을 채우기 위해 현대건설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현대건설 자산을 매각하는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지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M&A 시장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무턱대고 대형 인수전에 나섰다가 큰 코 다친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현대그룹이 무리하게 판을 키우다 수렁에 빠진 이들 기업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현대그룹도 가장 걱정하는 대목이 바로 ‘승자의 저주’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을 무려 6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부족한 자금 마련을 위해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서 3조원가량을 빌렸다.

이 과정에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2009년 11월까지 3년간 연이율 9%를 보장하는 ‘풋백옵션’을 약속했는데, 이게 화근이 돼 어렵게 삼킨 대우건설을 다시 내뱉는 동시에 사실상 그룹이 해체되는 결정타가 됐다. 무리한 조건으로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것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뿐만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는 오너 형제간 불화로 이어져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불운도 겪었다.

한화그룹도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도전해 포스코, GS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한화그룹은 대한생명, 갤러리아백화점, 한화리조트 등 전 계열사의 자금을 총동원해 인수 대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자칫 무리한 인수에 나섰다가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재무구조 약정 체결 변수
노조 반발도 넘어야 할 산

한화그룹은 당시 3000억원의 계약금을 날렸으나 인수를 밀어붙였다면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밖에 2006년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2007년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2008년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돈만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우선 외환은행 등 그룹 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문제가 골칫거리다. 법원은 지난 9월 “약정 체결을 거부한 기업을 채권단이 공동제재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건설 인수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의신청을 잠시 보류한 채권단은 본입찰이 끝난 만큼 다시 현대그룹에 약정 체결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채권단 입장에선 현대건설 인수금 조달을 위한 현대그룹의 외부 수혈이 반가울 리 없다. 위험 부담이 큰 탓이다. 채권단과의 힘겨루기가 재점화된다면 현대건설 인수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노조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대건설 노조는 “채권단은 매각 기준과 내용을 공개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차입금은 결국 현대건설이 떠안아야 한다며 과도한 자금 부담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또다시 부실기업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매각결정 기준이나 회사경영계획, 구체적인 자금동원 내용 등을 공개해야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실사 총력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현대건설 노조는 본입찰 전 주요 일간지에 ‘현대건설 가족의 호소문’이란 제목의 광고를 내고 “우량기업이었던 대우건설이 잘못된 M&A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각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기준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그룹 계열 현대증권 노조도 현대건설 인수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 자금을 회사의 발전에 써야지 그룹의 무리한 계열사 확장에 자회사의 소중한 자금이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며 “현대건설 인수나 경영할 능력도 없는 현대그룹이 부당하게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맹비난했다.

금호아시아나처럼?
‘발목 잡힐라’우려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 승자는 아니다. 현대건설의 진짜 주인이 된 게 아니란 얘기다. M&A 전문가들은 “현대건설의 우선협상자가 선정됐지만 매각이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닌 만큼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도 “아직 인수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잘 아는 현대그룹은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현대그룹이 험난한 여정을 잘 마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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