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재벌 전면전 막전막후

2010.08.03 09:19:45 호수 0호

‘○○그룹 본보기’ 일단 한 X만 팬다


폭풍전야다. 이명박 대통령과 재벌그룹 사이에 전운이 가득하다. 아직 본게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현 상황만 본다면 누구 하나 무릎 꿇어야 끝날 판이다. 물론 주도권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이미 살벌한 으름장으로 선전포고한 상황. 대기업들이 이를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까진 대놓고 반기를 들지 않았지만 점점 청와대를 향한 노골적인 반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일촉즉발의 전면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통령, 대기업 사회책임 강조…비판 수위 높여
재계 곳곳서 ‘볼멘소리’ 노골적인 반기류 확산


2007년 12월28일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선 승리 열흘 만에 가진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주의)’정책을 선언했다. 당선인 신분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당시 그는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경제정책을 추진해 성장 중심 정책을 펼 것”이라며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와 감세를 약속했다.

친기업서 민생으로
대통령 변심 왜?

재계는 술렁거렸다. 지난 10여년 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이유에서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역시 CEO 출신 대통령” “이제는 할 만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재계에선 MB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는 화답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로부터 2년7개월이 흐른 지금,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자취를 감췄다.

사상 유례없는 고유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환율 고공행진 등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MB정부와 재계가 합심해 잘 넘기자마자 사이가 갈라진 형국이다. 당초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특히 MB정부가 ‘친기업’에서 ‘민생’으로 경제 정책의 초점을 바꾸면서 전운까지 감지되는 상황이다. 그 시작은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망신을 당한 직후부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더니 지난달 22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포스코 미소금융’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에서 너무 높은 이자를 받는다”고 지적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불만이 노골화됐고, 연일 대기업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재벌그룹을 향해 “대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많은데 투자를 안 하니까 서민들이 힘들다” “청와대가 대기업 키워주려는 줄 아느냐” “행사에 대기업 CEO들 빼라” “대기업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등의 맹비난을 퍼부은 것.

급기야 이 대통령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에 대해 일종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이어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여당 지도부 등도 ‘대기업 때리기’에 가세했다. 이 대통령과 그의 아군들이 뿔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기업들이 깜짝 실적에도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탓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올렸다.

재계의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봐도 그렇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처음으로 영업이익 5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대차는 올 상반기 매출 17조9783억원, 영업이익 1조5660억원, 순이익 2조5170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사상 최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간’에 현금을 잔뜩 쌓아둔 채 쉽게 풀지 않고 있다.

재계사이트 ‘재벌닷컴’이 1분기(1∼3월) 실적을 기준으로 지난달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순위 30대 그룹의 비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대차대조표상 현금과 단기금융상품을 합한 액수)은 모두 59조297억원이다. 삼성그룹이 14조3018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기아자동차그룹(7조5777억원), SK그룹(5조8448억원), LG그룹(3조498억원), GS그룹(2조8987억원), 롯데그룹(2조6929억원), 현대중공업그룹(1조9478억원), STX그룹(1조7830억원), 한진그룹(1조5814억원), 두산그룹(1조4156억원), 대림그룹(1조2507억원)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일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 방침에 부응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대형 사업장의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인원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의 취업자 수는 올 2월 188만9000명으로 작년 동월(193만8000명)보다 4만9000명이 줄었다. 지난해 말에 비해선 5만7000명이나 줄었다.

반면 300인 미만 중소형 사업장은 같은 기간 17만4000명 늘었다. 더욱이 올들어 전체적으로 취업자가 30만명 이상 감소하고 실업률도 5% 안팎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채찍을 맞은 재계의 반응이다. 바짝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고 있다. 정부를 향해 싸늘한 냉기와 함께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정부의 으름장에 그저 속앓이만 했던 과거와는 전혀 딴판인 셈이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는 한마디로 “못 해먹겠다”는 재계의 반발 심리를 어느 정도 대변했다는 분석이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지난달 28일 제주도에서 열린 ‘2010 전경련 제주하계포럼’개막식에서 정병철 상근부회장이 대신 읽은 개회사를 통해 “천안함 침몰 등 국가 안보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데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국가적 위기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며 “나라가 올바르게 나아가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 장차 국가가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계 단체 수장이 경제 문제가 아닌 국정 사안을 꼬집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살벌한 으름장에
“못 해먹겠다”

조 회장은 또 “(정부와 정치권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관을 굳건히 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해 최근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를 우회적으로 비꼬았다. 이 같은 반격 소식이 알려지자 주요 대기업은 후폭풍을 우려해 공식적으론 “우리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기업 관계자 개개인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다” “시원하다” 등의 진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정부와 그 ‘별동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검찰이 선봉에 선 형국이다. 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와 무관치 않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조만간 기업 관련 비리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검 중수부가 재가동되는 것은 지난해 6월 ‘박연차 게이트’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1년여 만이다.

중수부는 이달 중 새 수사팀을 구성하는 대로 구체적인 수사 방향과 대상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 조성, 횡령, 재산 국외도피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내에서 내로라하는 ‘특수통’들이 배치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수수사는 주로 대기업 비자금이나 정치인 뇌물 사건을 다룬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최근 중소기업 간담회에서 “공기업, 상장사, 공적자금 투자기업, 거액 대출기업 등 사회적 책임이 큰 기업의 문제는 엄중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밝혀 본격적인 사정작업을 암시했다.

검·국·공 ‘대협공’ 감지
비리 첩보·제보 ‘만지작’  
‘압박 카드’ 첫 제물 초긴장


여기에 국세청과 공정위도 힘을 보탤 모양새다. 국세청은 이미 칼을 뽑아 들었다. 올해 세무조사 대상 기업 수를 지난해 대비 30% 이상 늘려 잡고 본격 조사에 들어간 것. 모범 납세로 표창 받은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세무조사 대상 기업을 예년의 80%로 줄였었다. 국세청은 “경기가 회복된 만큼 조사 대상 기업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래에서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를 본격화할 태세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는 기존보다 심층적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며 “혐의가 있는 기업에 대해선 직권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세 기관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과) 전혀 연관이 없다”며 딱 잡아떼고 있지만, 대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사정기관의 ‘대협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검찰, 국세청, 공정위가 정조준한 타깃은 어딜까. 재계에선 여러 기업을 상대로 한 동시다발 수사가 아닌 각각 ‘본보기’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아서 기어라’하는 심산에서 릴레이식으로 한 기업씩 털어내지 않겠냐는 것.

대검 중수부 재시동
국세청·공정위 꿈틀

이들 기관 안팎에서 거론되는 ‘첫 제물’로 유력한 대기업은 A그룹이다. 검찰엔 ‘오너가 거액을 횡령했다’ ‘친노그룹에 비자금을 제공했다’ ‘수상한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갔다’등 A그룹의 비리 첩보와 제보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가 탈루로 마련한 자금을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 ‘옛 임원이 창업한 하청업체와 부당한 거래 중이다’란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 국세청과 공정위도 A그룹을 잔뜩 벼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A그룹은 이런 기류를 감지해선지 최근 부쩍 사회공헌도와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상생 실적 자랑에 바쁘다. 일각에선 사건이 다소 복잡하게 흘러갈 수 있는 재벌그룹에 앞서 중견기업이 먼저 도마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 대통령과 재벌그룹간 갈등의 분수령은 8월15일 광복절이 될 전망이다. 경제단체는 주요 총수들이 대거 포함된 기업인 78명의 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한 상태. 이제 이 대통령의 수용 여부만 남았다. 이 대통령과 재벌그룹이 돈독했던 옛 관계를 회복할지, 아니면 파국의 본게임에 들어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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