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무늬만 회사차’ 논란

2015.09.24 14:27:49 호수 0호

판치는 탈세차…허술한 제동법

[일요시사 취재팀] 박민우 기자 =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형 악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탈세 논란이 그것. 오너나 경영진이 고가의 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세금을 탈루하는 편법이 도마에 올랐다.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수입차에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개월 앞서 15만대를 돌파했다. 협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수입차는 7월 전년보다 10.7% 늘어난 1만8200대를 판매했다.

수입차 역대 최고
법인차 증가 연관
 
6월 2만4275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데 이어 7월에도 2만대를 돌파, 두 달 연속 2만대를 넘어섰다. 올해 1∼8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보다 23.2% 늘어난 15만8739대로 나타났다. 유럽차들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팔린 수입차 10대 중 8대가 유럽차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에서도 돌풍 주역은 독일차다. BMW와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등 독일 대표 브랜드들이 8만2443대를 팔았다.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70%에 이른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 규모는 역대 최고치인 19만6359대에 달했다. 2013년과 비교해 25.5%의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신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은 13.9%였다. 이 수치는 올해 다시 깨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KAIDA 측은 “올해 20만 판매가 조기 달성될 것으로 본다”며 “판매량이 24만대로 전년대비 20%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악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바로 탈세 논란이다.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등 정부와 정치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수입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단 수입차 판매 증가는 법인차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업자 업무용으로 팔린 차량은 10만5720대로 조사됐다. 이렇게 팔린 찻값만 모두 7조4700억원에 달한다. 1억원 이상 수입차 1만4979대 중 83.2%(1만2458대), 2억원 이상 수입차 1353대 중 87.4%(1183대)가 업무용으로 판매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이른바 ‘슈퍼카’의 90% 이상이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된다.

 
 
업무용 차량은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가격은 물론 취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5년간 무제한으로 사업자 경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너나 그 일가, 또는 경영진이 고가 수입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있다.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명의로 수입차를 구매한 뒤 개인용도로 타는 것은 결국 세금 탈루란 지적이다. 
 
경실련은 “수입차에 주어지는 세제혜택이 해마다 2조5000억원에 이른다”며 “고가 수입차가 무늬만 법인차로서 사실상 탈세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대안으로 ‘캐나다 모델’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업무용 차량에 대해 3만 캐나다달러(약 27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해준다. 경실련은 “무제한인 업무용 차량 경비처리 기준을 30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00만원 초과금액에 대해선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연간 약 9266억원의 세금징수가 가능하다는 게 경실련의 계산이다. 경실련 측은 “국내 법인차 증가와 수입차 판매 증가는 무관하지 않다”며 “업무용 차량에 지원되는 세금혜택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국회입법조사처의 ‘업무용 차량 과세제도 개선을 위한 조세정책 과제’에 따르면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업무용 차량의 업무관련 범위 판단기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구체적인 편이다. 영국은 고용의무 수행, 일시적 근무지 출근에 사용할 때에만 업무관련성을 인정한다. 일본은 통근, 기타 사업상 관련 운행을 업무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지만 반드시 사용자의 신분은 법인의 임직원이어야 한다. 독일은 유한회사의 회사명의 차량은 100%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며, 인적회사는 업무용 차량이 업무에 50% 이상 사용되면 필수적 업무용 자산으로 분류한다.
 
불티나는 수입차…대부분 사업자 업무용
오너·경영진이 유용해 세금탈루 도마에 
 

뿐만 아니다.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업무용 차량 구입비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미국은 차량값이 1만8500달러(약 2000만원)를 넘으면 세금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한다. 일본은 차량 가격 300만엔(약 2600만원)까지만, 호주는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 의원은 “업무용 자산취득에 대한 손금산입제도를 악용, 법인 명의로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절세의 수단으로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세금공제의 한도를 정함으로써 최고급 차량을 법인 명의로 구매해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서둘러 보완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업무용 차량 관련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고가 업무용차의 무분별한 세금 탈루행위를 막기 위해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만 가입하면 저가차에서부터 수억원대의 고가차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총비용의 50%까지 경비처리를 허용하는 게 골자다.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엄격제한”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개정안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 실효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다음은 업계에서 논란 중인 업무용차 관련 세법개정안 문제점이다.
 
▲서민증세 불가피 = 우선 서민증세 논란이 불거진다. 정부안은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모든 업무용차 구입·유지비에 대해 50%는 기본으로 경비처리를 허용하고, 나머지 50%는 운행일지를 작성해 업무용으로 사용한 비율만큼 경비로 인정해준다. 따라서 50%를 초과해 경비로 인정받고 싶으면 운행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1000만∼2000만원대 저가의 업무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중소사업자들의 세부담까지 수백만원 증가할 수 있다. 저가 업무용차는 최저생계비 보호목적의 소득세 인적공제(1인당 150만원)와 같이 취급해야 하지만, 정부안은 저가차까지 모두 과세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용차로 1630만원 소형세단을 구매한 개인사업자의 경우 현재 경비처리를 통해 5년간 총 1452만원의 세제혜택을 받았으나, 정부안이 시행되면 세제혜택이 최대 절반으로 감소해 726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업무상 사용비율을 70%까지 높여도 436만원의 세부담 증가를 피할 수 없다.

 
 

▲과세형평성 훼손 = 비싼 차를 가진 고소득사업자가 여전히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안은 임직원 전용보험에 가입만 하면 2억원대 차든, 1000만원대 차든 업무용으로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총비용의 50%까지 기본으로 경비로 인정해준다. 2억원대 차를 업무용으로 사서 100%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총비용의 절반(구입비만 1억원)을 공식 비용으로 처리해 주는 것이다.
 
반면 1000만원대 소형세단은 임직원 전용보험에 가입해 50%까지 경비로 인정받더라도 구입비 경비처리액은 500만원대에 불과하다. 유지비 역시 수억원대 세단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어 경비 처리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합법적 탈루수단 제공 = 정부안은 사업주가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만 가입하면 업무상 사용여부를 입증하지 않아도 총비용의 50%를 경비로 인정해준다. 또 ‘임직원 전용 보험’과 ‘사업자 로고 부착’을 하면 업무상 사용여부 입증 없이 총비용 전액(100%)을 경비로 처리가 가능하다.
 
정부 업무용차 관련 세법개정안 추진
‘있으나 마나’ 허점투성…실효성 논란
 
이를 두고 사업주의 사적 사용을 통한 세금탈루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합법적인 세금탈루 수단까지 제공하는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호화주택을 구입한 후 이 주택 외벽에 ‘회사간판’만 달면 주택 취득비는 물론 유지관리비까지 전액 경비처리를 허용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정부의 고소득 사업주에 관대한 무자료 경비처리 혜택은 사업자 퍼주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뻔한 운행일지 조작 = 사실상 업무용차 규제를 위해 정부가 새로 추진하는 것은 운행일지 작성과 회사 로고(상표) 부착 밖에 없다. 이마저도 시작단계부터 허술한 작성이 우려된다. 운행일지를 통해 과세하려면 사업주들이 운행일지를 정직하게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허위로 작성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운행일지를 매일 기록하지 않고 주1회 또는 월1회 기록해도 인정해주는 ‘간편차량이용명세’나 ‘표준차계부’같은 운행일지 기재 간소화 방안을 제시했다. 더욱이 운행일지 허위 작성에 대해 규제·처벌 조항도 없다.
 
▲통상마찰은 핑계? = 정부는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해 경비산입 상한액 설정이 어렵다고 한다.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인데, 이 논리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미 FTA 협정문 ‘민간 구매에 관한 정책’을 보면 각 당사국은 자국 영역의 민간인이 다른 쪽 당사국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인 영향력이나 설득 수단을 통해 억제하는 것이 자국의 정책이 아님을 확인한다고 정했다. 한·EU FTA 협정문 ‘자동차 및 부품관련 부속서’는 특징적인 그 밖의 규제조치를 통하여 이 부속서에 따라 다른 쪽 당사자에게 발생하는 시장접근 이익을 무효화하거나 손상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기술돼 있다.
 
두 내용은 업무용 차량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통해 탈세를 방지하겠다는 당사국(한국)의 고유한 주권법안의 권리 및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무용차에 대한 엄격한 규제는 자국(한국) 상품 소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상대국들의 통상 차원 이의제기는 가능하더라도, 적극적인 통상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큰회사 잡으려다
작은회사 죽인다
 
특히 수입차 관련 세법개정안은 정당한 조세권 행사를 통한 탈세방지 접근 성격이므로 FTA 협정과는 무관하다는 관점도 있다. 캐나다, 호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고가차 구입을 통한 무분별한 세제혜택을 막기 위해 구입비 경비상한액을 설정하고 있다. 한국이 경비상한을 설정해도 상대국에서 통상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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