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⑤>고진감래 끝 승리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2010.07.13 10:19:26 호수 0호

칠전팔기 오뚝이 시장의 대전 살림살이 “빛난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에 자유선진당 염홍철 후보가 46.7%의 득표율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4년 전 선거에 낙선한 후 보냈던 고통의 시간을 만회한 순간이었다. “시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대전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염홍철 대전시장. 그의 족적을 따라감과 동시에 그가 대전을 위해 제시한 비전에 주목해봤다.

RCY 충남학생협의회 회장 시절 ‘스승의 날’ 전국화
‘대전엑스포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엑스포 시장’ 별명


염홍철 대전시장은 1944년 8월 충남 논산 채운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논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대전으로 진학했다. 늘 문학인이 되기를 꿈꿔왔던 그이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때문에 대학진학을 꿈도 꾸지 못했던 그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전 공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염 시장은 전교 학생회장과 JRC 대전지구 연합회장직을 도맡아 하면서 교우관계를 넓힌 한편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특히 대전시내 고등학교에서 활동력이 있는 학생들로 이뤄진 ‘한다발회’는 오늘날까지 끈끈한 정과 신의로 이어져 오고 있다.

‘스승의 날’의 뿌리가 된 ‘은사의 날’을 전국화 시킨 것도 이때의 일이다. 대전공고 3학년 RCY충남학생협의회 회장을 지내던 그는 RCY총회에 참석해 매년 5월24일 충남 일부 학교에서 행해지던 ‘은사의 날’을 전국 행사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이는 RCY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고 이듬해부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은사의 날’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5년 ‘은사의 날’은 명칭과 기념일이 ‘스승의 날’, 5월15일로 각각 바뀌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결국 그는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기계 만지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특차생으로 당당히 입학한 그는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맞게 된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을 반대하는 학생시위인 ‘6·3사태’가 바로 그것. 염 시장이 학생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굴욕외교가 첫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학생에게 냉차를 건넨 노점 할머니를 폭행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정부의 부도덕성에 울분을 느꼈던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시위 참여가 문제가 되면서 결국 그는 대학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게 됐고 백마부대 일원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제대와 동시에 복학한 그는 지식과 소양을 쌓는 데 열중했다. 공부가 좋았던 염 시장은 대학 졸업 후에도 학문에 매진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성균관대,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며 경험을 쌓은 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남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뿐만 아니라 교수 재직시절에도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유학하며 학문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특히 당시 학계의 관심사였던 선진국과 후진국의 정치ㆍ경제발전 이론인 ‘종속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제3세계와 종속이론>을 저술했다. 이 책은 당시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되는 등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학자로 쌓아온 이론과 경험을 국가발전에 활용하고 싶었던 그는 공무원이라는 새로운 항로에 들어설 것을 결심했다.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첫 공직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후 정치기획, 남북관계, 여성문제, 당정협조 등의 분야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했다.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가 되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북한 대표들과 협상을 벌였고 국제 의원연맹회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일국교 정상화회담
반대시위 적극참여



그렇게 5년 간 중앙행정을 꾸려오던 그에게 제2의 고향인 대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993년 마지막 대전 관선시장으로 임명된 것.

2년 동안 대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93 대전 엑스포’를 성공으로 이끌면서 ‘엑스포 시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정부대전청사를 기공한 그는 제75회 전국체전을 성공리에 치러냈다. 뿐만 아니라 대전의 세계화를 핵심으로 한 ‘21세기 대전 발전 구상’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런 천고의 노력 끝에 그의 관선시장 시절은 ‘대전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긴 시기’로 평가 받게 됐다.

이후 한국공항공단이사장으로 발탁된 염 시장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계획을 수립해 국제적 허브공항을 만들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중부권의 세계화와 발전의 일환으로 청주국제공항을 완공하는 등 한국공항의 선진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다.

이후 그는 늘 꿈꿔 오던 대전발전의 뜻을 펼치기 위해 대전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 한밭대 총장으로 2년 간 재임하면서 교명변경과 함께 대학 발전의 의지를 결집한 결과 한밭대를 중부권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밭대가 국립대학 종합평가에서 2년 연속으로 우수대학에 선정돼 수십억 원의 재정지원을 받아내고 전국 산업대학 특성화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제3세계 종속이론>
베스트셀러 저술

국립대 총장직을 마친 그는 지난 2002년 대전시장에 도전해 대전시민의 선택을 받게 됐다. 그는 대전이 ‘한국의 신중심도시’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시정을 이끌었다.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보니 임기 4년 간 개인적 시간을 쓴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는 재임시절 충청권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시민들과 더불어 노력했다. 그 결과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또 타시도와 정치권의 끊임없는 분산지정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유일의 대덕연구개발 특구를 지정케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국가적 경제성장 기지로 육성하는 데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이 밖에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개통과 민·관 자율참여 복지네트워크인 복지만두레, 시내버스 준공영제, 3대하천 생태조성사업, 대전 전역의 공원화사업 등도 시민들과의 공감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이룬 성과다. 무엇보다 시민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염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선3기 대전시장을 퇴임한 이후 염 시장은 봉사활동과 독서, 집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2006년 9월 장관급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제7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때 그는 중소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정책의 시행착오를 줄여 나감으로써 중소기업이 경영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2007년 11월 퇴임 직전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찾아다니며 경영주와 근로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정부에 바라는 내용에 귀 기울이기도 했다.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를 했고 여러 성과가 뒤따랐다.

염 시장은 스스로를 ‘소수파(minority)인생’이라고 표현한다. 시골출신(논산 채운초, 강경중 졸업)으로 고등학교(대전공고)와 대학 내내 같은 지역 출신이 적어 늘 소수에 속했고, 교수 시절 역시 동료교수에 비해 그럴듯한 배경을 갖지 못한 점 때문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중앙공직자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끊임없는 노력, 자기계발로 소수파 인생 뛰어넘었다”
“소통은 화합을 통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


하지만 그는 이런 소수파적 인생을 뛰어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에 대해 그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라고 설명했다.

염 시장의 하루는 대학교수시절부터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출근해 더 늦게 퇴근했다. 강의가 없는 방학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논문을 썼다. 중앙공직자 시절이나 관선 대전시장, 한국공항공단 이사장, 국립 한밭대 총장, 민선3기 시장,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서도 “나는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존하는 사람”이라는 일념으로 뛰었다.

또 한 가지 염 시장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나눔과 섬김’이 바로 그것. 이는 그가 좌절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제나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는 염 시장. 그런 그가 이번에 대전시민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앞으로 대전의 살림을 도맡아 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민선5기를 맞은 대전의 10대 주요 정책과제는 ▲5년 간 10만 개 일자리 창출 ▲원도심 활성화 ▲엑스포 과학공원 활성화 ▲도시철도 2호선 조속한 건설 ▲영유아 보육 및 교육의 의무교육수준 확대 ▲첨단의료ㆍ관광도시 육성 ▲호수공원 및 스포츠 테마파크 조성 등 서남부권 개발 ▲와인&뮤직 축제 등 명품축제도시 육성 ▲복지재단(위원회) 설립 및 복지만두레 부활 ▲3대하천 생태복원 및 꽃길 조성 등이다.

염 시장은 와인 축제와 관련해 “거부반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구상하는 와인&뮤직축제는 대전 근교의 포도생산단지 와인업체와 막걸리 등 전통주를 결합시키는 것”이라면서 “여기에 음악 축제를 접목해 세계인이 찾는 명품축제로 발전시키겠다”라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으로 사업성이 불투명했던 호수공원 조성 계획에 대해서는 “서남부권 호수공원 조성을 위해 실현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법령과 재원마련 방안을 적극 검토해 대전시의 역점사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끊임없는 노력
긍정적인 사고

이어 엑스포과학공원 활성화 방안과 관련, HD드라마 타운 조성 등 다른 공약을 반영해 엑스포공원을 교육과 과학, 첨단 놀이기능을 갖춘 테마공원으로 만드는 등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또 세종시 원안을 적극 추진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부지를 확보하는 한편 의료관광산업 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염 시장은 “시민이 시정에 직접 참여하는 ‘민·관 협치시대’를 활짝 열고 소통과 화합을 이뤄내 대전발전의 원천을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이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시민과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염 시장. 그의 말처럼 대전시민과 더불어 염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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