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대표 추대 거부 진짜 속내

2010.06.22 09:14:30 호수 0호

먹지 못할 잔칫상 차리고 많이 먹으라고?



한나라당의 차기 당권이 표류하고 있다. 승계직 대표에서 선출직 대표로의 도약을 노렸던 정몽준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포스트 정몽준’을 가늠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을 도왔던 친이 직계들이 당권을 잡는 것은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친이계 소장파를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당 대표로 추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를 단칼에 잘라냈다. 박 전 대표는 한 번 의지를 밝힌 후에는 뜻을 꺾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근혜 추대론’은 물 건너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차기 당권 도전을 거부한 박 전 대표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6월 지방선거 참패 후 여권 뒤덮은 ‘박근혜 역할론’
박근혜 “전당대회 출마 안 해” 못 박고 로우키 행보



박근혜 전 대표가 ‘당대표 추대론’에 선을 그었다.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확산 기미를 보이던 ‘박근혜 당대표론’을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한마디로 막아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지방선거 후 제기돼 온 ‘당대표 추대론’에 대해 “할 말 없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 및 워크숍를 통해 친이·친박계의 화합을 강조하는 목소리와 박 전 대표의 당대표론이 표출됐지만 그는 묵묵부답으로 이를 넘겼다.

하지만 친박계로까지 불이 붙기 시작하자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으로 한껏 달아오른 ‘박근혜 당대표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이웨이’ 박근혜
차기 당권 거절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론’에 대한 질문을 “(전당대회에 안 나간다고) 그렇게 알지 않았냐”는 말로 받아쳤다. 그가 자신의 소신을 밝힌 후에는 이를 바꾸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은 확연히 낮아지게 됐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당권 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두고 정가에서는 당내에서 높아지고 있는 ‘박근혜 추대론’을 일시에 잠재우기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차기 당권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추대론’이 그치지 않자 본격적인 추대 움직임이 되기 전 불씨를 꺼뜨리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박근혜 역할론’은 수차례 제기돼 왔지만 박 전 대표가 당대표나 총리를 맡게 될 가능성은 낮게 점쳐져 왔다. 당대표나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국정 동반자’인데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는 친이·친박계의 계파 갈등 만큼이나 깊은 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로 넘어가면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 사이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개헌과 행정구역 개편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손을 잡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개헌 등에 대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생각과 입장이 전혀 달라 의견차를 좁히는 게 상당히 힘들 것으로 내다본 것.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미디어법 개정 등 국회 파행을 부를 정도의 이슈가 언제든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도 박 전 대표의 발걸음을 막는다. 이 같은 이슈들에서 번번이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박 전 대표지만 이 대통령과 보폭을 맞추려다보면 ‘위치’에 따른 역할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국정 동반자’가 아니라 이 대통령의 국정에 종속돼 국민들을 설득시킬 카드로만 사용될 우려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믿고 ‘세종시 추진’을 약속했다가 ‘세종시 수정안’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본인의 ‘소신’과 ‘원칙’이 줄줄이 무너질 수 있는 것.

때문에 정가 인사들 중 일부는 “구태여 앞으로 나서서 매를 자처할 필요가 있겠냐”며 박 전 대표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지난 17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재고해 달라는 측근 의원들의 요청에 “미디어법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해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했는데도 국민의 눈에는 (이 대통령과) 분란이 있는 것으로 비쳤다”며 “당 대표가 된들 대통령에게 불편만 주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한나라당이 가장 어려웠던 천막당사 시절 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달라지겠다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그런데 지금 또 도와달라고 말하려니 입이 안 떨어진다. 국민에게 면목이 없어 당 대표에 못 나가겠다”는 말로 불출마에 못을 박았다.

전당대회에 나선다고 해도 당선이 확실한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은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특히 총선을 통해 다수의 친이계가 한나라당을 장악하면서 친박계는 ‘결집력이 강한 소수 정예’의 자리에 머물렀다. ‘소수 정예’의 파워가 상당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당정에서는 친이계의 결정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친박계 쪽으로 당론이 기우는 것 같다가도 친이계의 결집이 이뤄지면 판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때문에 친이계 소장파가 박 전 대표를 ‘구원투수’로 청했다고 해도 친이계를 결집시킬 수 있는 이가 나선다면 전당대회에서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친이계 연합작전에
소수정예 친박 무너질라

이번 전당대회에는 친이계 내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안상수 전 원내대표와 정두언 의원 등이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다. 또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 중진급 인사의 당권도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당권 행보를 막아설 만한 인사로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만한 인물이 없다.

이 위원장은 여의도 복귀를 희망하면서도 전당대회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인데다 친이계 내 ‘이재오계’를 가지고 있을 만큼 당내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출마설이 가시지 않고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도 이 위원장이 차기 당권에 도전, 친이계를 결집시키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친이계 핵심인사들과 전당대회에서 맞붙는 것은 박 전 대표에게는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당권을 잡는다고 해도 짊어져야 할 책임이 상당하고 당권을 잡지 못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에 차기 대권주자의 위상이 흔들림과 동시에 당내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는 ‘손해보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그리 아쉬울 정도가 아니라는 것도 그가 직접 나서지 않으려는 이유로 풀이되고 있다. 이제까지 친박계는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박 전 대표와 당 지도부 등에 포함된 중진급 친박 의원들을 통해 목소리를 내왔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서도 친박 인사들의 도전이 점쳐지고 있어 최고위원 선거에서 1~2석을 점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친박계 좌장격이었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당의 원내사령탑을 맡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무성 추대론’이 박 전 대표의 반대로 무산된 것을 계기로 미지근한 관계를 이어왔다. 여기에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심정적 결별’을 한 상태이다. 하지만 자신을 ‘비주류 중의 비주류’로 소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뜻을 거둬들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잠재적 우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방선거 후에는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김 원내대표와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나눠 이들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부르기도 했다.

차기 대권과 관련, 비주류의 위치에 있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당권 도전을 고사하며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당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당청 관계가 바르게 정립될 것이 약속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표가 돼도 역할이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전문가들도 “이 대통령의 불도저식 국정운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대표가 자칫 ‘관리자’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당권을 쥐고 있는 것이 대권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모두 ‘비주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권을 쥐고 있는 것이 일견 대권행보에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균형’을 강조하는 여론의 속성 상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 공식
‘비주류’가 대세더라

박 전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들 중에서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어 대권이 가까워질수록 당 안팎의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 내에서도 밖에서도 ‘박근혜 대항마’들이 연합전선 등을 통해 박 전 대표가 점하고 있는 위치를 끌어내리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 도전 등 두드러진 움직임은 ‘나서서 매를 맞는’ 형국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는 정치 전면에서 친박계를 지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은 6월 국회 내에 처리될 것으로 보이지만 천안함 사태나 개헌, 행정구역 개편 등의 이슈는 여전히 살아있어 계파 간 갈등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7월 전당대회를 통해 원내대표-당대표-국회의장이라는 ‘빅3’이, 7월 재보선을 전후로 청와대의 인적 구조도 다시 짜여지는 만큼 로우키 행보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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